세계사/동양

일본의 만행 난징대학살

윤여시 2014. 11.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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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행 난징대학살


일본이 그리도 숨기고 싶어하는 제국주의 시절.. 일제의 만행은 독일의 나치를 뛰어넘을 정도로 아주 잔인하고 야비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도 일본은 짐승 같은 학살 및 실험을 자행했는데 그 중에서도 난징대학살은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잔혹한 사건이었다. 난징대학살 과연 무슨 사건일까?



 


난징대학살 충격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난징대학살 배경


한창 제국주의의 야욕에 눈이 뒤집힌 일본은 우리나라를 넘어 그들의 오랜 대륙 진출의 꿈을 이루어줄 중국을 향해 그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37년 7월 7일, 일본은은 북경 교외의 노구교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을 명분삼아 중국을 침략하니 이것이 바로 중일전쟁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중국을 공격하여 한달만에 북경과 천진을 점령하고 "3개월 안에 중국을 점령하겠다"라고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위험을 직감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제2국공합작을 이루어내며 일본을 상대하기로 다짐하고 상해전투에서 일본을 맞아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비록 상해전투에서 중국은 패하기는 했지만 3개월 내에 중국 대륙 점령을 공언했던 일본군은 중국군의 거센 저항을 실감해야 했고 2개월여간 전투를 치루며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난징과 상하이의 위치


한편 상해를 빼앗긴 중국의 장제스는 일본에 대항하는 길은 중국의 넓은 대륙과 인구를 이용한 장기전이라는 생각으로 난징이 위협 받자 포기하고 대륙 깊숙한 중경(충칭)으로 천도 선언을 실행한다. 


그러나 난징에 주둔한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는 난징을 절대 포기 하지 않겠다며 결사항전을 선언했고 이에 중국 국민당 관리들과 110만명에 육박했던 시민들은 치열한 전투를 직감하고 난징을 빠져나가며 혼란에 빠진다. 난징을 포위한 일본은 탕셩즈에게 항복하라는 경고를 날렸으나 탕셩즈와 난징의 15만 중국군은 난징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내비치며 일본을 자극하기에 이른다. 


12월 13일 마침내 일본군 각 방면으로 난징을 포위 공격하기에 이르고 중국군은 처음 내비쳤던 각오와는 다르게 허둥지둥대다 무너지며 전투 한 번 제대로 하지못하고 하루만에 손쉽게 일본군의 승리로 끝이난다. 그러나 웃긴 것은 난징이 함락되기 직전 전날, 탕셩즈와 휘하 부대는 난징을 탈출하고 차마 나가지 못한 고립된 시민들은 양쯔강만을 바라보며 일본군의 입성을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 이때 남은 난징 시민과 포로가 약 50~60만명이었다.





난징대학살의 유골..


|난징대학살 경과


이제부터 마음 약한 사람들은 읽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군은 난징에 진입한 후 악귀로 변하여 보이는 중국인들을 닥치는대로 참살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일본군은 난징에서 백기를 들고 항복한 중국군 포로와 젊은 남자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기 시작한다. 이들을 양쯔강 유역에 세워 놓은 일본군은 기관총 세례를 퍼부어 죽이고 총알이 아깝다며 일본도로 죽이거나 생매장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난징의 한 광장에 천여명의 사람을 세워 놓은 후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할 것 없이 기관총을 난사했고 석유를 뿌려 불로 화형에 처했다. 난징에 참가한 일본군의 일기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는 문구가 발견되어 일본군 자체가 사이코패스임을 입증했다.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 소위, 노다 쓰요시 소위는 누가먼저 일본도로 100인을 참살하는지를 시합하고 승리한 사람에게 포상이 내려지는 학살도 진행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이 두 쓰레기는 이 모든 참상을 지휘한 다니 히사오와 함께 총살 당한다.


또한 일본군은 여자들에게 눈을 돌려 강간은 물론 성노리개, 잔혹한 참수를 자행했으며 아이부터 노인할 것 없이 그들의 인간임을 포기 한 행위는 더 이상 표현하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계속 되었다. 이러한 난징의 참상이 무려 6주나 계속 되었고 이때 죽은 중국인이 무려 30만명이 넘어선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냥 숫자로 말이 30만명이지 우리나라 한 도시의 인구가 모두 죽은 것과 진배없다.)




 

난징대학살의 추모관


|난징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난징 대학살 이후 일본은 난징을 개편하면서 친일 괴뢰정권을 세우고 중국인을 데려다가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는 일본군이 패망하자 난징 학살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소각하면서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 못했다.


또한 전쟁이 끝난후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전범재판을 통해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난징 대학살의 주범들 몇명을 사형시키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관련 전범들이 살아남아 목숨을 부지하며 눈 가리고 아옹식의 자숙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일본의 뻔뻔함은 지금도 계속 되어 수많은 사진들과 목격자들의 증언 그리고 중국인의 뼈무덤을 보고도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고 있으며 30만명 이상이 실제로 죽었음에도 그 사람들을 줄여보고자 갖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난징대학살은 중국 정부의 지어낸 자작극으로 몰아가는 황당무개한 역사관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실제로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이 우리나라를 뛰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는 분명 과거 일본의 만행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더욱 중국인들이 일본에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한 수많은 만행에 대한 자료와 증거가 있음에도 단 한번도 이것을 인정하고 사과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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