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조선 초기 도화원의 화가 안견,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1. 1. 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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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도화원의 화가 안견, 그는 누구인가?

우리 역사속 흔치 않은 도화원의 여화가 홍천기를 주제로 한 사극이 방영을 앞두면서 그 당시 실존인물이자 조선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평대군과 안견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중 실제로 조선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 삶은 많은 것이 밝혀져 있지 않은 안견과 그가 소속되었던 도화원은 어떤 곳인지에 대하여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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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예술가이자 비운의 왕자, 그림을 사랑했던 안평대군 조선의 역사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면 그 첫째가 단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이방원의 이야기일 것이고 그 둘 째가 바로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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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의 꿈을 본따 그렸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견 그는 누구인가?

 

안견은 세종 때부터 세조에 이르기까지 활동했던 화가이다. 그가 어떻게 태어났고 죽었는지는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그 기록조차 많지 않으나 조선의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많이 따라 했을 정도로 조선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 받는다. 

안견의 몇 안되는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 때 도화원 소속이었던 그가 정4품 벼슬까지 오른 것을 봐서는 분명 세종에게 그 능력을 인정 받았던 인물로 보여진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은 안견에게 왕실의 기록화를 그리게 하여 다음 행사때 참고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도화원의 화가들이 벼슬자리에 오르면 그림이 곧 안견과 비교 당했다고 하는 것을 담은 기록들이 있어 그의 그림이 당대에도 얼마나 인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안견은 특히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미술품 컬렉터였던 안평대군과 특히나 친했다고 전한다. 특히 임진왜란 때 왜놈이 훔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대로 본따 만든 걸작으로서 조선시대 회화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안평대군을 죽인 세조 때까지 살아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견은 그가 살던 시대뿐 아니라 이후에 나오는 많은 조선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그림에 까지 그 화풍이 영향을 끼쳤으니 그야말로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일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들은 있으나 명확한 작품은 오직 <몽유도원도>로 현재 일본의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도화서터

|안견이 있던 도화원은 어떤 곳일까?

 

도화원의 첫글자 '도'는 왕실의 그림을 그리는 기록화, 건물그림을 뜻하며 '화'는 왕의 초상화나 인물화 산수 등을 뜻한다.

 

도화원은 말 그대로 그림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조선 초기 그러니까 안견이 있을 때만해도 도화원으로 불리다가 성종 때에 이르러 도화서로 격하된다. 

 

도화서 소속 안견이 종4품에 오를 정도로 인정 받는 기관이었지만 도화서로 격하되고 나서는 종 6품까지 밖에 벼슬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대부분 양반보다 낮거나 그 신분이 높지 못하는 사람들로 세종이 워낙 능력우선주의자니까 안견이 종4품까지 올랐던 것이지, 이후로는 도화서에서 관료가 종 6품 이상으로 오른 사례는 찾기가 힘들다. 보통 중인 신분에서 세습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리 힘이 있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 자료가 없기에 이들 도화원에서 그린 의궤 등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물이며, 조선 후기 대화가 김홍도 등도 도화원 소속으로 주목은 많이 받지 못했으나 조선의 문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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