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조선왕조 최초의 궁을 침입한 자객? 정조의 암살시도 정유역변

윤여시 2021. 10. 11. 23:13
반응형

조선왕조 최초의 궁을 침입한 자객? 정조의 암살시도 정유역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고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하였던 신하들은 그의 아들 세자 이산, 그러니까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때문에 정조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정치 공세와 심지어 목숨을 위협 당하는 암살 당할 처지까지 처하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정조에게도 암살 시도가 일어나는 조선 왕조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난다. 영화 <역린>의 배경이기도 한 정유역변 어떤 사건이었을까?

 

정조의 암살시도를 다룬 <역린>

|정조실록에 쓰인 정조의 암살시도 - 정유역변 그 첫번째 시도

 

1777년 7월 28일,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1년이 갓 지났을 무렵, 정조가 거처하단 경희궁의 존현각 지붕위에 누군가 있는 것이 발각된다. 그러나 이때 범인을 잡지는 못했고 12일 후 8월 11일 또 암살을 시도했던 범인이 잡히게 되면서
암살계획이 드러나게 된다. 다음은 정조실록의 내용이다. 

"대내에 도둑이 들었다. 임금은 밤중이 되도록 글을 보는 것이 항상이었는데 이날밤 존현각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펼쳐 보고 있었다. 때마침 내시 한 사람이 있다가 명을 받고 호위하는 군사들을 보러 가서 텅비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동북쪽에서 회랑 위를 따라 은은히 올려왔고 집의 가운데쯤 와서 기와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던지어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고요히 들어보며 도둑이 들어있는가를 살피고서 사람을 불러 횃불을 들고 수색하도록 했는데 기와쪽의 자갈 모래와 흙이 흩어져 있었으니 도둑이 든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때 금위대장을 맡고 있는 홍국영이 군사를 거느리고 사방을 수색했지만 있지 않았다. "

- 정조실록 -

다시 말해 경희궁 존현각에서 책을 보고 있는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도둑 같은 누군가 침입했으나 그 흔적만 찾고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창덕궁에도 침입하다 - 정유역변 그 두번째 시도

 

존현각 지붕에 숨어둔 누군가를 잡지 못한 숙위(경호)군은 정조에게 꾸짖음을 당하면서 비상 경호대책을 수립한다. 군사가 다섯 교대로 순찰을 지속하고 근본이 불분명한 인물들은 모두 제외된다, 이후 거처를 좀 더 안전한 창덕궁으로 옮긴다.

 

그런데 이 창덕궁으로 옮긴 닷새 후에 8월 11일 수포군의 17세 소년 김춘득의 눈에 경추문 북쪽 담장을 넘으려는 자객이 보인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다. 

이날 밤에 경추문(창덕궁 서문)을 지키는 수포군 김춘득이 시급히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 김세징을 나지막히 부른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동정을 살펴보자 하였고, 이때 경추문 북쪽 담장을 향해 몰래 넘으려는 인물이 보인다. 그러자 김춘득과 김세징 그리고 김춘삼, 이복재 등 4명이 그 자객을 추격하여 잡았다.  

- 정조실록 -

즉 경추문에서 17세 소년군사 김춘득과 3명의 군사가 자객을 잡은 것인데,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보초 서는 병사들은 너무도 약하게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맥없이 자객이 잡혀버린다.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

|밝혀진 자객의 정체 - 정조가 직접 친국하다
 

정조는 자객이 붙잡히자 직접 친국하여 죄를 묻는다.

 

그러자 전흥문이 말하길, "완력이 있었으나 가난했고 호위군관 강용휘가 돈을 주고 여종까지 아내로 주면서 일하자고"해서 이 암살에 가담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하는 정조의 암살 사건의 시작은 이러했다.

 

강용휘는 정조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청의 호위군관으로, 알고 있던 당시 한양 시내에서 임장(동사무소 공무원)을 하고 있던 전흥문(지금으로 말하면 동사무소 공무원에게 대통령 암살을 맡긴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는 잘 안가지만 당시 전흥문의 무예가 뛰어났다고 한다.) 에게 이번 임무를 맡겼고 직접 칼을 차게 해 호위군사처럼 변장시킨 후 입궐 시켰다.

 

이후 자신의 조카인 대궐별감 강계창이 편전의 정문인 차비문의 숙직을 서는 날을 거사일로 하여, 전흥문을 침투시켜 정조를 암살 시키고자 했다. 여기에 자신의 딸인 궁녀 강월혜를 불러 이 계획을 전달했고, 강월혜가 자신이 알고 있는 샛길을 강용휘와 전흥문에게 말해 주는 한 편 이 계획을 상궁 고수애에게 전했다. 

이때 고상궁은 정순왕후 김씨의 사람이었고, 이후 궁을 청소하는 청소부도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그야말로 정조에게는 큰 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첫 암살때 정조가 존현각에서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고 있자 당황한 전흥문이 도망가며 흔적을 남겼고 강화된 경비로 인해 창덕궁에서 붙잡히게 되며 싱겁게 암살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역린에서 자객역을 맡은 조정석 역시 영화는 허구다.

|강용휘를 조종한 뒷 배후 - 홍지해 부자 

 

단순히 호위군관이 미쳤다고 정조를 암살하려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정조를 암살하는 그 배후가 있었다. 바로 홍인한의 인척이었던 홍계의의 아버지 홍지해, 그리고 아들 홍상범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할 당시, 정조는 즉위식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한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과 함께 이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당시 조정의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노론벽파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정조는 또한 홍인한, 정후겸 등을 귀양보내 사사하고 사도세자의 사당과 무덤을 격상시켰다. 

여기에 홍인한의 인척이었던 홍계희는 본래 사도세자의 행적을 영조에게 고해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인물이었는데, 정조가 즉위할 당시 홍계희는 이미 죽었지만 그 가문은 벌벌떨어야 했다. 

 

더군다나 홍계희의 아들 홍지해 역시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 홍상범이 유배된 아버지와 연락을 하며 암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홍상범은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호위군관 강용휘, 그의 딸 강월혜를 비롯한 궁궐의 출퇴근하는 인물들을 포섭했고 정순왕후를 보좌하는 상궁까지 암살에 끌어들이며 단단히 정조의 암살을 준비했고 이것이 정조의 친국에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다뤄질 정유역변.. 궁녀 강월혜가 등장한다. 

|정유역변 그 후

 

이번 암살을 주도한 홍상범은 거리에서 사지가 찢어 죽는 책형에 처해졌으며, 당연히 연루된 풍산홍씨의 모든 인물들은 줄줄이 사탕처럼 모조리 사형되었다.

 

그런데, 이번 암살시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실패하고 벌벌 떨던 인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이었다. 더군다나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하며 정조의 즉위까지 방해해서 밀려나고 있는 판에, 이번 암살 사건마저 배후 인물이 모두 노론 사람이었던지라, 노론은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이때 노론에게 호재가 발생하니, 바로 홍상범의 사촌 홍상길의 정조 암살 계획이 또 드러난 것이다. 홍상길은 궁비 이영단을 시켜 정조를 암살하려 했는데, 이 사건이 드러나게 되면서 홍상길 역시 추궁을 받는다. 

그러자 홍상길이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기로 했다며 자백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은전군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정조와는 배다른 이복동생이었다. 그러자 노론은 일제히 일어나 은전군을 죽여야 한다며 주장했고 노론은 이를 기회삼아 물타기를 시도하며 은전군의 사형을 요구한다. 

 

이에 은전군은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역모에 누명을 쓰게 되어 죽지 않겠다고 반항하였고 정조도 계속 거부했으나, 노론을 비롯한 대신들이 사형을 강력 주장하며 정조도 어쩔 수 없이 은전군에게 사약을 내리니 이때 은전군의 나이가 20살때였다. 여튼 이를 통해 노론은 정치적 물타기로 그 생명은 유지하게 된다. 

 


영화 역린의 배경이자 많은 정조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정유역변, 사실 역사속에서 그 사건 자체는 어쩌면 반전 없이 싱거울 정도로 끝났으나 조선왕조 최초의 자객 사건이자, 정조를 죽이기 위해 궁의 많은 인물들이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조선의 가장 매력적인 왕이라 알려져 있는 정조이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이기도 한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