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조선왕조 왕의 호칭, 묘호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윤여시 2022. 1. 2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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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왕의 호칭, 묘호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의 27명의 왕을 가리킨다. 모두 앞글자만 딴 것으로 뒤에는 조와 종 그리고 군이 붙게 된다.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왕들은 어떻게 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조선 태조 이성계

|묘호의 뜻을 알아야 한다

조선왕조 호칭인 조와 종을 알기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묘호이다. 우리가 사극에서도 많이 봤겠지만 왕이 살아 있을 때, 왕의 호칭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에게 신하가 '세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바로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해질 것이다. 

 

다시말해 임금의 이름이나 호칭을 누구도 부를 수 없었기에 호칭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왕이 죽으면 그 위패를 종묘에 모셔야 했다. 이때 선왕들과 구분할 수 있는 호칭이 필요했고 그래서 '종'또는 '조'라는 호칭을 짓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묘에 붙이는 호', 묘호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위패를 모신 종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와 종의 차이는 <태조실록>에 <유공왈조(有功曰祖) 유덕왈종(有德曰宗)이며 조공종덕(祖功宗德)이다> 라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공이 있으면 조로 하고, 덕이 있으면 종으로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종법질서라고 한다. 

 

근데 나름의 종법질서가 있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공과 덕을 딱 잘라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준으로는 애매하다. 그러면 조선 왕조 이전의 고려로 한 번 가보자. 본래 나라를 창업한 왕에게만 조가 붙었다. 해서 고려 왕조에서는 태조왕건 딱 1명 뿐이다.

 

조선 역시 이성계는 창업군주여서 태조라고 불렸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후 조선의 왕 6명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가 '조'를 쓰게 된다. 이들이 다른 왕들보다 공이 있어서 조가 된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항간에는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다시 세운 왕에게 '조'라고 붙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선조, 병자호란의 인조인데 그렇다면 다른 4명의 왕은 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왕권강화와 정통성확보, '공'을 중시하는 후대의 판단에 의해서 정해지게 된다

우리는 왕들의 묘호가 사후 후대에 의해 올라가는 것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후대에서 정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왕권강화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선왕의 묘호를 지을때도 고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후대로 갈수록 덕이 많은 왕에게 붙는 '종'보다 공이 많은 왕에게 붙는 '조'를 더 높고 중요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해서 실제로 23대왕 순종은 본래 종이었다가 철종 대에이르러 순조(안동김씨에 의해)로 바뀌었고, 우리가 잘알고 있는 영종은 고종대에 이르러 영조가 되고 정조 역시 정종이라 불리다가 정조로 묘호가 바뀌게 된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왕권강화와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묘호를 바꾼 사례로 나름의 종법질서가 있었다고 하나 결국 후대의 이해관계에 의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숨겨진 묘호 이야기 

1) 조선 2대왕 정종의 묘호는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 2대왕 정종은 사실 묘호가 없었다. 물론 정종이 동생 이방원에 의해 왕위에 오르기도 했고 바로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존재감이 없었긴 했지만, 묘호가 없던 것도 특이하다. 

이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자리에 있던 태종이 정종이 죽은 후에 묘호를 올리지 않아서인데, 이때 세종 역시 아버지 태종의 뜻을 받아서인지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해서 정종은 이후 260년 동안 쭉 묘호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렸으며 숙종대에 이르러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다. 

 

2) 이방원은 태종이라는 묘호를 쓸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3대왕 이방원은 본래 '태'라는 묘호를 쓸 수 없었다. 원래 종법제도에서 고려처럼 태(太)는 창업군주와 2대 왕에게까지만 붙을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종이 묘호가 없이 260년이나 있었고 세종이 조선 창업의 대업을 이룬 할아버지 이성계에 버금가는 공을 아버지 이방원에게 붙이고자 태종이라는 묘호를 올리게 되면서 이방원은 태종의 묘호를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조선왕조 묘호인 조와 종의 차이는 조선 종법제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나 뒤로 갈수록 후임 왕의 왕권강화와 정통성 확보 그리고 이해관계로 인해 혼용되어 종묘에 기록되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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