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루부, 순노부 고구려의 5부와 고추가의 유래는 무엇일까?계루부, 순노부 고구려의 5부와 고추가의 유래는 무엇일까?

Posted at 2021. 2. 16. 19:56 | Posted in 국사/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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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루부, 순노부 고구려의 5부와 고추가의 유래는 무엇일까?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다보면 계루부, 순노부를 비롯한 단어는 물론 그리고 가장 높은 귀족을 일컫는 말을 고추가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실 고구려의 5부는 고구려가 세워지기까지 힘을 실었던 다섯 집단을 가르키는데, 그 유래는 무엇이고 어떤 뜻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고구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대했던 우리 역사 고구려

|고구려의 5부에 대하여 살펴보자

 

고구려의 5부는 고구려를 건국함에 있어 핵심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5개의 집단을 말한다. 고구려가 왕권 강화체제가 확립되면서 이 5가지 연맹체는 고구려 수도를 구성하는 행정구역이 되었다.

 

| 5부족의 명칭 

 

중국 역사서 -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 
삼국사기 - 비류부, 제나부, 환나부, 관나부 

 

여기서 가운데 나와노는 냇가와 평야 또는 그 지역의 집단을 의미하는 말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본래 다섯 족이 있었다" 라고 전해지며 고구려 사회가 만들어진 초기부터 5부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다섯집단에 의한 연맹체제는 가장 강한 집단이 전체 연맹을 이끌어가는 중심 세력이 되었는데 초기에는 소노부가 연맹의 왕권을 차지했으나 후에 계루부가 왕권을 차지했고 고구려 제 6대왕 태조왕에 이르러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독점하게 된다. 이후 절노부는 왕실과 혼인을 통한 왕비를 배출하는 부족이 되었다. 

 

고구려 왕실 계보

| 5부족의 특징

 

- 계루부 

고구려 5부의 중심으로 제 6대 태조왕 때부터 왕위를 독식한다. 사실 태조왕은 제 5대왕이었지만 너무나 포악하여 반란에 의해 살해된 모본왕의 아들 대신 7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태조왕은 제 2대 유리왕의 방계 자손이었던 왕자 재사의 아들이었다. 아무래도 이름이 건국의 시조에게만 붙는 태조인 것은 그를 통해 고구려의 정통한 왕이 세워졌음을 정치해석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여튼 태조왕을 통해 계루부는 5부의 중심이 되었고 왕족인 계루부의 수장은 고추가라는 칭호를 가지게 되며 정치, 군사를 통솔하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 소노부 

소노부 역시 고구려 형성에 주축이 된 집단이었고, 고구려 초기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계루부에게 왕권은 내준다. 그러나 소노부는 전왕족으로 고구려의 큰 세력으로 남아 계루부 왕족 및 절노부 왕비족과 함께 고추가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왕권이 강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소노부 나름의 종묘와 사직에 대한 제사도 지냈으나 왕권 강화를 토대로 한 소수림왕 때부터 그 권위를 내려 놓게 된다.

 

- 절노부  


계루부의 왕족과 결혼하는 왕비를 배출하는 집단이다. 때문에 고추가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계루부를 밑받침하는 주요 세력으로 왕위 계승에도 영향을 끼친 집단이었다.

 

 

- 관노부 

 

관노부는 삼국사기에 관나부로 나오는데 종종 왕위 계승을 돕거나 땅을 정벌하는데 이름이 등장하지만 3세기 이후 고구려 왕권이 강화되고 전체적으로 5부의 권한이 약해지자 가장 쇠약해진 집단으로 역사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 순노부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에 비하여 세력을 떨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고국천왕 때 반란을 평정한뒤 국사를 위임받은 인물 안류가 순노부였으며, 이후 고구려 말기를 장악했던 연개소문도 순노부 출신이었다는 설이 있다.

 

드라마 달이뜨는 강의 고추가 

|고구려의 귀족 오브 귀족 고추가는 누구일까?

 

고추가는 주몽의 고구려 건국 이전에 고구려가 세워진 지역의 수장을 칭하던 호칭에서부터 등장한다. 고구려가 땅을 정벌하며 세력을 키워가면서 고추가라는 호칭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구려가 왕권이 강화되고 관제가 정비되면서 고추가는 왕족을 포함한 5부의 대표를 맡은 인물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호칭이었다. 

고구려 초기부터 말기 모두 등장하는 호칭으로 고구려의 수장을 칭하는 호칭인 가(加)에서 유래되었다. 계루부(왕족), 절노부(왕비족), 소노부(전왕족)만 가질 수 있는 호칭으로서 서양의 남작이나 백작 등 명목상의 작위 역할도 하였다. 이후 고구려 후기에는 고추가 신분이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외교적 업무 형태로 변화하며 왕 대신 사신들을 접대하는 고구려의 얼굴 역할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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