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고려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Posted at 2013. 12. 13. 23:21 | Posted in 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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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최후


고려의 마지막 충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포은 정몽주. 최고의 정치력과 깊은 학문으로 당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기에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충신 이상으로 후세에 더 많은 이름을 남기는 것 같다. 정몽주 그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을 했기에 이토록 이름을 후세에 남긴 것일까? 알아보자.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정몽주 초상화 


정몽주의 어렸을 적 이름은 원래 몽주가 아닌 몽란이었다. 정몽주의 어머니가 난초를 심은 화분을 떨어트리며 깨진 꿈을 꾸자 그를 잉태하게 됬다하여 몽란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정운관은 주공(주나라 명 정치인)을 꿈에서 만났다하여 정몽주라 이름을 고쳤다. (정치 잘하는데는 그 이름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유년시절의 정몽주는 고려말 성리학의 대표 학자였던 이색의 문학에서 학문을 배우게 되는데 이때 그의 친구이자 나중에 정적이 되어버린 정도전도 만나게 된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부패한 고려 말 정세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에 마음이 맞았고 불교와 타락한 권문세족 대신 성리학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뜻을 모은다. 





정몽주의 어린시절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정몽주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


정몽주는 21세의 나이에 감시에 합격하여 1360년 과거급제해 1362년 예문관검열을 시작으로 관직에 올라 정4품의 합문지후 동북면도지휘사종사관을 거쳐 1367년에는 예조정랑 성균관박사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 그의 스승 이색은 이 같은 정몽주의 벼슬 생활과 또 학문적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는 1372년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일행 중 열두사람이 죽었지만 정몽주는 13일을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명나라 해군에 구조되어 그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또한 귀국후에는 학문직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며 무너져가는 원나라 대신 명나라의 외교 관계를 중요시 해야 한다는 정책을 말하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한다. 


이 무렵 유배에서 돌아온 정몽주는 그를 미워한 권문세족의 모략으로 당시 노략질이 극에 달한 일본 조정으로 가서 왜구 단속을 요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에 정몽주는 일본 큐슈로 가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 조정을 설득해서 왜구에 대한 다짐을 받아 냈을뿐 아니라 왜구에 잡혀갔던 수백명의 고려인들을 구해오며 외교 능력도 인정 받게 된다.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나온 정몽주

 


일본 외교 성과 이후 정몽주의 정치적 명망은 더 높아졌고 명나라를 치자는 요동정벌론을 외치는 우왕과 최영 장군에 반대 일변도를 걷는다. 이때 요동정벌론을 반대하던 이성계와 조민수의 위화도 회군을 적극 찬성하였고 정몽주는 이성계와 함께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얻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몽주는 이성계와는 친밀한 관계였다.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함께 왜구토벌에 참가하기도 하는 한편 이성계 역시 정몽주를 친구라고 불렀다고 하니 두 사람 사이는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절대 함께 나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이성계는 고려 왕조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왕조를 만들려 했던 사람이고 정몽주는 개혁을 통해 고려왕조를 이어나가려는데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 즉 둘은 친하긴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몽주는 즉 이성계가 꿈꾸는 새로운 조선이라는 나라에 그 능력으로 보면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결국에는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었다. 여튼 이성계와 함께 우왕과 창왕을 폐했던 정몽주는 고려 마지막왕 공양왕을 세우자마자 이성계 일파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이어간다. 이때부터 그의 친구였던 정도전과 철저한 원수가 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 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 정몽주 


정몽주는 이성계가 사냥에서 낙마하여 부상 당하자 기회를 잡고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고자 했으나 이를 눈치챈 이방원이 이성계를 개성으로 불러 호위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이방원은 자신의 아버지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뒤엎는 것은 물론 정몽주를 죽이는데도 우물쭈물하자 최후의 통첩이자 마지막 회유를 하려고 정몽주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고 정몽주를 회유하고자 하여가를 읊게 된다. 


그러나 정몽주 역시 단심가를 그 자리에서 읋으며 무너져가는 고려왕조에 대한 마지막 충성심을 보이게 되는데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를 회유하기는 불가능함을 알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정몽주는 이방원의 집을 나와 그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났고 이방원은 자신의 부하 조영규에게 정몽주의 암살을 명한다. 이에 선죽교 밑에서 잠복하고 있던 조영규는 쇠뭉치를 꺼내 말을 타고 가던 정몽주를 쳐죽이니 그의 나이 56세였다.





정몽주가 죽었다는 개성에 있는 선죽교. 


정몽주는 죽을 때 붉은 피를 선죽교에 뿌렸고 이 피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다가 그 피에서 대나무가 자라 선죽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그는 대역죄인이 되어 수급이 저잣거리에 걸렸고 경기도 용인에 매장되었지만 이방원도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 정몽주의 충절을 극찬하며 벼슬을 내려 정몽주의 인품과 능력을 치하했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 그는 고려 500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꼭 빠지지 않는 인물로 마지막 충절로 고려사를 빛냈던 것 같다. 단심가와 선죽교의 이야기와 그의 뛰어났던 정치적 능력이 인정 받아 어떻게 보면 몰락하는 왕조에 편승해서 없어질 이름이었음에도 후세에 위인으로 불리며 이름을 남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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