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설에 휘말린 불쌍한 왕 인종 그리고 문정왕후- 인종 즉위독살설에 휘말린 불쌍한 왕 인종 그리고 문정왕후- 인종 즉위

Posted at 2013. 11. 19. 22:11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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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설에 휘말린 불쌍한 왕 인종 그리고 문정왕후- 인종 즉위


정말 우여곡절 끝에 인종은 중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다.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윤의 윤임이 그 실권을 잡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소윤세력을 없애버릴 듯 싶었으나 인종은 그리 호락호락한 왕이 아니었고 자신의 주관이 있고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인종의 단점(?)은 너무나 효심이 지극하여 문정왕후에게 항상 당하며 살았다는데 있다. 인종 즉위 후 정세는 어떻게 변해가는지 한번 살펴보자.



 

인종


인종.. 드라마 <천명> <여인천하>에서 나오는 것 같이 역사속에서도 효심이 가득한 비운의 임금으로 그리고 있다.


중종은 결국 외척을 물리치지 못하고 죽고만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문정왕후의 아들은 어렸고 인종은 하늘이 내린 효자라 하여 효심이 지극하고 성품이 온화하며 지혜로운 왕이었다는 것이다. 조광조 사건 이후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사림파는 인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인종이 즉위한 후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관원에게 "당신의 임금은 성인이다. 그런데 나라가 조그마한 나라라 성인과 맞지 않으니 오랫동안 임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은 복이 없다" 라는 말이 <아성잡기>에 실려있다.


이러한 인종에게 삼촌인 윤임의 대윤일파는 물론이고 사림파도 지지를 하니 어진 군주 인종의 시대가 열리나 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종은 하늘이 내린 효자였고 그 효심 때문에 문정왕후의 괴롭힘에 당하게 된다. 그 지혜로운 왕이 중종을 잃은 문정왕후의 마음을 달래고자 능력 부족의 윤원형을 공조참판의 자리에 임명하니 지혜로운 인종이 자신의 계모 문정왕후에게는 사리분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종.. 여인천하에서 정태우가 맡았던 역할로 불쌍한 왕이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이러한 인종의 보살핌도 절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왕위에 올려야 그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는 인종을 지지하는 대윤의 득세를 막기 위해 항상 인종이 문안오면 홀로 된 첩과 약한 아들을 보전하겠냐며 인종을 들들 볶기 시작한다. 이에 인종은 그 죄송함을 참지 못하고 왕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대비전에서 석고대죄를 하니 이 얼마나 조선시대에 생각도 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인종은 조선 왕조 최초로 독살 당한 의혹을 받고 있는 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스트레스는 중종의 장례를 치르느라 몸이 약해진 인종의 몸을 더욱더 쇠약하게 했다. 인종 1년 1545년  6월 4일에 어의와 약방 제조의 문안을 받은 후 6월 6일에 아프지 않으니 문안오지 말라고 약방 제조에게 전한다. 그 후 10일이 지난 6월 17일 주다례 (임금이나 왕비가 낮에 드리는 제사) 기록이 나타나게 된다. 신하들은 인종이 얼마전까지 몸이 좋지 않았기에 인종의 주다례를 미룰 것을 간청했으나 인종은 자신의 몸이 좋아졌다며 주다례 이후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갈 것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물론 문정왕후는 인종의 몸이 안좋다는 것을 알고도 주다례를 막지 않았다.


이날 주다례를 마친 인종은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드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맨날 구박만 하던 문정왕후가 인종을 기뻐 맞이하며 어가를 따르던 내시들과 제장들에게 술을 먹였고 문정왕후와 인종은 다과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후 인종은 이질과 설사 증세로 병이 위급해지더니 헛소리를 하는 등 병세가 위급해졌다.




 

청연루


이에 의원들은 인종을 경복궁 청연루에 인종을 옮기고 치료에 온 힘을 기울이는데 이 때문인지 인종의 몸은 회복되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이때부터 다시 한 번 소동을 일으킨다. 바로 궁 밖에 있는 의혜공주의 집에서 청연루에 있는 인종을 병문안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의 거센 만류로 조용해지나 싶었지만 문정왕후는 계속해서 궐 밖으로 나가겠다는 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 인종은 장기인 비위가 상하여서 소생불가 판정을 받고 만다. 여기서 비위는 독극물에 가장 먼저 반응을 일으키는  장기로써 인종의 독살설을 뒷 받침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문정왕후는 궁 밖을 나가겠다며 다시 한 번 소동을 일으키고 인종에게 쏠려 있는 신하들을 흔들어 댄다. 인종은 즉위 8개월 (조선 왕중에서 가장 짦은 재위기간)만에 조광조의 복직과 현량과의 설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한 을 말하며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에게 그 재위를 물려준다는 교서를 내린다.. 문정왕후의 섭정과 명종의 즉위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문정왕후와 인종의 이 같은 기록들은 문정왕후라는 악녀와 인종이라는 효심 지극하고 불쌍한 왕을 만들어 냈다. 뭐 물론 독살설은 말 그대로 가설일뿐 모든 사실은 문정왕후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사와 정사에서 모두 문정왕후를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이 같은 소동을 벌였다고 지명할 정도라면 분명 인종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참고: 조선왕 독살 사건 지은이-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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