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연애를 즐겼던 고려 제 7대 왕 목종 그는 누구인가? 강조의 난동성연애를 즐겼던 고려 제 7대 왕 목종 그는 누구인가? 강조의 난

Posted at 2019. 12. 27. 21:23 | Posted in 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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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연애를 즐겼던 고려 제 7대 왕 목종 그는 누구인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별의별 왕이 다있지만 그 중에서도 동성연애를 즐겼던 성소수자 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한명있다. 바로 고려 제 7대왕 목종이다. 왕은 왕이었지만 너무나 나약했던 목종,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왕위에 오른 목종의 불행 

목종은 고려 제 5대왕 경종과 천추태후로 잘 알려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으로 맏아들이다. 그러나 그가 두살 때 그 아버지 경종이 죽으면서 왕위는 사촌동생이었던 왕치 그러니까 고려 제 6대왕 성종에게로 가게 된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성종은 후에 목종이 되는 태자 송을 잘 양육하였고 마침내 성종이 후사 없이 죽자 1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헌애왕후는 목종이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섭정을 실시하였고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사실 김치양은 이미 성종대에 헌애왕후가 머무는 천추궁에 출입하며 정을 나눈 것이 발각되어 곤장을 받고 귀양중에 있었는데, 헌애왕후가 다시금 불러들인 것이었다. 

헌애왕후는 스스로를 천추태후라 부르도록 하고 정사를 주무르기 시작했으며 김치양과 대놓고 부부행세를 하며 간통하고 아이까지 낳는 놀라운 일들을 해나간다. 거기에다 김채양은 등용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인사권을 장악하게 되니 전국에서 벼슬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들고 김치양집에 몰려들었고 그는 이 뇌물로 3백여칸이나 되는 집에 정원, 정자, 연못을 꾸미며 헌애왕후와 놀아나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치양은 자신의 사당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여 백성의 원망이 하늘을 찌를듯 높아졌다. 

 

|남색을 즐기게 된 목종

김치양의 권력독점으로 조정이 기능을 상실하자 목종은 김치양을 내쫒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헌애왕우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이에 목종은 왕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절망한 나머지 엉둥하게 남색을 즐기게 된다.

 

그의 동성연애 대상은 유행간이라는 인물로 용모가 남달리 아름다워 목종은 그와 함께 남색을 즐기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목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유행간이 벼슬에 오르고 정사를 농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유행간은 목종을 마음대로 움직여 김치양과 마찬가지로 오만해지기 시작했으며 눈빛과 턱으로만 백관에게 지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다 유행간은 유충정이라는 인물을 또다시 목종에게 소개시켜 주는데 유충정 역시 수려한 외모로 목종의 사랑을 받게 되고 이 둘은 조정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낳은 아기를 왕위에 앉게 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민다. 

 

|헌애왕후 동생 헌정왕후의 아들 대량원군 이야기

당시 고려 태조의 유일한 혈통은 안종 왕욱이란 인물과 헌애왕후의 동생 헌정왕후의 불륜으로 태어난 대량원군 한명 뿐이었다. 헌애왕후의 친동생인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에 사가에 있다가 왕욱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고, 이를 알게 된 성종은 왕욱을 귀양 보내고 혼자인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다 죽게 되니 성종에 의해 대궐에서 양육되게 된다. 이 아이가 바로 대량원군이다.

 

헌애왕후는 자신의 조카인 대량원군을 없애면 김치양과 자신이 낳은 아이를 세자로 책봉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대량원군을 숭교사로 출가시킨 뒤 양주로 내쫒아 신혈사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계속 자객을 보내 죽이려했지만 대량원군은 겨우겨우 목숨을 지켜낸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은 혼란의 연속이었고 국정은 마비되었다. 특히 목종은 병에 걸렸다며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유행간과 유충정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왕명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다. 그러던 사이 목종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한시바삐 후계자를 결정하고자 했고 그는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유행간이 반대를 하게 된다. 

 

이에 목종은 은밀히 차기 왕에 대해 의논하고 대량원군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또한 전중감 이주정이 김치양 일파이므로 서북면 순검부사로 파견하고 서경도순검사 강조를 불러들이게 된다. 

 

|고려 '강조'의 난

강조가 왕명을 받고 서경을 출발하여 동주 용천역에 도착했을 때 내사주서 위종정과 안북도호장서기 최창이 찾아와 왕의 병세가 약화되어 이미 위독한 상태이니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왕명을 날조하여 북방의 군사권을 쥐고 있는 강조를 소환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미 백성들 사이에선 왕이 김치양 일파에게 살해 당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에 강조는 그 말을 믿고 다시 서경 본영으로 물러난다. 이때 헌애왕후는 강조가 개경으로 돌아오면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이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도중에서 그를 생포하기 위해 군사를 배치해둔 상태였다. 이 사실은 곧 강조의 아버지에게 전해졌고, 그는 강조에게 사람을 보내 '왕이 이미 죽고 없으니 국난을 평정하라'라는 편지를 보낸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강조는 병력 5천을 이끌고 개경으로 향했고 개경에 다왔을때쯤 왕이 살아 있는 것을 듣게 된다. 강조는 하는 수 없이 목종을 폐위하기로 결정하고 사람을 보내 목종에게 귀법사로 잠시 피해만 있으면 김치양일파를 제거하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목종이 안심하자 강조는 군대를 몰아 궁으로 진군한다. 

이에 목종은 그때서야 폐위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인과 유충정을 데리고 법왕사로 몸을 피한다.

 

|목종의 폐위와 죽음

목종이 궁궐을 빠져나가자 강조는 목종을 폐위하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세웠다. 또한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7명을 죽이고 헌애왕후 도당들을 귀양보낸다. 한편 법왕사로 떠난 목종은 최항을 시켜 강조에게 말을 내어줄 것을 부탁했고 강조가 말 한필을 보내주자 충주로 말을 몰았다.

 

그러나 강조가 후일을 걱정하여 목종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람을 보내 사약을 먹도록 했는데 목종이 거부하자 강조의 수하들이 목종을 살해하고 자살한 것처럼 꾸민다. 목종은 이렇게 객지에서 비명횡사하고 문짝으로 관을 삼아 시체를 보관하고 강조에게 보고하니 강조가 쌀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009년 2월 일어난 강조의 난으로 목종과 헌애왕후는 무너지게 되고 현종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이 강조의 난은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는 빌미가 되기도 하니 역사의 사건은 끝이 나지 않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목종, 어쩌면 어미 천추태후의 파렴치한 행동들이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만들었고 이는 남색을 즐기며 국정운영을 포기했던 인물로 만들었으며 그렇기에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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