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서양

동화의 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15. 11. 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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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는 누구인가?


미운오리새끼, 성냥팔이소녀, 인어공주, 엄지공주를 읽어본적이 있는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 봤을 법한 이 동화의 작가는 바로 동화의 왕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초상화>


안데르센의 어린시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덴마크의 오덴세라는 고장의 가난한 구둣방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난히 작고 못생긴 얼굴에 몸집에 비해 손발이 너무커서 어렸을 때부터 귀여워보이지 않았으며 매일마다 울보처럼 울기만 하는 아이였다고 전해진다.


안데르센은 어린시절부터 나가서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혼자 놀기를 좋아했으며 인형놀이를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또 가난한 집 환경과 더불어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버지 역시 일찍 여의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면서 더욱 가난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고운 목소리와 연기력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안데르센의 재능은 오델로의 여러 유명가문에서 그 재능을 인정하면서 멋진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는 꿈을 꾸었고 무작정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14세였다.


<못생긴 안데르센>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


막상 연기자가 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온 안데르센이었지만 그는 여러 극단에서 퇴짜 맞기 바빴고 그를 받아준 곳에서도 재능이 부족하다며 연기자로써의 안데르센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안데르센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연기자가 되기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또 그는 한편으로 희곡을 직접 지어 여러 극단에 보내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 그의 희곡을 통해 안데르센의 장래를 알아본 '요나스 콜린'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요나스 콜린은 당시 덴마크 궁정에서 정계의 중요 정치으로 그는 안데르센에게 기본학력을 위해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을 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콜린은 안데르센에게 생활비와 장학금을 대주며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었다.


한편 이렇게 힘들게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게 된 안데르센이었지만 나라에 돈을 받고 공부하고 콜린이라는 정치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질투한 학교장과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해서 콜린은 안데르센을 학교에서 나오게 하여 개인지도를 받게 해주었다. 


이러한 콜린의 지원속에 안데르센은 공부를 놓지 않았고 마침내 1828년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그는 대학교 재학 중에 그 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도보여행기>와 함께 번번히 당했던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떠났던 1833~4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것을 소설화한 <즉흥시인>을 발표해 당시 문학계의 극찬을 받으며 그야말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안데르센의 이름을 알린 즉흥시인>


 |동화작가로서 안데르센


즉흥시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안데르센은 30살이었던 1835년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뜻밖의 동화를 내놓으면서 동화작가로서 그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안데르센은 이후 <엄지공주>,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 등을 잇달아 세상에 내놓으며 덴마크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특히 인어공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었는데 많은 문학 비평가들로부터도 그 작품성을 인정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안데르센은 어느 귀족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는데 그 집 뜰을 거닐다 연못을 보게 된다. 그 연못에서는 커다란 백조 한마리가 새끼 백조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한마리의 백조만 뒤쳐져서 볼품 없는 모습인 것을 발견 했다. 여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 안데르센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백조 이야기를 담은 최고의 히트작 <미운오리새끼>를 발표하게 되었고 이제 유럽에서 안데르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안데르센의 역작 미운오리새끼>


 |사람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공전의 히트작을 통해 유럽 제일의 작가가 되었고 덴마크의 자랑이 되었다. 그는 1867년 딱 50년만에 찾은 고향 오덴세에서 최고의 환영회를 받았고 나름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꿈을 이루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안데르센이었지만 그는 가족하나 제대로 없는 독신이었다. 그가 고백했다고 알려진 여인들은 항상 그를 거절했고 특히 젊은 시절 안데르센이 사랑했고 고백을 거절해 여행을 떠나고 <즉흥시인>이 탄생하게끔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리보르그 보이트에게 거절 당한것이 안데르센의 독신의 이유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삶에 있어서 여인들에 대한 고백은 보이트 이후에도 이어졌으나 모두 그의 외모 때문인지는 모르나 거절을 했다고 알려져 자연스러운(?) 독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의 성정체성이 양성으로 애매해지면서 여러 남성들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 것에 신빙성이 쏠리고 있는데 안데르센은 실제로 많은 남성들에게 고백을 했다고 알려져 있고 또 여기서 더 나아가 남매지간인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그의 성 정체성이 애매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여튼 안데르센은 1875년 8월 4일 오전 11시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유명인들이 찾아 왓으나 정작 그와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은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어려서 늘 못 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미운오리새끼'를 쓸 수 있었다.

내가 어려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다.

나에게 역경은 진정 축복이었다.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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