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정도전, 드라마에서 나오는 정도전은 누구인가?

윤여시 2013. 12. 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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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드라마에서 나오는 정도전은 누구인가?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치고 정도전이 등장하지 않은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인물이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설하고 조선의 밑바탕을 그렸던 정도전. 그는 과연 누구일까?


|정도전의 유년시절과 벼슬에 오른 초반부



삼봉 정도전

 

호는 삼봉. 관상을 볼 줄 모르나 그 얼굴만 봐도 기개가 느껴진다.


삼봉 정도전. 그는 고려 말 충혜왕때에 태어났으며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의 아들이다. 정도전은 어렸을적 부터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중 한명인 이색의 문하에서 나중에 정적이 되는 친구 정몽주와 함께 공부하였다. 어렸을 적부터 혼란했던 고려말 상황을 보며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역성혁명의 꿈을 키워온 정도전은 당시 고려를 혼란케 하는 권문세족과 망해가는 원나라, 불교를 중심으로한 타락한 세력들을 보며 깨끗하고 건실한 유교의 나라를 꿈꾸게 된다.


이후 고려 말 다시 원나라를 몰아내고 고려를 일으키려던 공민왕이 즉위하자 스스로 성리학 교관이 되어 벼슬에 올랐으나 공민왕이 갑작스레 죽고 우왕이 왕위에 오르며 다시 권문세족인 이인임이 정권을 잡고 친원정책을 펼치려 하자 정도전은 이에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백성들의 삶을 보며 진정한 민본주의를 생각하게 된다. (정도전은 당시 정권을 잡은 이인임 같은 권문세족에 맞서 원나라 사신 접대를 그 앞에서 거부하며 친명정책을 끝까지 주장했다.)


|정도전 이성계를 만나게 되다




단양에 있는 도담삼봉. 정도전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다 한다 


정도전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 영주와 안동 제천 등지를 돌며 성리학 강의와 후진을 양성 했지만 권문세족은 정도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때문에 김포와 부평 등지로 올라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정도전은 1383년 그의 나이 41세가 되었을때 쯤 함흥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게 된다. 고려 왕조가 한계가 있다고 느낀 정몽주는 당시 왜적과 홍건적들을 물리치며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이성계의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아간 것이다. 


이성계를 찾아가 그의 군사들을 살펴본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위해 군사력이 필요함을 직감하고 있던터라 이성계의 정예병사와 군기에 만족함을 금치 못하였는데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이 군사로 무엇을 하지 못하겠는가" 라고 떠보며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전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도전, 어쩌면 주군으로서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꿈꾸고 만들어갈 왕조를 세우기 위해 이성계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도전의 역전 인생 위화도 회군




조선왕조의 중심 한양을 세우는 것에도 정도전은 앞장섰다 


하지만 아무리 용맹하고 날쎈 정예병이 있는 이성계와 정도전이었지만 고려 왕조를 무너트리고 그들의 꿈을 이룰만큼의 군사력은 아니었다. 그러던중 그들에게 천운이 다가오니 바로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이다. 당시 무너져가는 원나라와 뜨고 있는 명나라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던 고려 조정은 무리한 북벌을 감행하며 명나라를 공격하려 했는데 이에 이성계를 비롯 정도전은 끝까지 불가침론으로 맞서며 명나라 정벌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고려 우왕을 비롯 최영 장군 등은 이성계와 조민수 등에게 대군을 내주며 명나라를 치라고 명령했고 이성계와 조민수 등은 하는 수 없이 명령에 따르는 척하다가 압록강 하중도인 위화도에서 군사를 개경으로 돌려 궁궐은 물론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고보면 당시 고려조정은 세계의 조정도 그리고 사람도 볼 줄 몰랐던 것 같다. 이성계에게 대군을 내줬으니 말이다.) 


|정도전 스승 이색과 오랜 벗 정몽주와 정적이되다




태조 이성계  


위화도 회군 이후 모든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옹립하였다. 최영, 이인임 등은 물론 같이 반란을 일으켰던 조민수 세력까지 제거해나가며 권력을 독점해나간다. 또한 권문세족들의 토지를 몰수 하고 토지개혁 및 조세개혁등을 단행하며 급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그려간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급진적 행보에 다소 온건개혁파인 스승 이색, 친구 정몽주 등과 사이가 멀어지며 정치적으로 적이 되는 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얼마 후 우왕이 유배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정보를 입수하고 우왕을 강화도로 다시 유배시킨 이성계와 정도전은 창왕을 폐위시키고 다시 공양왕을 세웠는데 공양왕은 이미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정도전은 이 같은 권력을 바탕으로 불교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고 권문세족들을 불교도로 몰아 모두 몰아냈다. 이뿐 아니라 자신과 정치의 뜻이 맞지 않았던 정도전은 그의 스승 이색을 탄원하며 쫒아내라는 상소를 올리기 까지 하였고 이에 더 이상 보고 있을수만은 없었던 정몽주 역시 조정의 여론을 모아 정도전을 유배시키는 어릴 적 정은 이미 온데간데 없는 정치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정도전은 정몽주의 이 같은 정치적 공격에 극심한 반감을 품고 나주로 귀양을 가게 되는데 정몽주는 이 기회를 잡아 정도전을 비롯 이성계를 몰아내고자 하였고 자객을 보내 정도전을 제거하고자까지 하였으나 이를 눈치 챈 정도전이 때를 피해 실패했다. 이 후 귀양에 풀려나 고향인 영주에 머무르던 정도전은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자 다시 개경으로 올라와 이성계의 품으로 향한다. 


|정도전 조선 초기 기틀을 닦다






우리의 경복궁... 정도전이 없었다면 볼 수 있었을까?


정도전은 이때부터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이성계를 태조로 추대하며 정도전은 개국공신으로서 판삼사사와 판의흥삼군부사 같은 요직을 맡아 흩어진 병권을 모으고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의 새로운 문물제도를 정비한다. (즉 지금의 정권교체의 인수위윈장이 되어 모든 것을 총괄했던 것이다.)


이성계 역시 정도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며 그의 능력을 믿었고 정도전은 한양천도는 물론 종묘의 위치, 한양의 궁문의 이름은 물론 한양의 모든 것을 총괄했다. 당시 이성계가 존경했던 문학대사는 한양의 인왕산 터에 경복궁을 짓기를 원했으나 정도전만이 유일하게 이를 반대하고 나서며 지금의 자리에 경복궁을 짓게 했다. 또한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 같은 이성계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랫말을 직접만들기도 했으며 이 노래들은 조선왕조 내내 궁중에서 연주된 명곡이 되엇다고 한다.( 행정가임과 동시에 지금으로 말하면 명 작사가이기까지 한 정도전... 윈스턴 처칠이 부럽지 않은 조선의 천재였다.)


또한 조선왕조의 새로운 법전인 <조선경국전>을 지어 조선 정치 개혁의 기본방향을 제시 했고 불교와 도교 등을 탄압하며 성리학을 앞서 내세워 조선의 기틀과 뿌리를 만들어냈다.  




 


고려 말 그렇게 요동정벌을 반대했던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위해 군사를 모은다


정도전은 조선왕조가 건국 되자마자 요동정벌을 위한 꿈을 다시 꾼다. 요동정벌을 위한 군사를 모으는 방법으로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귀족과 신하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들을 모아 충당하자고 정도전은 주장했는데 이 같은 정도전의 생각은 당시 세자가 안되면 여차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이방원에게 반감을 갖게 됬다. 이에 이방원은 명나라로 떠나는 조정 사신들에게 사주하여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명나라에 고하게 한다. 


명나라 역시 이 같은 정도전의 행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정도전을 잡아드리라고 조정에 압박을 가했지만 정도전은 이를 무시하고 함경도 지방의 방비를 강화하고 성보를 수리하며 영토를 수복하며 왔으나 본격적인 요동정벌은 이성계와 당시 신료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전쟁 이상으로 당시 이방원과 같은 왕자들과 신하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을 약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을 수 있다 하겠다. 


|왕자의난으로 인해 죽음을 면치 못한 정도전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책들이 발간되고 있다. 


정도전은 분명 자신이 이성계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당시 사상으로써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는데 옛 장량이 유방(한 고조)를 선택하여 자신이 원하는 나라인 한나라를 세웠다는 듯한 언행을 자주 했는데 이는 자신이 마치 이성계를 선택해 왕위에 올리고 꿈꾸는 나라를 건국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즉 세습되는 왕이라는 것보다는 재상이 중심이 되는 마치 지금의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앞서가는 생각을 했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자 방석을 직접 가르치며 방석을 왕위에 올리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도전의 이 같은 행동에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불만을 갖게 되었고 왕이 중심이 되는 왕조정치를 원한 이방원과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이방원은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자신의 동생 방석을 죽이고 정도전 역시 주살하게 된다. 조선의 기틀을 만들었고 신하들이 정치를 하는 순간을 꿈꿨던 정도전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드라마 속 정도전




비록 악역으로 내비쳐졌지만 정도전의 생각이 스토리에 가장 어울리게 만들어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정도전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조선 왕조가 세워지는 시기와 조선초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는 한번쯤은 꼭 등장했다. 특히 <뿌리깊은나무>에서 정도전이라는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가 세우려 했던 조선과 민본주의, 재상이 하는 정치 등은 스토리의 중심이 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용의눈물>이나 <대풍수> 등에서 정도전은 아무래도 이방원(태종)의 중심으로 극을 풀어가다보니 항상 정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었고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을 가로막는 악역이라고 정도전을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나 생각 할 수 없었던 왕조 정치를 탈피하여 백성이 중심이 되는 정치와 재상과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등은 분명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진보한 생각이었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생각이었다. 내년 2014년에는 조선왕조가 중심이 되는 사극이 아닌 정도전이 주인공이 되는 KBS1 대하사극 <정도전>(조재현, 유동근 출연) 또 사극 <파천황>이 내리 나올 전망이라고 하니 정도전은 가장 핫한 인물이 될 듯 하다. 


과연 정도전의 입장에서 풀어나간 드라마가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지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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