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김구선생의 안타까운 서거와 암살범 안두희민족의 영웅 김구선생의 안타까운 서거와 암살범 안두희

Posted at 2013. 9. 11. 22:30 | Posted in 국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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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김구의 안타까운 암살

자나깨나 이렇게 민족만 생각했던 지도자가 있었을까? 하늘은 한 나라에 지도자 한명씩은 꼭 보내 준다고 생각한다면 김구 선생은 분명 하늘이 내린 지도자가 분명했다.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쓰려면 이 블로그 통째로 연재해도 모자르니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던 그때. 모든 민족이 슬피 울었던 그때로 한번 들어가보자.

암살당한 김구 선생

1949년 6월 26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한과 공산주의 산하의 북한이 단독임시정부를 수립한지 일년이 채 안됬던 날이 었고 이때부터 앞으로 1년후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나났던 그 날. 1949년 6월 26일...... 그날 김구 선생이 묶던 경교장에 당시 육군 소위였던 안두희가 찾아왔다. 당시 김구 선생은 붓글씨를 쓰고 있던 중이었고 안두희는 군복 차림으로 김구선생에게 안부 전하기를 원한다며 검문 검색 없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구선생과 독대 도중 45 구경으로 김구 선생을 쏴 . 김구 선생은  그 자리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하게 된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김구선생의 경호원에 붙잡혀 당시 이승만 정권의 특무대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안두희는 종신형을 받지 않고 되려 석달 뒤 형이 15년으로 감축되었고 그 후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포병장교로 복귀 하였으며 1953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1.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 이유? 

당시 민족의 독립 영웅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앙받던 김구 선생의 죽음에는 많은 의혹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이 이승만 정권의 개입설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김구 선생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당시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위안이 될 만큼 존경받는 인사였다. 김구 선생은 독립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냉전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나라는 반으로 나뉘게 된 상황을 보면서 절대 분단은 안된다며 김일성과의 남북 협상을 끊임 없이 시도 했고 3.8선을 넘어 다니며 분단을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남과북은 서로의 독립 정부를 세운 상태였고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권은 자꾸 북한과 연계하려는 김구 선생의 행동이  눈엣 가시였기 때문에 김구 선생 암살의 심증은 충분했다. 또 안두희의 제대로 된 증언은 듣지 못했지만 안두희의 입에서 당시 고위 관료와 군인이 이름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이승만 정권 및 권력자의 연루설은 부정 할 수 없는 의혹이다. 특히 권력에 눈이 먼 고위 군인이나 국회의원들이 연루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김구 선생과 다른 생각으로 나라걱정을 한 것이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거의 백프로 자신들의 권력 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안두희의 죽음

안두희

민족의 반역자라 불리며 종신형을 받았던 그는 곧바로 15년 감형을 선고 받았고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육군 장교로서의 복귀와 6.25전쟁이 끝나고 육군 소령에까지 오른다. 이뿐 아니라 6.25전쟁 후에는 복권이 되어 그의 죄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분명 법의 집행에도 민족의 영웅을 죽인 범인으로서 비호 받았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는 전쟁 후 강원도에서 군납공장의 사장으로 잠시 있다가 4.19혁명 이후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김구 선생 살해 진상규명 위원회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1960년에는 진상규명위원회 간사 김용희에게 붙잡혔으나 공소시효로 풀려났지만 바로 1년뒤인 백범독서회장 곽태영에게 목에 칼을 찔리게 된다. 결국 살아남긴 했지만 안두희에게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 하는 사람으로 보일만한 공포를 얻었다.

이후 본부인과 이혼하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며 20년을 숨어 공포에 살던 그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당시 버스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몽둥이)를 맞고 살해당하게 된다. 백범 김구선생을 존경했던 버스기사 박기서씨는 안두희를 죽일 때를 기다렸고 기회가 포착 되자 살해한 성공 한 것이다. 이후 박기서는 동기가 참작되어 3년형을 선고 받던 중 김대중 대통령의 3.1절 특사로 1998년 풀려나게 된다.

민족에게 큰 아픔을 전해준 안두희는 결국 평생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위협속에 살던 인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 속에 김구 선생의 죽음에 대한 배후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영원히 비밀에 묻히게 됬지만 분명한 것은 김구 선생이 품었던 꿈은 안두희의 흉탄으로도 막을 수 없었고 역사에 대한 빚은 반드시 돌려 받게 된다는 교훈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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