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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최후를 맞은 대통령 경호처장 차지철! 그는 과연 누구일까?

윤여시 2020. 1. 1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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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최후를 맞은 대통령 경호처장 차지철! 그는 과연 누구일까?

10.26사태의 어쩌면 원인 제공자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대통령을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대통령 경호처장 차지철이다. 김재규의 탄환에 먼저 목숨을 잃은 차지철 그는 과연 누구이길래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기까지

 

어머니가 아버지의 두번째 여자이기에 서자로 태어난 차지철은 어렸을 적 배다른 형제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용산고등학교 졸업 후 육사 시험에 도전했으나 낙방한 그는 육군 포병간부시험을 통해 포병간부후보생 출신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 공수특전단에 배치 받고 1960년 미국에 유학을 가 레인저 스쿨 코스를 밟는다.

 

1961년 박정희의 5.16군사정변 때 공수특전단 대위 계급으로 쿠데타에 적극 참여하여 출신가도를 달리게 된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의장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장 경호차장을 하게 되고 박정희가 집권하자 1962년 소령 진급과 동시에 예편하여 1963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30살의 나이로 국회에 입문한다.

 

1964년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양대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등을 따며 정치계로 입문한 그는 국회 외무, 내무위원장까지 맡으며 그야말로 출생가도를 달린다. 1967년, 1971년, 1973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당선되며 박정희의 비호 아래 자신만의 정치를 해간다. 

그러나 1974년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자 책임을 물러난 경호실장 자리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40살의 나이로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다. 

 


|차지철.. 권력을 휘두리기 시작하다. - 경호실장 이후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되자마자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현역 중장을 경호차장, 육군 준장을 차장보에 임명하였다. 이는 육사에서 떨어진 자신만의 컴플렉스를 이겨내고자 한 행위로 추측된다. 

 

여기에 비상시에는 수도경비사령부도 지휘할 수 있도록 법을 개편하였으며 군인들에게 매일 거수 경례까지 받는 등 시작부터 그가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못봐줄 정도였다.

경호실장 전용식당을 마련하고 박정희를 향한 충성을 보여주는 '경호원가'를 만들어 임무교대 때 부르게 했다. 박정희가 낯간지러워 부르지 말라고 할정도였으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여기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을 향한 업무 간섭은 물론 중앙정보부에도 손을 대, 김재규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또한 박정희를 지키겠다며 한밤중에 전차 여러대를 청와대 주위에 돌리며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고 일주일에 한 번 국기 하강식이라고 해서 장차관을 초대해 행사를 치루기도 했다.   

 

박정희의 친위대를 만든다며 경호원들의 제복 등을 맞추는 한편 정치, 기업에도 개입하며 경호실장이 아닌 부통령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차지철의 최후 10.26사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될 당시인 10.26 사태는 차지철 역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주모자인 김재규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김재규의 말에 의하면 부마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할 생각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이 이에 동조하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예를 들며 부산 마산 시민들 100~200만명을 죽여도 되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해서 김재규 자신이 10.26사태를 일으키게 되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10.26 사태가 벌어지고 정관군에서 차지철을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으로 생각했다는 것인데 당시 육참총장 정승화는 차지철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생각했고 비상국무회의 당시 김치열 법무부 장관도 차지철이 까불더니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 전두환 역시 노태우에게 차지철을 의심했을 정도로 차지철은 대단했다. 여튼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총을 빼들어 차지철에게 먼저 총을 솼고 오른쪽 팔에 관통했다.

차지철은 총을 맞은 직후 화장실로 도주했는데, 대통령을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인물이 박정희 대통령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다. 차지철이 화장실로 도망가자 박정희 대통령을 쏜 김재규는 자신의 권총이 나가지 않자 다른 총을 들고와 화장실에서 빠져나오는 차지철을 만나게 된다. 차지철은 다른 경호원들을 찾다가 김재규가 쏜 총알에 맞고 최후를 맞이한다.  

 

|차지철 사후 평가

 

앞서 말한 것처럼 차지철은 10.26사태의 간접 원인 제공자라 말할만하다. 경호실장의 권위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정관군 그 어디에도 손을 안뻗치는 곳 없이 경거망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희는 본래 김종필을 비롯한 2인자라 불리는 인물들에 대한 견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더 굳건히 했는데 예외적으로 차지철에게만은 견제를 하지 않았고 이는 박정희의 통제력과 통찰력의 상실이라는 정권말기적 징후로 보기도 한다. 

여튼 차지철을 보는 시각은 좌우 할 것 없이 비판적이며 대표 적인 권력 농단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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