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의 끝판왕! 강화도에 살던 조선의 바보 왕? <킹덤> 이야기 속 철종세도정치의 끝판왕! 강화도에 살던 조선의 바보 왕? <킹덤> 이야기 속 철종

Posted at 2020. 3. 31. 20:16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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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의 끝판왕! 강화도에 살던 조선의 바보 왕? 철종 

시골 어느 촌구석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한다면? 영화 <킹덤>에서 후손이 끊긴 왕 대신 찾고 찾고 찾아, 강화도에 사는 왕족을 찾아낸 이야기의 모티브가 바로 조선의 25대 왕 철종이다.

 

철종의 어진 

|방계중의 방계 철종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가?

 

철종의 족보

철종은 사도세자의 후손 중 한명으로 사도세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조 말고도 서자가 몇명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이 은언군으로 이원범의 할아버지가 된다. 

은언군에게는 자녀들이 여러명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5남이 이원범의 아버지인 '이광'이며 이광의 3남이 바로 철종 이원범인 것이다. 즉 조선 숙종의 첩 아들이였던 영조, 역시 첩의 아들인 사도세자, 그리고 그 첩의 아들인 은언군과 그 서자인 전계대원군의 서자이니 방계 중의 방계였던 것이다. 

또한 할아버지 은언군은 일찍이 정조때에 홍국영과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아버지 이광과 교동도로 유배를 오게 된지 오래였고 은언군은 순조 때 이미 사사까지 당해 몰락한 왕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은언군이 사사될 때 철종의 아버지 이광은 살아남아 40년을 교동도에서 살다가 귀양이 풀려나 한양으로 왔고, 그때 철종이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철종이 14살 때, 1844년 조정에서 민진용이 큰 형이엇던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하면서 이명은 처형되고 이원범은 작은형과 함께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강화도로 다시 유배된다. 이후 형과 19살때까지 강화도에서 5년을 농사 짓고 사니 그 운명이 기구 하다 할 수 있겠다. 

강화도 행렬도

|왜 철종이 왕이 되어야 했나?

 

조선 24대 왕인 헌종이 23살의 나이로 갑자기 급사하자 정조의 직계 후손은 끊기게 된다. 때문에 영조의 후손들 중 왕위를 이을 자를 찾아야 했고 그때 족보를 뒤지다 찾아낸 것이 바로  이광의 아들들 밖에 없었고 그 중 왕실 최고 어른인 순원숙황후 김씨가 이원범을 왕으로 지명하게 된다. 

순원왕후 김씨는 이원범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헌종의 가장 가까운 혈통인 이원범이 차기 국왕이 되게 하였고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조정은 곧바로 안동김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삼정은 문란하고 매관매석은 끝없이 일어났으며,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어 농민봉기가 들불처럼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탄생한 동학의 교주 최제우를 처형하기도 했다. 

 

|철종의 죽음과 그 의미

철종 역시 처음에는 개혁과 조정을 고쳐보려 노력하다 안동김씨의 세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여색과 술로 시간을 때웠으며 1863년 33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상 철종은 전통적 방식으로 편찬된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후 고종과 순종은 경술국치 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안동김씨는 철종의 죽음에도 자신들의 세도 정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의 죽음을 신경쓰기보다는 차기 왕을 고르는데 정신 팔려 있었다.

 

철종 역시 그 뒤를 이을 후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아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차남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집권한 흥선대원군에게 몰락하게 된다. 

 

 

|철종의 이야기 
 

철종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보이다. 강화도에서 자라다 한 순간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글도 못읽는 바보라는 것인데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철종이 강화도에서 산 것은 14살 부터 19살까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부족하나마  4세에 천자문을 떼었고 통감, 소학 등 초급 교육 등은 이미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원범을 왕으로 데려가려고 조정에서 행렬을 보냈더니 자신을 죽이는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에 따라 가마에 올라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원범이 살던 강화도 집은 이후 용흥궁이라는 집으로 격상되었으며 이 용흥궁은 지금도 강화도에 남아 있다.  

 

그의 재위기간 동안 진주민란을 포함하여 삼남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나름 삼정의 문란 등을 개혁하려고 조세 개혁제도를 시행하려 했으나 당시 세도정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행되지 못했고 아무런 뜻도 이루지 못했다. 

철종은 강화도에서 살던 그때를 그리워 해 당시 먹던 막걸리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궁궐생활을 많이 답답해 했다고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영화 킹덤 속 노산군의 사례가 아마 이 철종의 모습을 본딴 것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강화도의 방계 혈통 철종의 인생은 드라마 같고 파란만장 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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