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안동김씨 김조순 그는 과연 누구인가?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안동김씨 김조순 그는 과연 누구인가?

Posted at 2021. 2. 25. 20:06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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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안동김씨 김조순 그는 과연 누구인가?

조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과연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정조때부터 슬슬 그 조짐을 보인 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것은 바로 김조순이다. 정조의 아들 순조 대에 이르러 정권을 장악하고 그 후대까지 영향을 끼친 김조순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김조순의 가문과 출생

 

1765년 영조41년에 태어난 김조순의 할아버지는 김창집으로 노론 4대신 중 1명이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병자호란 때, 끝까지 청나라 군대에 맞서 싸우자는 김상헌의 후손이기도 하다. 줄여서 말하면 금수저 집안 그자체였던 것이다. 

여기에 능력도 뛰어나서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에서 두루두루 신망까지 높았을뿐 아니라, 당쟁을 없애야 한다고 정조에게 주장했던 인물이다. 여기에 문장도 잘쓰고 죽화도 잘 그려 그야말로 당대 신망이 높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1785년 20살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 이조판서까지 역임하였고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벼슬길도 탄탄했다. 또한 정조의 신임아래 어린 순조를 잘 보필해달라는 유지를 받은 규장각의 신하 중 한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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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의 첫째 달 순조에게 시집가다!

 

정조는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자, 김조순의 딸을 순조의 비로 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순조비로 김조순의 첫째 딸이 순원왕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정조가 순조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죽게되자 김조순의 지위도 애매하게 될 뻔했다. 여기에 당시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의 섭정까지 맡으면서 위기를 맞나 싶었는데, 김조순은 두번이나 병조판서의 자리에서 사직을 해달라는 낮은 처신으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벽파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정순왕후와 벽파는 김조순이 속해 있던 시파에게는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했는데, 특히 신유박해(천주교 신자 박해)때 김조순의 친족중 한명인 김건순이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친분관계였던 김려 역시 체포 당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순조가 15세 되던 해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면서 김조순이 어린 순조를 대신해 섭정을 진행하니 정권을 잡게된다. 

 

구르믈그린달빛의 김조순

 

|김조순 정권을 장악하다

 

순조의 친정으로 정권을 잡은 김조순의 세력은 노론 벽파를 정조의 유지를 버린 역적으로 몰아 세력을 견제하였다. 여기에 정순왕후가 순조 친정 후 1년 뒤 승하하자 정순왕후의 가문인 경주 김씨 벽파가 숙청되었다.

 

자신과 10촌 친척인 벽파 김달순은 사약을 받았고 당수였던 김종수 및 심환지 , 남인 계열까지 모조리 숙청된다. 여기에 빈자리를 김조순 세력인 시파계열과 규장각의 신하들이 메꾸며, 정권을 장악한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김조순이 전면에 나섰다보기다는 그 세력이 장악한 것이긴 하나, 김조순의 의견없이 진행하지 않을 것 같아 막후정치라는 의견들도 있다. 여튼 이러한 숙청 작업을 거쳐 결과적으로 모든 권력이 안동김씨에 집중되었다. 김조순은 티를 내지 않고 정국을 뒤에서 운영하며 자신과 가문의 세력을 키웠던 것이다.

 

 

|김조순의 죽음과 역사적 평가

 

김조순은 1832년 죽었는데, 사후에는 충문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고 1833년 종묘의 정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그의 묘역은 부인 청양부부인 심씨와 함께 경기도 이천에 묻혔다. 그는 세번째 아들 김좌근으로 이어지며 조선 후기를 망친 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김조순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우리 태평 성대의 다스림을 돈독히 도울 수 있었다. 이에 조야에서 모두 화협하여 이르기를, 
‘군자의 뛰어난 덕이라’고 하였으니, 문장의 세상에 뛰어남은 그 나머지 일이었다. 
그러나 본래 성격이 인후함에 지나쳐 인륜을 돈독히 닦았으므로
 그 미침이 더러 범박에 이르렀으며, 또 언행으로서 삼가고 조심함이 지극하여 일이 순상함이 많았으니, 

 

- 1832년 순조 32년(청 도광(道光) 12년) 4월 3일 기묘

 

즉, 김조순은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별다른 구설수 역시 없이 정국을 이끌었으며, 공을 세울 수 있었음에도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매사 신중하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다라는 것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정국을 쥐고 자신의 가문의 세도정치를 시작케 한 것을 볼 때, 어쩌면 김조순이야 말로 진정한 능력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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