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소의윤씨와 광해군의 딸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숨겨진 역사! 소의윤씨와 광해군의 딸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

Posted at 2021. 3. 2. 21:15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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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 소의윤씨와 광해군의 딸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

비운의 왕 광해군, 조선 역사에서 광해군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왕도 없겠지만 어쨌든 그는 폐위된 왕이었고 그의 가족들은 모두 폐주의 자손이라는 멍에를 쓰고 뿔뿔히 흩어지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광해군의 후궁 소의윤씨와 그 사이에서 난 딸이 있다. 과연 누구였을까? 

 

보쌈-운명을훔치다에서 소의 윤씨역을 맡은 소희정

|소의윤씨는 누구일까?

 

소의 윤씨는 파평윤씨로 아버지는 윤홍업, 어머니는 창원 유씨 유필영의 딸로 전해진다. 1618년 정 2품인 소의로 승격이 되었고, 1619년 광해군의 유일한 딸이자 후궁들 중 유일하게 딸을 얻는다. 하지만 4년 후 1623년, 인조반정 다음날 음행을 행했다 하여 처형되어 죽는 후궁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음행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며, 계해정사록에는 한달 뒤에 사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쌈-운명을훔치다 광해군과 소의윤씨의 딸 역을 맡은 '유리'

|광해군의 딸이자 폐 옹주 , 전주 이씨 그녀의 삶은?

 

광해군은 1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그 중 1녀가 소의 윤씨에게서 낳은 옹주였다. 1619년 6월 23일 탄생한 옹주는 광해군이 45세로 귀하게 얻은 딸이었다. 그러나 옹주가 5살이었던 1623년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일가는 풍비박산이 난다. 이때 어머니 소의 윤씨는 참형에 처해지고 옹주는 어려서 겨우 살아남아 외삼촌 집에서 살게된다. 아마도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던 광해군의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여튼 옹주는 폐주의 딸인지라, 당시 나이로 스무살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1641년 광해군이 제주도에서 유배되었다가 죽은 후 옹주를 불러 본궁에 거주하게 한다. 이후 3년상이 끝난 후 왕실에서 주선하여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때 옹주의 나이 2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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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는 음성박씨 가문의 박징원(1625-1690)에게 시집을 가 2남 3녀를 둔다. 이때 3명이 먼저 딸이었고, 뒤에 아들 2명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라고 여겨졌던 때라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사실 왕의 사위 부마가 되면 다른 첩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시집온 옹주가 죽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가 끊길 우려가 있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꺼려왔으나, 옹주는 폐주의 딸이었던지라 박징원은 첩을 들여 옹주가 딸 3명을 낳을 때 아들을 이미 낳았다고 전해지며 옹주가 죽자 자식을 더 낳았다고 알려졌다. 

 

광해군 딸 옹주 묘 (출처 남양주시청)

인조는 광해군의 아들이었던 폐위된 세자가 죽자 모든 혈육이 없었으므로 광해군의 제사를 옹주로 하여금 드리게 했고 쌀과 콩 그리고 찬물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후 옹주는 1664년(현종 5) 10월 29일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광해군의 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 옹주의 무덤 바로 위 언덕에는 그녀의 어머니 소의 윤씨 묘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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