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현대

실미도 실화 이야기 -2

윤여시 2013. 8. 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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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실화 이야기 -2

1.21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북한과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하는 전략을 검토하고 그로 인해 탄생 된 것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684부대이다. 그리고 비극의 시작은 이 684부대가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벌어진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설경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684부대원들은 사형수 나 기타 범죄자들로 나오게 된다. 즉 실미도에서 북한 김일성의 목을 따러 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에서 낙오된 자라고 표현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특수부대가 실제로 과연 범죄자들을 모아 놓고 만든 집단일지는 의문이다.영화가 1000만 관객이 넘은 후 사회적으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여론이 강해지자. 많은 언론들을 통해 실미도에 들어간 특전사들은 범죄자들이 아닌 일반 민간인이라는 증거들도 많이 밝혀졌다.

 

다시 돌아와 북한 1.21 김신조 부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실미도 684부대 역시 31명으로 훈련을 시작했으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된 훈련으로 인해 7명의 대원이 목숨으로 잃는다. 가히 그 훈련의 강도와 위험성을 7명의 죽음으로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영화에서 표현된 실미도 간호사 강간 같은 경우에는 실제가 아닐 확률이 높으며 그로 인해 죽은 대원은 더더욱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영화보다 오히려 많은 수의 훈련병인 세명이 마을 처녀 2명을 강간한 사실도 보고 되고 있으나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684부대는 3년동안 살인 병기로 변신하게 되고 북한 김일성 목을 따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게 된다. 

 

(사진- 위 사진은 1971년의 대한적십자사의 남북이산가족찾기 제의 사진이며 실미도 사건 이후 사진이다.)

이후 1970년부터 갑자기 화해모드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남북관계 때문에 실미도 부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감춰야 할 치부가 되게된다. 이에 곧 우리나라 정부의 제거 명령이 떨어지자 살인병기로서의 삶을 택하고 그 모든 고난을 참아오며 목표를 위해 훈련해왔던 684부대원들은 순식간에 24명의 기간병중 18명을 살해하게된다. 1971년 8월23일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들이 쏘면 모두 머리와 심장에 명중 되었다"

당시 생존했던 기간병의 증언이었다.

 탈출한 684부대원들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후 송도역 삼거리에서 첫번째 버스탈취를 하게 된다. 그러나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할때 감시하던 초병의 보고로 이미 육군 24인은 인천 옥련 고개에서 버스를 막기 위해 대기 하고 있었고 첫 번째 교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교전에서 684부대원은 단 한명도 다치지도 않았지만 육군 2명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684부대의 첫번째 탈취한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가 나며 다른 버스를 탈취해야 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주안 사거리 간석동 고개이다.  

"해치지 않을테니 몸을 숙여라" 당시 두번째 버스에 탔던 민간인의 증언이다.

 

이후 계속 되는 검문과 바리케이트에도 멈추지 않던 버스는 인천을 지나 지금의 부천 소사를 거쳐 2시 15분경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 가로수를 들이 받고 멈춰서게 된다. 여기서 684부대원들이 탄 버스는 완벽하게 포위되고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던 그들은 수류탄을 버스안에서 까 자폭을 하게 된다. 인질은 내보낸채로.... 

후에 자폭에도 살아남은 4명의 훈련병 역시 군사재판에서 소리소문없이 사형집행 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실미도의 비극이죠... 사망자도 출신도 아무것도 모르는 비극... 우리 역사속에 희생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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