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근거지, 조선의 대마도 정벌 이종무 그는 누구인가?왜구의 근거지, 조선의 대마도 정벌 이종무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19. 8. 26. 17:26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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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근거지, 조선의 대마도 정벌 이종무 그는 누구인가?

일본과의 경제 전쟁으로 관광객이 줄어 가장 큰 직격탄을 맞고 있는 대마도(쓰시마섬)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으로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왜구의 주 근거지로 우리나라 해안을 습격하여 약탈하는 곳이었다가 고려와 조선에게 점령당한 섬이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조선통시사가 일본 본토로 가기 위해 들렸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독도가 자기네들 것이라 우기는 일본의 말도 안되는 소리에 우리나라는 그럼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고 우스갯 소리를 할 정도로 인연 깊은 일본 대마도... 조선 초 그곳을 점령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대마도

|대마도 정벌 - 원인

대마도(쓰시마섬)은 그 섬이 크긴 하나 농사를 지을 땅이 부족하여 흉년이라도 들면 식량난에 허덕였으므로 일찍부터 
우리나라와 일본의 중개 무역 등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식량이 부족하거나 하면 그들은 왜구로 돌변해 고려말 조선초때까지 해안가를 습격해 우리 백성들을 약탈하곤 했다. 

1418년(태종 18년) 대마도에는 역시 큰 흉년이 들었는데 대마도주는 식량문제가 심각해지자 명나라 해안지역으로 가던 도중 우리 조선의 해안지역을 약탈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은 당시 자신의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의 자리에 있었으나 대마도 정벌을 할 것을 제안한다.  태종이 비록 상왕의 자리이긴 했지만 당시 군사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터라 가능했던 일이 었다. 

|대마도 정벌 - 이종무

이후 1400년 제 2차 왕자의난 당시 이방원의 편에 있어 이방간의 군사를 무찔렀고 이 공을 인정 받아 병마절제사까지 올라  승승장구 했던 장군이다.이종무는 공민왕 때 태어난 조선초 무신으로 1392년 조선 건국 후 왜군을 격퇴한 공로를 인정 받아 상장군까지 올랐다.

이후 1400년 제 2차 왕자의난 당시 이방원의 편에 있어 이방간의 군사를 무찔렀고 이 공을 인정 받아 병마절제사까지 올라 승승장구 했던 무신이다. 태종의 명을 받아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고 1425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세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회를 3일이나 중단하였고 "만리장성이 갑자기 무너진 것 같다" 며 애도 했다고 전한다. 

이종무

|대마도 정벌 - 전개

태종은 쓰시마섬을 정벌할 장군으로 이종무를 삼고 영의정 유정현을 삼도도통사로 삼았으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의 병선 227척과 병사 1만 7천명을 내주어 그야말로 쓰시마섬을 대대적으로 공략할 준비를 끝마친다. 1419년 6월 19일 거제도 남쪽에서 출발하여 압도적인 군세로 대마도주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대마도주가 이에 응하지 않자 왜구 1백여명을 참수하고 가옥을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조선과 명나라 포로를 구출하였으며 약 13일 후인 7월 3일에 이종무는 일부 군대를 남기고 거제도로 철수한다. 그럼에도 왜군이 답이 없자 태종은 당시 국방부장관격인 병조판서 조말생으로 하여금 대마도 도주에게 항복 권고문을 작성하라고 전한 후 귀화환 왜인에게 보내도록 한다. 그 권고문의 내용이 재미있는 것이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땅이기에 항복을 하든지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인데 이것으로 봐도 당시 조선이 대마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튼 이 권고문을 통해 대마도 도주는 항복을 하였으며 태종은 이를 받아드리면서 대마도에 상주해 있던 우리군을 철수 시켰고 이후 대마도는 조선의 통치권에 포함된다. 

조선통신사

|대마도 정벌 - 결과

조선의 대마도 정벌은 그 전개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압도적인 군세에 비해 싱거운 원정이기도 했고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전투다운 전투가 일어나지 않아 군사적 피해가 최소화된 원정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마도 원정을 통해 얻은 것은 꽤 큰데, 대마도주의 항복을 통해  그가 신하로서 조선에 병합되길 원하니 당시 조선의 힘을 알 수 있었으며  대마도 정벌을 통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고 일본과의 평화교류를 안착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겠다.


우리나라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쓰시마섬,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모진 풍파를 거쳐온 역사만큼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한일간의 무역전쟁의 피해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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