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

Posted at 2019. 10. 22. 14:57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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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한발 앞서간 지식인으로 평가 받는 정약용.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그의 형제들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정약용과 가장 친했던 둘째 형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라 평가 받는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 역시 정약용 못지 않은 위대한 실학자이자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신자 중 한명이었는데 정약전 그는 과연 누구일까?

출처: 한국해양수산과학기술원

 |정약전 그는 과연 누구인가? - 유배생활 전까지

정약전은 1758, 조선 영조 34년에 태어났다. 그는 조선 시대의 최고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의 둘째 형으로써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 이익의 학설을 따, 그의 제자인 권철신 아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작은 일에는 얽매이지 않는 대범한 성격으로 잘알려져 있다.

 

1783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90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의 관직을 역임했다. 이때 서양 학문과 사상에 익숙한 이벽, 이승훈 등 남인 인사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천주교에 마음이 끌려 천주교를 찾게 된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큰형수의 제삿날 당시 사돈이었던 이벽이 전해준 천주교리에 마음이 끌린 이후 관심을 깊게 가지다 이후 천주교를 멀리 하긴 했으나 그 반대 세력들이 이 같은 사실을 고하면서 문제가 일어나게된다.

 

여튼 이때 정약전의 세례명은 안드레아였는데, 정약전의 형제 중 동생 정약용을 비롯해 정약종 등이 세례를 받았다.

 

이후, 정조가 죽고 1801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천주교도들을 박해 하는 신유사옥이 일어나게 되고 아우였던 정약용과 함께 기나긴 유배생활을 떠나게 된다.

 

흑산도

 |정약전 그는 과연 누구인가? - 유배이후 자산어보를 집필하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된 이후, 그는 섬사람들을 두루 만나며 어보를 집필할 생각을 한다. 다만 정확한 어보가 그 당시에는 없었던지라, 어부들의 말을 들어 집필하여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섬사람들 중 장덕순, 창대라는 어부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들의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며, 어류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생각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안 정약전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물고기 연구를 계속 했다. 이는 자산어보를 집필하기까지 흑산도 어부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약전은 함께 유배를 떠난 정약용에게도 편지를 보내 자산어보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조언을 구하였는데 정약용은 책을 집필 할때, 그림 보다는 글로써 표현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정약전 역시 이를 받아드려 자산어보에는 어류에 대한 그림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정약용도 자신이 집필하는 저서에 대해 정약전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둘은 서로 편지를 통해 학문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고를 했다.

 

정약전은 같은 스승과 실학이라는 학문을 닦았기에 안목이 비슷하다고 전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아우를 그리워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흑산도에서 유배를 보낸지 16년만인 1816년 형인 정약전이 눈을 감으면서 결국 살아생전 정약용과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자산어보는 어떤 책?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온지 14년, 그가 죽기 2년전에 집필한 자산어보는 총 3편으로 나누어져 있는 책이다. 1편은 인류 73종, 2편은 무린류 43종, 3편은 잡류를 다루고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해양 동식물의 생태를 소개하면서 어부들의 증언과 직접 보고 작성을 했다. 또 그 맛과 요리법을 기록하는 것을 빼놓지 않아 실용적 측면을 강조했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는 현재 그 원본을 찾기는 힘들고 모두 필사본만이 남아있다. 소설속 목민심서에서는 무식한 산지기의 손자가 정약전이 죽은 후 자산어보를 벽지로 써버리는 만행으로 인해 필사본만 남았다고 하는 대목이 전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비과학적일 수도 있으나 19세기 후반 서양의 현대 수산생물학 이론에나 등장하는 어종의 서식에 따라 척추골수가 다르며 이를 통해 어종의 계군을 분류하는 방법등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정약전은 당시 수산물의 가치를 활용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자산어보를 집필하였고, 비록 유배지에서 죄인의 몸이긴 했으나 자신보다 신분이 훨씬 아래인 백성들에게 조언을 물어가며 하나하나 서술해간 그 의미 역시 자산어보를 더욱 값어치 있게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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