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명나라 총사령관 이여송임진왜란 명나라 총사령관 이여송

Posted at 2015. 2. 15. 00:10 | Posted in 세계사/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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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명나라 총사령관 이여송


임진왜란.. 왜의 조선 침략으로 나라의 명운이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는 가운데 조선 선조는 마지막 희망으로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 명은 이를 받아드리고 장군 이여송을 통하여 조선에 대규모 군대를 보낸다.. 이여송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임진왜란 명나라 원군의 총사령관 이여송

 


|이여송은 누구?


이여송은 조선족 출신 이성량 장군의 아들로 그 아버지 이성량은 요동총병관까지 지낼 정도로 꽤 잘나가는 무장 가문이었다. 이여송은 일찍이 건주위(영락제 때 여진족을 누르기 위하여 남만주 건주(지금의 길림에 두었던 주둔군)의 여진인 왕고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의 실권자 장거정이 토벌 사령관으로 기용한 인물로 이 밖에도 요동에서 일어난 여러 난을 제압하며 그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독군무방해어왜총병관으로 임명되어 조선땅을 밟게 된다. 그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고국을 살리러 왔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는 뼛속까지 명의 이익에 따르던 장수로 침략당한 조선을 높이며 보진 않았던 것 같다.





평양성탈환도에 그려져 있는 이여송

 


|이여송의 임진왜란 행적 - 평양성 탈환


임진왜란이 일어난 조선으로 명나라 원군 4만 3천명을 이끌고 입성한 이여송은 도착하자 (선조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명나라 원군을 맞았다 한다) 오만한 자세로 뜸을 들이다가 조선의 유성룡, 이덕형 등이 전투를 해달라고 촉구하자 그제서야 조선의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할 준비를 한다.


이여송이 거느린 군대는 요동병, 남방병(중국 본토 출신 군사)으로 편성 되어 있었으며 요동병의 경우에는 이여송과 함께 여러 전투를 한 경험이 있었고 남방병은 명나라 본토에서 여러 대포화 화전 등으로 무장해서 보낸 병사들이었다. 


여튼 이여송은 1593년 1월 8일 마침내 평양 공격의 명을 내렸고 대포와 화전으로 평양성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천지가 명나라 군대가 쏘는 포격소리로 가득차자 고니시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은 조총으로 반격했지만 그 상대가 되지 못하고 그날밤 한양쪽으로 급히 도망가며 조명연합군은 쉽게 평양성을 탈환한다.




KBS1 <불멸의 이순신> 이여송

 


임진왜란 행적 - 벽제관 전투


평양성 전투에서 남만병이 주가 된 대포의 힘으로 대승을 거둔 이여송은 이후 곧바로 개성을 수복하고 한양을 탈환하고자 자신의 군대였던 요동병만을 데리고 출격을 하는데 이는 자신의 군대였던 요동군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자 하는 그의 조금은 모자란 생각 때문이었다.


마치 모든 전쟁의 승리를 잡은 듯 개성을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이여송은 벽제관(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왜군의 기습을 받게 된다. 이 전투에서 이여송과 그의 군대는 죽은 목숨이었지만 부장들이 온몸으로 그를 지켜내며 간신히 목숨만 거두고 도망친다. 


하지만 이여송은 벽제관 전투에서 패했음에도 뻔뻔하게 조선조정과 명나라에는 승리를 했다고 거짓보고를 하는 바람에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여송이 승리 했다고 기록 되었고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오랫동안 알려져오기도 했다. 그런데 류성룡은 말로 승리를 했다하나 왜군의 수급도 없고 기세 좋게 내려가던 명나라군이 개성으로 다시 피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징비록에 정확히 이여송의 무리한 진군이 불러온 벽제관전투의 패배에 대해 기입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패배로 명나라군은 요동병 1500명의 사상자가 났고 이여송을 지키려던 부장들이 죽었으며 많은 지휘 장수들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역사 만화에 등장한 이여송



이여송의 이후 행적과 최후


벽제관 패배 이후 겁을 먹은 이여송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전쟁을 왜군과의 강화를 통해 끝내고자 했다. 때문에 명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은 가는 곳마다 왜군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의 백성을 수탈해서 자신의 군사를 먹이기에 바빴으며 조선의 요청에도 절대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소극적인 교섭을 통해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유정에게 총지휘권을 넘긴후 지켜보다가 1598년 전쟁이 끝나자 명나라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요동총관이 되어 북방 오랑캐 타타르와의 전투를 벌이지만 잡혀서 전사하고 만다. 이여송이 죽은 뒤 후손들이 요동에서 살다가 명나라가 멸망한뒤 조선으로 들어와 농서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여송이 조선에 있을 때 이름 모를 조선 여인을 통해 자손이 퍼졌고 이것이 농서 이씨의 시조라는 말도 있다.


이여송... 원군으로 조선땅에 들어와 초반 평양성 수복에 힘을 썼지만 이후 그의 행적은 또 다른 왜군처럼 우리 백성을 힘들게 했다. 또한 그가 오랑캐에 잡혀 죽을때도 벽제관 전투처럼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그의 장군으로서의 능력 역시 그리 높아보이지 않으며 거짓보고를 한 기록과 기타 행실로 봐서는 그 인품 역시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KBS1 징비록에서의 이여송이 얼마나 한심하게 표현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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