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서양

잔인한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윤여시 2015. 9. 1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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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유럽 특히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 탐험을 계속 하기 시작한다. 이때 지금의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탐험은 계속 실패한 반면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지속적인 식민 사업은 성공을 했고 고대부터 지속되어온 남아메리카 문명들을 하나둘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있었다.



<에르난 코르테스>


|에르난 코르테스 출생과 아메리카 침략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하급 시골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살때인 1504년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근무하였으며 1511년 식민지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아래서 쿠바를 점령하고 큰 공적을 세웠다.  


이후 산토도밍고 쿠바일대에서 대농장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하였고 점차 아메리카 정복 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후 1519년 4월, 그의 나이 36살때 유카탄 반도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탐험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의 진급을 좋지 않게 본 총독 벨라스케스가 이를 막으려고 하자 자신의 병사 500여명과 함께 홀로 유카탄 반도에 상륙을 감행한다.   


<아즈텍 영토>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 점령


유카탄 반도에 상륙한 코스테스는 베라크루스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주위의 마야 부족을 점령해나가며 아즈텍을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간다. 그는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공략을 앞두고 병사 몇명을 선발하여 지형, 군사, 무기, 병력 등에 대해 알아보라는 명령을 내린다.


얼마 후 정찰병이 돌아와 코르테스에게 보고한 내용은 코르테스를 웃게 하기 충분했다. 바로 아즈텍에는 이민족들간의 불화가 있고 이를 통해 충분히 이방인인 자신의 군대에게 협조할만한 수많은 원주민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화와 다른 민족의 협조 가운데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테노치티클란에 도착한 코르테스는 아즈텍의 황제 몬테주마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는데 코르테스는 그의 환대를 무시하고 바로 그를 인질로 잡아 위협해 황금을 갈취하려 했다. 하지만 아즈텍의 수만명의 전사들이 코르테스 군대를 감싸기 시작했고 코르테스는 수많은 아즈텍 군대를 무찌르며 자신의 군대 대부분을 잃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 


코르테스는 수차례나 목숨의 위협을 겪은 끝에 겨우 베라크루즈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벨라스케스가 보낸 같은 스페인 진압군의 공격이 이어졌고 코르테스는 다시 한 번 사력을 다해 싸워야만 했는데 운이 좋게도 이를 무찌르고 항복 병력을 규합해 다시 한 번 세력을 정비한다. 또한 아즈텍 군대에게 패했던 자신의 상황을 스페인 본국에 호소하여 증원군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코르테스는 점차 자신의 상황이 안정화되자 이번에는 아즈텍을 좋게 보지 않는 부족들과의 동맹과 정치력으로 다시 한 번 테노치티틀란의 점령을 준비하게 된다. 


<테노치티틀란>


|테노치티틀란 점령과 아즈텍의 멸망 


이처럼 코르테스는 점차 자신의 상황이 안정화되자 이번에는 아즈텍을 좋게 보지 않는 부족들과의 동맹과 정치력으로 다시 한 번 테노치티틀란의 점령을 준비하게 된다. 코르테스는 본국에서 얻은 증원군과 아즈텍의 잔인한 행위에 분노하고 있던 주위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여 테노치티틀란으로 향한다. 또한 여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 바이러스가 아즈텍인들의 사이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아즈텍인들이 죽어가며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 아즈텍 군대는 많은 사기를 잃어야 했다. 


또한 테노치티틀란이 호수안에 있는 지형임을 감안하여 내륙에서 배를 만들어 치고 빠지며 당시 카누 밖에 없던 아즈텍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즈텍인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테노치티틀란을 포기하고 내륙으로 이동해 저항하지만 결국 멸망당하고 만다. 아즈텍을 멸망시킨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의 총독으로 임명 받았고 에스파냐의 왕 카를 5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며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왕 대접을 받으면서 군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이 끝난 카를 5세가 커져가는 코르테스에게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1526년 코르테스를 총독자리에서 파면시킨다. 귀국길에 오른 코르테스는 다시 총독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카를 5세를 접견하여 자신을 어필하였고 카를 5세 역시 이에 다시 동조하여 테노치티틀란의 총독자리에 다시 임명했고 이후 1540년까지 10년 이상 총독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후 60살이 다된 코르테스가 에스파냐로 다시 돌아오자 그를 환대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카를 5세에 의해 다시 신대륙으로 갈수 없게 된다. 이후 코르테스는 수많은 정적들의 방해에 시달렸고 독일에서의 신구교 전쟁의 장교로 임명되어 이름을 알리다가 북아프리카 원정군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폭풍으로 인해 스페인 함대가 크게 피해를 입었고 해임되었으며 이후 설사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람들은 에르난 코르테스를 비롯하여 고대 아메리카 문명을 멸망시키는데는 잔인한 학살과 무서운 전염병을 옮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에르난 코르테스를 비롯한 여러 정복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고대의 원주민들을 존중하면서 세계 역사를 뒤바꾸기에는 분명 야욕이 아니더라도 힘든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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