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또 다른 성군 영조는 누구?조선의 또 다른 성군 영조는 누구?

Posted at 2014. 7. 14. 23:33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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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또 다른 성군 영조는 누구?


조선 초기 최고의 성군으로 세종대왕을 꼽는다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성군을 뽑는다면 영조와 정조를 꼽을 수 있다. 최근 한석규가 차기 드라마 작품으로 <비밀의 문> 을 선택하면서 극중 영조 역을 맡는다고 하는데 과연 영조는 어떤 왕이었을까?



동이

 

영조의 아버지 숙종과 어머니 숙빈최씨의 이야기를 풀어낸 MBC 드라마 동이



|영조의 가계도와 왕세자 시절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은 조선의 제일의 악녀로 알려진 장희빈에게서 경종을 낳았고 물을 깃는 무수리였던 숙빈최씨<드라마 동이가 감찰궁녀란 것은 모두 극을 위해 꾸며진 이야기> 에게서 영조를 얻는다.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의 신분의 미약함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왕세자에 비해 많은 비교를 받아야 했고 또 후궁 명빈박씨에서 태어난 연령군에 비해 조정의 관심을 덜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됬든 세월이 흘러 숙종이 죽고 장희빈의 아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 20대왕 경종이다.  하지만 경종은 14살때 그의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몸이 급속도로 약해졌고 후사까지 못 보는 몸이었기에 자신의 이복동생 연잉군(후에 영조)를 왕세제로 책봉한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른 후 노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를 예의주시 하고 있던 소론은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묵호룡의 고변을 빌미로 연잉군을 지지하던 노론세력을 조정에서 밀어내게 된다. 





영조의 초상 


이후 영조는 소론의 견제를 받으며 목숨이 위태할뻔 한 적도 있었으나 대비 인원왕후의 보호를 받으며 왕세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경종 4년 갑자기 경종이 세상을 뜨게 되니 그 뒤를 이어 연잉군 영조가 조선의 역사에 등장한다. 


|영조의 재위기간


경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소론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노론의 신하들은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밀었던 연잉군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세상이 올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왕세제 시절부터 당쟁의 폐단을 몸소 체험한 영조는 적절한 붕당을 유지 안배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영조하면 가장 떠오르는 치우침 없는 정책 '탕평책'의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재위초에 급작스럽게 죽은 경종의 독살을 주도했다는 소문에 시달리게 되고 심지어 소론 강경파인 이인좌 형제가 충청북도 청주에서 경종의 독살설을 이용 세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 이인좌의 난에 참여한 사람은 당시에 상당한 수였으며 경종의 독살설 뿐 아니라 영조의 출생설과 신분에 관련한 약점을 명분으로 일어난 난이었기에 영조에게 준 상처는 어마어마 했다.


여튼 이렇게 끊임 없는 분란과 당쟁 속에서도 영조는 탕평책을 포기하지 않으며 조선의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드라마 이산에서 영조 역을 맡은 이순재

 


영조는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많이 폈는데,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거나 개정하였으며 조선 초기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설치했던 신문고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또한 백성들이 국방의 의무대신 세금으로 내던 포목을 줄이고 똑같이 걷는 균역법을 제정하고 나라 살림에도 앞장선다.


또한 학문을 좋아해 서적의 편찬과 보급에도 힘썼으며 유능한 학자를 육성하고 실학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서 조선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또한 안정적인 경제를 통해 군을 개편하고 조총을 제조하게 하는 한편 성을 수리하는 등의 부국강병 정책도 함께 펴나간다.


|영조에게 아쉬웠던 점 


영조가 아무리 성군이었고 백성에 관한 정책을 폈으며 탕평책으로 정치도 안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노론 위주의 정책을 폈던지라 대립구도가 사라지지 않았고 이 같은 갈등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2014/01/30 - [국사] -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 그는 누구인가?


조선의 가장 안타까웠던 전무후무한 아들 죽이기 역사가 성군 영조때 일어난 것이다.





영조가 세운 탕평책의 탕평비 

 


영조. 그의 손자 정조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꽃 피운 대표적인 왕이다. 태생적으로 가진 서얼이라는 한계를 딛고 탕평책이라는 지금도 통하기 힘든 정책을 사용하며 정치를 안정시킨 영조의 능력과 안목이야 말로 충분히 최고의 성군이라 불릴만하다.


안타깝게 그의 아들을 죽인 과오를 범하기는 하였지만 조선의 재위기간 중 가장 긴 52년동안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루고 후기 조선의 기틀을 닦은 것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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