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예술가이자 비운의 왕자, 그림을 사랑했던 안평대군조선의 예술가이자 비운의 왕자, 그림을 사랑했던 안평대군

Posted at 2020. 12. 27. 10:28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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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예술가이자 비운의 왕자, 그림을 사랑했던 안평대군

조선의 역사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면 그 첫째가 단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이방원의 이야기일 것이고 그 둘 째가 바로 세조가 자신의 조카를 밀어내고 왕권을 차지했던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계유정난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한토막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안평대군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나름 특이한 이력을 남긴 왕자로 기억된다. 이번 드라마 홍천기에서도 등장할 안평대군 그는 과연 누구일까?

 

드라마 대군에서 안평대군

|안평대군 그의 출생과 족보부터 알아보자 (태종의 양자?,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 이용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세종은 자녀가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순서로 장자는 문종, 둘째가 세조(수양대군), 셋째가 안평대군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지만 그 할아버지 태종의 양자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태종 이방원은 폐세자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을 비롯해 마지막 아들 성녕대군을
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막내 성녕대군은 태종의 늦둥이 아들로 39살 나이에 본 막내아들이었다.

 

그러나 성녕대군은 14살이던 해 홍역에 걸려 어린나이에 죽고 말았고, 태종은 큰 슬픔에 빠진다. 그래서 태종은 성녕대군의 자리에 세종의 자녀들 중에서 골라 양자로 들여주고 싶었다. 이에 세종은 태종 이방원의 유지를 받들어 동생인 성녕대군의 양자로 안평대군을 선택한다.  그만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안평대군의 <소원화개첩> 국보238호, 2001년 도난당해 지금도 찾을수가 없다

|예술가이면서도 능력도 탁월했던 그 이름 안평대군

 

조선전기 문인 최항의 <태허정집>에서는 안평대군을 이렇게 표현한다. 

안평대군의 글씨가 자연미를 방불케하니 불세출의 사람이며 동방에 서도를 일으키고 중국의 선비들이 안평대군 글씨 한장씩만 얻어도 가첩을 만들어 보배로 사랑하고 모방하니...

뿐만 아니라 1450년 세종 32년 명나라 사신인 예겸과 사마순은 안평대군의 글씨만 보고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전한다. 안평대군의 이 같은 인기는 중국과 일본 등 여러 예술작품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안평대군은 각 나라의 그림 22점, 서적 1만여권을 모은 그야말로 그 당시 걸어다니는 박물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가야금부터 시작해서 그 매력이 조정의 많은 신화와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문신들과 관료들이 따랐다고 전한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당시 단종을 보필하던 고명대신 김종서, 황보인 등과도 친했으니 더 이상 흠잡을 곳 없던 왕자였다고 생각된다. 

 

안평대군의 꿈을 본따 그렸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그리고 안견

 

조선전기 문인 최항의 <태허정집>에서는 안평대군을 이렇게 표현한다.  조선 전기의 그림 하면 무조건 등장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대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안평대군이 30살 되던 봄날에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김픈 골짜기 봉우리들과 복숭아꽃 수십그루가 만발한 골짜기 속에서 후에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과 함께 길을 거닐고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나타나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안평대군이 그길을 따라가니 기암절벽 사이로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 것이다. 안평대군이 이 꿈을 꾸고 나서 안견에게 명해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또한 여기에 안평대군의 발문을 쓰고, 당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 내노라 하는 조선의 학자들이 찬양하는 시를 덧붙여 넣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 이다. 지금은 일본 텐리대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지만 말로만 들어도 그 가치가 대단한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안견은 안평대군이 가장 아끼던 화가였다. 그러나 권력다툼속에서 분명 안견은 안평대군의 위험을 감지했을 것이고 그와 일정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해서 안견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안평대군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하면서 그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계유정난과 안평대군의 죽음 

 

자신의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김종서 황보인을 척살하며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에겐 분명 안평대군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할아버지(태종), 아버지(세종)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문신들과 관료들이 따랐으며 여기에 김종서, 황보인 등과도 친했으니 수양대군은 난을 일으키자마자 안평대군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계유정난의 그날, 수양대군의 수하들은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를 덮쳤고, 성녕대군 부인 댁 그러니까 양어머니 댁에서  안평대군을 붙잡았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죽이면서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냈다가 더 들어간 교동도로 귀양보내 8일만에 사사했다. 이때 안평대군의 나이가 36세였다.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죽이면서 죄목 25가지를 발표했는데, 양어머니와 간통했다는 죄목도 있었다. 평소 양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효도한 안평대군에게는 치욕의 죄목이자 억울한 누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평대군이 그동안 모아놓은 수많은 작품들이 자신의 별장 무계정사에 있었는데 수양대군은 이를 살펴보지도 않은채 불을 질러 모조리 태워버린다. 

여기에 그의 장남 이우직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교살당했고, 외동딸과 며느리는 계유정난 1등 공신 권람의 노비로 들어갔다. 이로써 안평대군의 모든 혈족은 끊겨버린 것은 물론 안평대군에게는 무덤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의 예술성도 삶의 흔적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이후 세월이 흘러 영조 때가 되어 그의 신원이 복원되었다고 하나, 안평대군은 참으로 비운했던 왕자였고 파란만장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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