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현대

지금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된 일제강점기 명동 조선은행은 어떤 곳?

윤여시 2019. 8. 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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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된 일제강점기 명동 조선은행은 어떤 곳?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세운 다양한 목적의 건물들은 아직도 우리 서울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제가 세운 은행인 조선은행이 그것이다. 일제가 물러간 후 한때는 한국은행의 본관으로도 사용되었던 이곳은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배움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데, 조선은행이 어떤 곳인지 알고 방문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은행 - 한국화폐박물관

| 조선은행 - 설립 

식민지 쟁취에 혈안이 되었던 열강들이 모두 경제 수탈과 장악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듯이  일제 역시 이미 경술국치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 수탈을 위한 계획을 철저히 세워 놓았다. 

일제는 1905년 대한제국이 사용하던 백동화, 엽전을 모두 정리하고 일본 제일은행의 화폐로 대체하게 만드는 이른바 화폐정리사업을 하는데 이때부터 대한제국의 모든 금융은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제일은행 조선지점을 탄생시켜 우리나라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만들다가 1909년 '한국은행조례'에 따라 1,000만원의 주식회사 한국은행을 설립한다. 

이후 1엔, 5엔, 10엔의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다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병합되자 조선은행으로 재출범 하게 된다.

 

| 조선은행 - 운영

조선은행은 발권은행으로서 역할을 했다. 조선총독부 공장에서 화폐를 제조하는 한편 일본은행권과 같이 화폐를 제조하였다. 조선은행은 일제가 중국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면서 그 역할을 다했는데 만주, 중국, 시베리아 등에서 통용되는 화폐들이 조선은행을 통해 통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35년 만주중앙은행 1938년 중국연합준비은행을 세우면서 조선은행의 화폐와 1대1 교환이 가능하게 하는 화폐를 발행하면서 일제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인 은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행은 예금과 대출 업무도 하여 상업은행으로써 그 수익도 톡톡히 이루어냈으며 일본 자본의 투자까지 이끌어내는 역할로 일제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은행이었다.  이후 그 성장세도 어마어마해서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까지 조선, 만주, 일본, 중국에 이르는 39개의 점포와 3천여명이 넘어가는 인력을 확보한 일제 금융의 든든한 뒷받침 역할을 하게 된다. 

 

| 조선은행 - 결과 및 건설사적 특징

일제 패망 후 우리나라는 조선은행을 접수하여 한국은행으로 다시 명칭을 바꾸고 조선은행의 본점은 한국은행의 본관으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1987년 12월 이 건물 뒷편에 지금의 한국은행 신관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은 2001년부터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사적 280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1912년 준공 되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다. 철근 콘크리트와 석조 마감으로 1,60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으며 지하에는 조선 최대의 금고가 설치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르네상스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한국전쟁시 일부 소실되기도 했으나 중건을 거쳐 한국은행의 역할과 지금의 화폐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명동을 오고가는 길에 쉽게 볼 수 있는 조선은행, 일제 식민지 금융의 첨병 역할을 한 이곳이 씁쓸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역사 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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