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완성 삼번의 난청나라의 완성 삼번의 난

Posted at 2015. 7. 18. 00:31 | Posted in 세계사/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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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완성 삼번의 난 


청나라의 대표적인 성군을 뽑으라면 누구나 강희제를 뽑을 것이다. 사실 강희제가 왕위에 오를때만 하더라도 아직 청나라는 명나라의 기운이 남아 있었고 또 청을 도와 명을 멸망시킨 한인 세력들도 있었다. 그랬기에 어린 강희제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큰 위험이 있었고 그 첫번째 위기가 바로 삼번의 난이었다.


청나라의 성군 강희제 


|8살의 강희제 황제가 되다. 그리고 오배의 난


청나라의 3대 왕이자 강희제의 아버지인 순치제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후궁 강씨의 소생인 8살 강희제가 황위를 물려받았다. 순치제가 죽기전 유언에 따라 만주족 출신 대신을 보정 대신으로 임명하여 자문을 하게 했는데 그 가운데 오배로 알려진 오오바이가 있었다.


오오바이는 야망이 강해서 14살로 친정을 시작한 강희제를 무시하며 자신이 실권을 장악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오바이와 같은 보정대신인 스크사하가 오오바이와 극렬하게 대립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오오바이는 스크사하를 모함하고 강희제에게 처형을 강요하게 된다. 하지만 강희제가 어린 나이임에도 오오바이의 음모를 눈치채고 망설이자 오오바이는 강희제 앞에서 호통을 치며 소란을 피웠고 강희제는 어쩔 수 없이 스크사하의 참수를 지켜봐야 했다.


이때부터 강희제는 기회를 엿보아 오오바이를 죽여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세력이 약해 지켜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오바이가 병을 핑계로 집에서 나오질 않으며 강희제에게 자신의 집으로 병문안을 청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강희제는 오오바이의 집에 방문 했는데 오오바이가 덮고 있는 이불안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 알아본 강희제가 "칼을 곁에 간직하는 것은 만주의 전통이다"라며 넘어갔지만 강희제는 확실히 오오바이를 제거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강희제는 오오바이를 제거 하기 위해 무예를 닦는 연습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강희제는 귀족 자제들 가운데서 친위대를 선발하였는데 오오바이는 궁에 들릴때마다 어린 황제의 무예 연습을 지켜 보곤 했다. 그리고 1669년 오배가 어김 없이 궁에 입궁하여 강희제의 무예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강희제의 친위대가 오오바이를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다.

이후 오오바이를 재판한 결과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오오바이는 강희제에게 직접 말하기를 원했고 강희제 앞에서 말 없이 옷을 벋는다. 그의 몸에는 깊은 흉터가 이곳저곳에 나있었는데 이는 그의 할아버지인 청태종 홍타시의 위기를 막아서 난 것이었다. 이에 강희제가 마음이 약해져 오오바이를 사형시키지 않고 귀양을 보냈으나 이후 사약을 내려 죽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 오오바이 일족과 세력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여 강희제는 마침내 황권을 강화하게 된다.

삼번의 난 지도


|또다른 위기 삼번의 난 


오오바이를 제거하고 한숨을 돌리나 했던 강희제를 위협하는 것은 바로 삼번이었다. 번은 울타리라는 뜻과 함께 청나라의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변방에 위치했는데 그중에서 삼번은 명나라를 무너트릴 당시 청나라를 위해 힘썼던 한인인 운남 귀주 지역의 평서왕 오삼계, 광동의 평남왕 상가희, 복건의 정남왕 경중명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었다.여기서 경중명은 강희제가 왕위에 올랐을 때 죽어 그의 손자 경정충이 승계했다.


이 세 개의 세력 중에서도 평서왕 오삼계는 특히나 그 권력이 막강하여 청나라 조정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그들 나름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물론 강희제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명나라의 잔존세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으나 강희제가 왕위에 오를 때는 이미 남명정권도 무너진 후였으나 삼번은 청나라 조정에 충성하지 않았다.


청나라 조정도 삼번의 왕들도 서로 불만이 쌓여갈 무렵 평남왕 상가희가 아들 상지신과의 불화로 인해 자신은 고향인 요동으로 돌아갈테니 왕위를 아들 상지신에게 그냥 물려주고 싶다는 말을 청나라 조정에 정한다. 하지만 청나라 조정에서는 상가희의 귀향과 은퇴를 허락하지만 왕위 계승은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냈고 이는 상가희는 물론 다른 번왕인 오삼계와 경정충에도 충격이었다.


때문에 오삼계와 경정충은 자신들에게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보기 위해 상가희처럼 은퇴 요청과 왕위 계승을 요청했고 당시 20살이었던 청년 강희제를 비롯한 청나라 조정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는 자리에서 어차피 모반을 일으킬 삼번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음을 대신들에게 밝힌다. 


이에 청나라 조정에서는 삼번에게 그들의 은퇴를 승인하고 삼번을 철수하라는 명을 내렸고 오삼계는 마침내 자신이 죽인 명나라 마지막 황제 영력제처럼 청나라도 멸망시키겠다는 모반 계획을 천명한다. 



오삼계


오삼계는 모반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명분 찾기에 나선다. 그는 명나라의 황통을 이을만한 사람을 찾았으나 명나라의 영력제를 죽인 사람이 바로 오삼계였기에 사람들은 그냥 비웃기만 했다. 오삼계는 결국 하는수없이 청나라의 갑옷을 집어던지고 다시 명나라의 갑주로 무장을 갖춘 후 영력제의 무덤 앞에서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했다고 전해진다. 


여튼 오삼계의 세력이 강했는지 명분은 없었지만 순식간에 장강까지 진격하여 수많은 성을 함락한다. 이에 청나라 조정에서는 오삼계와 다른 두번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키려고 상가희 부자와 경정충에게 철번을 중지시키는 상소를 내려 달랜다.


하지만 경정충은 이미 오삼계에게 뜻을 가담하여 모반을 함께 할 뜻을 세웠고 오삼계에게 합루한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급한불을 끄고자 상가희를 승격시키고 모반에 가담하지 않게 하려고 힘을 다했고 상가희 역시 자신은 모반을 하지 않겠다며 뜻을 굳혔으나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상지신이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오삼계의 모반에 가담한다. 


이렇게 연합을 형성한 삼번은 3개월만에 중국 남부를 점령하였고 오삼계는 북경으로 향하지 않고 군사들의 진군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이후 전쟁은 물자가 풍족했던 청나라 조정의 승리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원인에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명분이 없던 삼번의 군대보다는 민심이 청나라를 더 따랐기 때문이다. 또한 오삼계는 군대로 두 갈래로 나누어 진군했는데 이 역시 힘이 집중되지 못해 실패를 하면서 점점 강희제에게 유리한쪽으로 전쟁이 만들어져 간다.


또한 당시 태종 홍타시의 딸과 결혼하여 북경에 살고 있는 오삼계 아들 오응웅을 처벌하였고 이에 처음부터 기회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두 번왕은 패색이 짙어지자 슬금슬금 도망갈 계책을 세운다. 자연스럽게 삼번의 힘은 약해졌고 상지신이 청나라에 귀순의 뜻을 바치는 것으로 경정충 역시 항복하여 결국 오삼계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삼번의 난 무너지다 


1678년 오삼계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직접 황제에 올라 나라 이름을 주로 세우고 과거 제도를 시행하는 등 노력했으나 5개월 후 죽게된다. 오삼계가 죽자 반란세력들은 손자 오세번을 옹립하였으나 오삼계 없는 반란군은 급격히 흔들리게 된다. 


이에 상지신이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움직였고 청나라 역시 총공격을 감행하여 반란군을 일망타진했으며 운남으로 도망친 오세번은 1681년 자살을 택하며 9년간 이어진 삼번의 난이 막을 내린다. 삼번의 난을 진압 후 청나라에서는 상지신은 물론 경정충마저 처형하면서 마침내 중국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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