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의 아버지? 고구려 말기 성군 제 25대 평원왕 그는 누구인가?평강공주의 아버지? 고구려 말기 성군 제 25대 평원왕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1. 1. 11. 22:19 | Posted in 국사/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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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의 아버지? 고구려 말기 성군 제 25대 평원왕 그는 누구인가? 

평강공주 설화에 등장하는 왕으로 잘 알려진 평원왕은 비록 고구려 전성기를 이끈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그늘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고구려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 꼽을 수 있는 성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의 수도 평양의 중심가로 그 수도를 옮긴 왕으로 고구려를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은 물론 진흥왕부터 이어져 오는 신라의 전성기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한 왕이기도 하다. 평원왕 그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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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위기와 평원왕의 등장

 

광개토태왕, 장수태왕 그리고 문자명왕까지 이어진 고구려의 전성기는 가히 우리나라 역사의 전성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분에 내분을 거듭하고 그 사이 신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정세가 바뀌며 고구려는 그야말로 위기에 부딪히게 된다. 

평원왕 이전, 그러니까 6세기 중반 22대 안장왕이 시해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동생 안원왕의 말년에 후사를 두고 고구려는 내전에 휩싸인다. 안원왕이 병에 들어 죽으려고 하자 왕비 두명과 그의 가족들은 서로 추군과 세군이라 칭하며 궁궐에서 내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를 벌인다. 이때 추군 세력이 승리하면서 왕위에 오른 24대 양원왕(545~559)은 왕이었으나 집권 내내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에 놓인다. 

여기에 북에서는 돌궐이 쳐들어오고 남쪽에서는 백제와 신라가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치니 고구려는 이때 한강을 내주고 만다. 여기에 고구려의 귀족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내전을 계속 벌이니 그야말로 고구려는 멸망직전에 쳐하게 된다.  

 

평원왕의 아들 영류왕 후에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한다

|평원왕, 위기의 고구려를 살리고자 귀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다

 

평원왕은 집권하자마자 왕권강화를 위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묻혀 있는 졸본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는 자신이 고구려 시조 주몽의 위대한 자손이며 이를 통해 왕권 강화를 간접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또한 평원왕은 기존의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신흥 세력들을 자신의 옆에 두기 시작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딸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에 대한 이야기다.  

온달은 물론 우리가 어렸을 적, 동화에서 봤을 법한 바보는 아니었으나 분명한 것은 당시 왕족과 결혼 할 수 있었던 귀족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으로 온달은 신흥세력이거나 평민이었을 텐데 그 능력만 보고 평원왕이 결단을 내려 자신의 부마(사위)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평원왕 시대에는 을지문덕(612년 살수대첩 때 그의 나이 40이 넘음)을 물론이거니와 후에 고구려를 장악하는 연개소문의 연씨 가문도 이때 등장한 신흥세력으로 보인다. 

이는 평원왕이 당시에 권력만을 탐했던 귀족들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여러 노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평원왕, 치세를 펼치다

 

귀족을 제압해서 내부를 다스렸다면 이제 고구려를 노리는 외부세력과 신라 백제를 막아내야 할 미션이 남아있었다. 평원왕은 돌궐과 북주(온달이 활약한 전쟁) 침입을 막고 요서지역을 지켜냈으며,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수들은 자신의 세력으로 받아들여 중용하면서 다시 왕권을 강화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평원왕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식량을 절약하고 천도제를 지냈으며, 장수왕 시절 지금의 평양외곽지역에 수도를 옮긴 것을 평양중심부의 장안성으로 수도를 완벽히 옮기면서, 후에 수나라와 당나라를 무찌르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이 국가적 사업인 장안성을 만드는 일도 백성들의 사정을 돌봐가면서 진행하여, 공역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자신에게 민심이 들어오게 만드는 발판으로 삼았다. 

 

|성군 평원왕을 기억해야 할 이유

 

역사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으나 평원왕이 우리 역사에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권력다툼에 망해가는 고구려를 구해내고 이어지는 수나라와 당나라를 수차례 무찌르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또한 평원왕의 치세는 고구려 백성의 단합을 이끌어내었으며 온달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능력과 공에 맞는 포상이 주어져 군사들의 사기는 높아졌다. 이를 통해 고구려는 다시 한 번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또한 평양의 장안성 완공과 이전은,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의 끊임 없는 침략을 막아낸 요새로써 그 역할을 다하니 평원왕의 업적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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