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 의미하는 한일관계2015년이 의미하는 한일관계

Posted at 2015. 1. 2. 10:53 | Posted in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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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의미하는 한일관계


바야흐로 2015년의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양의 해라며 가치와 의미를 부여 하고 있지만 2015년이 주는 의미에서 우리가 다시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백 여년 전부터 악연이 계속 되고 있는 한일관계다.. 그 이야기는 120년전으로 돌아간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 행렬 

출처: 위키피디아 


|치욕의 을미사변 120년..


한 나라의 왕비가 다른나라의 깡패에게 시해 당한다.. 이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이러한 일이 120년전 우리 땅 우리 조상들에게서 일어났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당당히 조선을 식민지화 할 계획을 실행시켜가고 중국의 요동반도까지 얻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이 같은 승승장구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를 끌어드려 일본에게 요동반도를 중국에 넘겨주라는 외교 압박에 들어가고 이 일 때문에 일본은 어쩔수 없이 요동반도를 다시 중국에게 넘겨주게 되는데 이 사건을 '삼국간섭'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지켜본 명성황후는 점차 조선을 옥죄어 오는 일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면 러시아가 살길이라는 생각에 러시아와 가까이 지내는 외교를 펴기 시작한다. 이에 조정에서도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모두 쫒겨나다 시피하고 친러성향의 대신들이 가득 메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의 외교노선 변화는 일본의 불만을 가중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일본은 친러정책을 피는 명성황후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일본은 이같은 계획을 '여우사냥'이라고 부르며 한 국가로써는 보기 힘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준비를 끝마친다. 


일본은 1895년 10월 8일 자신들이 모은 일본의 낭인을 필두로 경복궁의 담을 뛰어넘는다. 새벽 4시쯤 명성황후를 찾아 경복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낭인들은 건청궁 곤녕합에서 마침내 명성황후를 찾아냈고 그들의 칼로 잔혹하게 살해 한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기름을 끼얹고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치욕의 역사 '을미사변'이다.


이후 이 같은 일을 자행한 일본 낭인들은 국제적 비난에 잠시 감옥에 수감되는 척하다가 모두 풀려나 배부르게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그들의 상징인 일본의 천황 부인이 지금 우리나라의 깡패들에게 살해 당했다면... 아마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 조선은 힘이 없었고 국모가 시해되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일본 역시 자신들이 범한 이렇게 충격적인 역사를 잊은지 오래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토히로부미 외 일본인들과 매국노들

출처: 위키피디아


|치욕의 을사늑약 110년..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가 된것이 1910년 경술국치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이보다 5년 앞선 1905년 이미 조선의 모든 국권이 피탈 당한 늑약 체결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을 맺기 1년전인 1904년 일본은 조선을 삼키기 위한 마지막 상대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 하면서 조선 식민지를 향한 막판 가속페달을 밟는다. 


가장 먼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제의 조선 통치를 인정 받고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에게도 일제의 조선 통치를 인정 받는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일본은 조선의 모든 손발을 묶기 위한 조약의 내용을 준비하고 1905년 11월 9일 이토히로부미를 통해 일방적인 통보를 한 후 고종을 압박하게 되는데 고종이 이를 거부하자 11월 15일 다시 재차 조약 체결을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고종이 조약체결을 끝까지 반대하자 일제는 쓰레기라 불리는 을사5적을 필두로 하는 조정대신들을 겁박 및 회유를 하여 을사늑약 체결을 인정 받게 되고 어전회의를 마음대로 소집해 가부판결을 내도록 겁박한다. 이에 이완용,이근택,이지용,박제순,권중현은 찬성표를 던지며 을사늑약은 체결되고 만다.


을사 늑약의 내용은 이러하다.


1. 일본은 대한제국의 전체적인 외교권을 관리 감독한다.


2. 일본의 허락 없이는 대한제국은 타국과 조약이나 약속을 할 수 없다.


3. 일본은 대한제국의 궐하에 통감을 두고 대한제국의 황제폐하를 친히 내알할 권리를 가진다.


4. 제4조, 이번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5. 일본은 대한제국의 황실에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


말 그대로 한 나라의 고유권한인 외교권을 박탈하여 일본 자신들의 밑에 두겠다는 이 말도 안되는 늑약으로 우리나라는 그 어떤 국제적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고 5년 후 나라를 통째로 일제에 넘겨주게 된다. 이후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의병활동은 물론 을사오적 암살 시도와 애국지사들의 자결이 이어졌으나 일제의 강압이 불러온 큰 흐름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110년전의 일이다.



 


1945년 8.15 광복



 |다시 우리 민족의 품으로 8.15 광복 70년..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 등과 동맹을 맺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넘보고 태평양에서는 미국을 건드리며 그 위세를 과시 했으나  점차 그 힘을 잃어가며 미국의 원자폭탄 2대를 맞고 독일과 함께 전범국으로 무조건 항복을 외치게 된다. 이에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드디어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동안 일제에게서 받은 서러움과 나라를 찾은 기쁨에 모두 태극기를 흔들고 거리로 나왔으며 광복을 예감한 여운형을 필두로 하는 건준을 시작으로 중국에 있던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러 지역에 머물러 있던 독립단체들이 다시 우리나라로 올 채비를 마치며 설레임과 혼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시간이 이날을 기점으로 이어진다. 


또한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올 화를 직감하고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하기 위해 짐을 쌌으며 남쪽으로 들어온 미군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폭동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주시 하고 있었다. 비록 결과적으로만 보면 우리 힘으로 되찾은 광복은 아니었지만 우리 땅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우리 독립투사들과 또 다시는 앞으로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하는 의지와 행동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한일수교 - 한일기본조약

1965년 


 |이제 동등한 관계가 되어.. 한일수교 50년...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경제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미 6.25전쟁을 통해 산업기반 시설이 파괴되었던지라 박정희 대통령은 외국으로 눈을 돌려 차관을 들여오고 외교를 통해서  자본을 들어오려 했다. 그리고 이때 박정희 정권에게 필요한 자본을 대줄 가장 적합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었다.


처음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수교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며 이를 반대 했는데 이 항쟁이 바로 6.3항쟁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를 무시한채 일본과의 수교 체결에 나서게 되고 급하게 일제 36년간 입은 피해에 대한 사과를 제쳐두고 막대한 유무상 원조를 받게 된다. 


일본에게 이렇게 받은 원조로 지금의 포항제철소가 건설이 되었고 기본적인 산업기반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이 조약으로 인해 전혀 들을 수도 없었으며 일본이 지금까지도 이미 경제적 원조를 했다면서 명분으로 삼고 우려먹고 있기 때문에 한일 외교관계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봐서는 분명 미래를 생각한 바람직한 조약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도 이 같은 논쟁은 불씨로 남아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정립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중이다.



 



|2015 한일 관계


인연과 악연을 반복해온 100년이 넘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 어떤 소설가가 써도 구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소설은 현재 2015년의 페이지를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책장을 다시 뒤로 넘긴듯, 최근 100년전처럼 몰지각한 우경화는 물론 끊임 없는 역사왜곡,  독도 소유권 주장을 반복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큰 비난을 사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연일 망언과 당당한 대응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외교적 관계는 물론 국민들의 감정도 점점 그 골이 깊어져 가고 있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100페이지 전의 역사를 봐서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상적인 대화와 자유로운 민간 교류가 필요하며 일본의 이해 할 수 없는 망언들과 행동들을 당장 멈추고 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협력을 위해서 나서야한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면 한중일 이 세나라의 관계에서 결국 궁극적으로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 대상은 바로 일본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사과와 반성을 통한 평화 협력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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