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MBC 기황후 왜곡 희대의 패륜아 충혜왕

윤여시 2013. 10. 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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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기황후 왜곡 <희대의 패륜아 충혜왕>

이토록 희대의 패륜아와 난봉꾼으로 역사에 기록 된 왕이 있을까? 역사속에서 불명예를 안고 있던 충혜왕이 이제는 주진모라는 멋진 배우로 마치 사랑에 목을 매 기황후와 러브라인을 펼쳐가는 왕으로 기록 될 예정이다. 자신의 조국 고려에서 최악의 행실을 보여주었던 희대의 패륜아 충혜왕 그는 누구일까?

 

 

 딱 봐도 충혜왕은 ... 답답하게 생겼다.

충혜왕은 충숙왕의 장남이자 몽고식 이름은 보탑실리다. 충혜왕의 충은 당시 원나라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뜻에서 충을 붙힌 것으로 당시 고려가 얼마나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튼 그는 1330년 2월 정치에 염증을 느낀 자신의 아버지 충숙왕의 양위를 받아 고려 제28대 왕에 오른다. (그 아버지 충숙왕 또한 왕의 자리에 염증을 느껴 왕위를 어린 아들에게 물려줄 만큼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지는 않았다.)

하여튼 16살 지금 우리나라 교육으로 따지면 중3때 충혜왕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충혜왕은 애초부터 인격이 닦여 있지않았을 뿐 아니라 성격마저 포악하여 나랏일은 내 팽겨둔채 향락과 여색에 젖어 지냈다. 또한 즉위 후 6일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고 사냥을 즐겼으며 내시와 씨름을 하며 노는 등 군주로서의 자질은 애초에 없던 충혜왕이었다.

미친왕에게는 미친 신하들이 꼬인다고 그는 배전, 주주 같은 신하에게 국가의 중책을 주어 정사를 농단하게 했으며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들을 자신의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행동이 쓰레기 짓이라는 것을 알고 후세에 남기지 못하게 하려 했나보다.) 

 

 

SBS 드라마 <신의>에서 나온 충혜왕... 여기서도 역시 패륜아 군주로 나온다. 

꼴통은 꼴통이었는지 간섭은 하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나라인 원나라에서 충혜왕의 폭정을 보다 보다 못하여 연경으로 소환하여 근신하게 하고 그의 아버지 충숙왕을 복위시킨다. ( 이 얼마나 우리 역사의 암흑기 인가. 다른나라에서 우리나라 왕의 폭정을 참다 못해 소환하여 왕위가 싫다 한 아버지에게 다시 왕위를 전해주는.... 아 한심했다.) 

그러나 연경에서도 충혜왕의 행실은 원나라 사람들에게도 혀를 차게 할만큼 포악했고 원나라 역시 안되겠다 싶어 1336년 충혜왕을 고려로 돌려 보냈다. 그리고 3년후 그의 아버지 충숙왕이 병에 들자 왕위를 물려 받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 충숙왕은 자신의 아들 충혜왕을 날건달이라고 부르며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결국 죽음에 임박하자 장남인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이때 충혜왕을 막으려 원나라 승상 백안 등이 충혜왕을 고려 왕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며 심양왕 왕고를 왕위에 올리려 하면서 충혜왕은 한동안 원나라의 책봉문을 받지 못했다.

 

쌍화점에서 꺼져가는 원나라를 몰아내며 다시 한번 강한 고려를 세우려 했던 고려 31대 왕 공민왕 역의 주진모가.. 이제는 희대의 패륜아 28대 왕 충혜왕으로 나타난다. 

|충혜왕의 패륜 행동 나열.

자 이제 부터 충혜왕이 왕위에 올라 한 패륜 짓을 나열해보겠다. 충혜왕은 1339년 5월 자신의 아버지 후비였던 수비 권씨를 강간하였고 8월에는 부왕의 후비인 숙공휘령공주를 강간하였다. 즉 자신의 아버지 여인을 강간 한 것이다. 술자리가 마련된 충혜왕은 연회가 끝나자 술에 취한 척하고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가 숙공휘령공주의 침실로 들어갔는데. 이때 숙공휘령공주가 완강하게 저항하자 수하들을 시켜 못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숙공휘령공주는 이에 수치심을 느껴 식음을 전폐했고 분을 참지 못해 원나라 왕실에 충혜왕의 행실을 고하려 했으나 이를 알아챈 충혜왕이 말 시장을 열지 않아 실패하였다. 앞서 수비 권씨 역시 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또한 왕실의 여자들에게도 악행을 자행한 그 였기에 백성의 여인들은 충혜왕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시였던 유성의 처 인씨가 아름답다는 소식에 자신의 수하를 동반해 유성에게 술을 먹이고 아내를 범하였으며 자신의 장인 홍탁의 후처 왕씨와도 간음하는 충격적인 패륜을 저지른다. 또한 충혜왕은 항상 정력이 강해지는 약을 먹어서 그와 관계하는 여인들은 임질에 걸리는 여자가 많았다고 하는데 홍탁의 후처 황씨도 임질에 걸려 충혜왕은 승려를 시켜 임질을 치료 시켰다고도 한다. 

또 충격적인 일은 그의 아버지 충숙왕이 한 선비 가문의 며느리 남씨라는 여자를 범하고 노영서라는 자신의 부하에게 보냈는데 충혜왕 역시 그녀를 범하고 다시 노영서에게 보냈다고 하니.. 그 쓰레기 같은 패륜적인 행동이 얼마나 지속 됬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신돈의 기황후.. 충혜왕의 행적은 이게 끝이 아니다. 

충혜왕은 이때에도 원의 황실로 부터 고려의 왕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는데 정신을 못차리고 음란한 짓을 하는 지라 백성들이 짐을 싸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원나라는 드디어 충혜왕에게 고려의 왕의 자리를 인정하게 되고 두린이라는 신하에게 고려 왕의 책봉문을 맡겨 보내게된다.

하지만 두린은 호시탐탐 충혜왕에게 평생 수치심을 느끼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던 숙령휘공주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충혜왕에게 당한일을 두린에게 그대로 고했다. 이에 원나라 신하 두린은 곧바로 충혜왕을 비롯해 그의 심복들을 모조리 포박하여 연경으로 보내게 한다. (한 나라의 왕을 다른나라의 신하가 묶어 보낼 정도로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였다.) 이에 고려 왕조는 왕이 압송되게 되어 텅텅 비게 되고 정권은 숙령휘공주에게 넘어가게 된다, 숙령휘공주는 자신이 충혜왕에게 수치를 당할때 보고 있었던 신하들을 모조리 귀양보내고 교체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충혜왕은 원나라에서 풀려나 개경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충혜왕은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고 신하들의 처를 수없이 범했으며 왕실, 신하 , 백성들의 여자란 여자는 다 범하는 음행을 삼기 시작했다. 실제로 역사서에는 그의 수없이 음행이 기록 되어 있으나 역사에 쓰여지지 않은 충혜왕의 행동은 정말 엄청날 것이다. 

여튼 충혜왕은 여자 뿐 아니라 백성의 토지를 강탈하고 집들을 강제로 철거 했으며 백성들을 강제 부역시켜 새로운 궁궐을 짓기도 하였으며 연회란 연회는 매일열었는데 그가 얼마나 심했으면 기황후의 동생 기철 마저도 원나라 조정에 건의하여 충혜왕의 폐정을 고발 할 정도 였다고 하니 정말 우리민족 최대의 쓰레기 왕이었다. 

 

 

 충혜왕의 최후.

 충혜왕의 폭정을 참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게 되자 원나라 왕실은 충혜왕을 소환하기로 하고 충혜왕을 강제 압송하는데 충혜왕이 사라지자 기철등이 정사를 처결하고 충혜왕의 애첩 및 궁인 126명을 궁에서 추방하였다. 이후 원나라 황제 순제는 충혜왕을 머나먼 게양으로 귀양 보내 버리는데 이곳을 향하던 중 충혜왕은 죽음을 맞이 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독살당했다고도 한다.

여튼 충혜왕이 죽자 백성들 중에는 단 한명도 슬퍼하는 이가 없다고 하니 정말 충혜왕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소름끼칠 정도로 최악의 패륜아 왕이었다.

|MBC <기황후>에서 나올 충혜왕

월화드라마로 방영될 기황후에서 충혜왕은 위에서 말했듯이 기황후와 사랑을 하며 원나라 황제 순제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더 이상 할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가상 스토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가상스토리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기황후와 그의 가족 충혜왕의 행적은 제대로 가르쳐야 할 최악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MBC 드라마에서 기황후는 분명 희대의 영웅적인 여인으로 표현 될 것이고 충혜왕은 사랑을 하는 로맨티스트로 표현될 것이 뻔하다. 이것은 마치 희대의 매국노 이완용을 재조명 하면서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팔아먹을 수 밖에 없던 현실을 스토리 했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정 그래도 꼭 기황후를 내보낸다고 한다면 드라마 1화는 기황후와 충혜왕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보여주고 드라마가 시작할 때마다 기황후와 충혜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쓰고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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