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 마지막 간신 이인임

윤여시 2014. 1. 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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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마지막 간신 이인임


KBS1 드라마 정도전에서 박영규가 맡은 역할 이인임. 왕조가 마지막이 될 때쯤이면 간신들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고려의 간신으로 불리며 조선 왕조 건국 당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면 모두 이인임을 빼놓을 수 없는 고려의 마지막 간신으로 기억한다. 고려의 마지막 간신 이인임 그는 누구였을까?





SBS 드라마 대풍수 이인임 역시 간신이었다. 


이인임은 원나라 말기이자 권문세족으로 가득찼던 충렬왕 시절 청백리로 유명했던 이조년의 손자이다. 덕분에 이인임은 태어날 때부터 명문가문의 자제로 과거제도가 아닌 음서제도 (명문가문의 자손은 벼슬에 그냥 오를 수 있음) 로 벼슬길에 올랐다. 유년시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벼슬에 오른 후 뛰어난 정치적 수행 능력으로 승승 장구하게 된다.


또한 공민왕 당시 고려와 원나라의 골칫거리였던 홍건적을 무찌르고 신돈의 개혁작업에도 큰 공을 세우며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돈이 죽고 공민왕이 최만생, 홍륜등에게 피살되자 간신으로 변하게 된다.





KBS1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할을 맡은 박영규 


|이인임과 우왕 이야기 


이인임은 공민왕이 죽자마자 피살범인 최만생, 홍륜 등을 체포하여 죽이고 그 권력을 장악했는데 여기서 이인임은 공민왕의 아들 우를 왕으로 올려 세우니 그가 바로 우왕이다. 


사실 우왕의 탄생에는 미스테리한 점이 있다. 우왕은 공민왕의 장남이지만 신돈의 여종이었던 반야의 소생으로 1365년에 태어났는데 우왕은 어렸을 적 궁이 아닌 신돈의 집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 사연은 왜 그런고 하니,  사랑했던 노국공주가 죽고 공민왕은 자식이 없었는데 신돈이 노국공주와 닮은 자신의 여종 반야를 바치며 공민왕에게 아이를 얻게 하기를 권했다. 그 아이가 바로 우왕인것이다. 이후 우왕을 낳은 반야는 1년 동안 궁이 아닌 신돈의 집에서 기거하였고 1371년 신돈이 역모죄로 유배되자 공민왕은 자신의 아들 우를 갑자기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공민왕은 당시 수시중으로 있던 이인임에게만 "신돈의 집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에게 아들을 낳은 것이라며" 말을 전했고 이후 어린 우왕은 태후 홍씨에게 맡겨져 궁궐의 교육을 배우며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공민왕은 자신의 아들 우가 신돈 집의 반야의 소생이 아닌 이미 죽은 궁인 한씨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궁인 한씨의 집안에 벼슬을 내리고 궁궐의 많은 사람들을 속이려 하였다. 이후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왕위에 오른지 2년, 진짜 어머니였던 이 사실을 안 반야가 자신의 아들이 우왕이라며 주장하다가 우왕을 세운 이인임에게 살해 당하고 임진강에 수장되고 만다.


공민왕과 이인임이 신돈의 여종이였던 반야가 아닌 궁인 한씨라고 거짓을 말한 이유는 반야를 우왕의 친모라고 말할 경우 공민왕의 핏줄이 아닌 신돈의 핏줄이라고 여길 것이고 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었지만  결국 후에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에 성공한 이성계와 정몽주 등에 의해 신돈의 씨라 하여 우왕은 폐위를 당하게 된다. (물론 우왕이 신돈의 아들일 수도 있고 공민왕의 아들일 수도 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이인임은 실제 초상화도 기록도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돌아와서 공민왕이 죽고 우를 왕으로 세울때 우왕을 맡아 키웠던 명덕태후 홍씨는 이를 반대 했으나 이인임 세력은 우왕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 결국 두 세력간의 팽팽한 설전이 오가다 왕실의 종실들이 공민왕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왕이 결국 왕위에 올랐고 이인임이 모든 정권을 장악했다. 이 때 이인임 세력의 신임을 받으며 급부상한 인물이 바로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로 유명한 충신 최영 장군이다. 또한 이성계 역시 자신의 장남(이방우)와 이인임 일파의 중심 인물이었던 지윤의 딸을 결혼시키면서 정계에 자리를 잡아간다.


여튼 권력을 잡은 이인임은 뜨는 명나라 대신 무너져가는 원나라에 힘을 지탱하려 했고 이인임과 그 세력 지윤, 임견미 등이 권력의 요직에 앉아 남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고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며 고려 왕실은 물론 백성들을 끊임 없이 수탈하였다. 이 때문에 이인임과 그 권문세족들이 고려가 멸망하는데 충분한 이유를 제공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이인임이 SBS드라마 대풍수에서 우왕을 세우고 옥새를 마음대로 찍는 장면 


그러나 이러한 이인임 세력은 그의 신임을 받던 최영이 이인임 세력의 거듭되는 만행에 변심하고 반기를 들며 급속도록 무너지기 시작했고 또 당시 홍건적과 왜구를 연달아 무찌르며 정계에 스타로 부상하기 시작한 이성계와 그리고 우왕이 함께 이인임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이인임은 결국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나마 과거에 최영을 이인임이 아꼈기에 그의 모든 세력들이 주살 당했음에도 최영의 간청으로 이인임은 유배를 가는데 그친 것이었지만 이인임은 유배를 떠난 얼마 후 죽고 만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은 이인임은 최영을 신뢰 했을 당시에 최영에게 이성계를 경계하라고 끊임 없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인임의 정치적인 안목은 분명 무시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후 최영과 고려 왕실을 위협하자 최영은 그때서야 이인임의 말을  생각해 내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인임. 그는 분명 고려 말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권문세족의 일파로 부패한 고려 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간신이었고 조선 건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악역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충신으로 대표되는 최영과 이성계 역시 이인임의 세력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고려의 왕을 바꿔 세울 정도로 눈치 빠른 정치가이자 역사에 변수로 작용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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