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의 몰락 반전 드라마 위화도 회군

윤여시 2015. 10. 2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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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몰락 반전 드라마 위화도 회군


무너져 가는 고려가 KO를 당했던 사건이자 새로 뜨는 태양 이성계와 조선이라는 나라가 탄생하게 된 사건 위화도 회군. 이 한번도의 마지막 왕조이자 500년 조선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위화도 회군은 과연 어떤 사건이었을까?


<고려가 명나라의 요동을 정벌하겠다는 불씨 철령 이북


|고려 최영과 명나라의 갈등 철령 이북 땅. 


공민왕이 암살 당하고 우왕이 왕위에 오른 뒤 이인임 일파가 우왕을 감싸며 고려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인임이 친원정책을 실시하고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자 정도전, 권근, 이숭인, 정몽주 등이 이인임 일파를 탄핵하는데 최영은 이인임을 편들며 오히려 정몽주, 이숭인, 김구용 등을 귀양보내며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최영은 출세가도를 달리며 변방에서 왜구 등을 무찌르며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이러한 공을 인정 받아 마침내 개경으로 돌아와 수시중이라는 중앙의 중책을 맡게 되고 재상직인 영삼사사와 문하시중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 병을 핑계로 이인임이 정계에서 물러나자 그와 함께 정권을 휘두르던 염홍방, 임견미 등을 숙청하고 최영은 우왕의 최측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무렵 무너져가는 원나라를 밟고 일어선 뜨는 해였던 명나라가 고려의 철령 이북 땅을 자신들의 요동부에 예속시키겠다는 통보를 해온데 이어 요동부 관리를 보내 철령위를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영토화 하려하자 최영은 우왕에게 간청하여 요동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이성계 4불가론을 주청하다.>


|요동정벌을 반대한 이성계


최영의 요동정벌을 결정한 우왕은 전국 5도의 각 성에 성을 수리하고 군사를 요동을 향한 서북쪽에 집결시키기 시작한다. 준 전시를 준비하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우왕은 최영을 더욱 의지하기 위해 최영의 딸을 비로 삼으며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최영 역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하지만 최영의 이 같은 행보에 반대 세력도 만만치 않았는데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요동정벌은 불가하다는 신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영은 오히려 이 같은 반대세력들을 죽이며 전쟁준비를 가속화했고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를 하려하자 요동진격을 위해 우왕의 세자 창과 왕비들을 한양산성으로 옮겨 가도록 했다. 


마침내 우왕은 개경을 떠나 봉주에 도착하여 최영과 이성계를 불러 요동 공략을 명했는데 이떄 이성계는 요동공략에 반대하며 '사불가론'을 주청하기에 이른다. 사불가론은 다음과 같다. 


<이성계의 사불가론>


첫째 소국이 대국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농사에 지장을 초래하니 불가하다.

셋째 원정을 틈타 왜적이 침입할 우려가 있으니 불가한 일이다.

넷째 장마로 인해 활을 먹인 아교가 풀릴 염려가 있고 군사들이 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주청에도 우왕과 최영은 출병을 하라는 명령을 꺾지 않았고 이에 이성계가 군대를 서경에 머물게 하다가 가을에 출병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우왕과 최영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또한 오히려 각 도의 징병을 서두르고 압록강에 군사들이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설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여기에 최영을 8도도통사 조민수와 이성계를 좌우군도통사 등으로 임명하여 출정하게 하였는데 좌우군을 합쳐 병력이 5만여명에 말이 2만필이 넘는 그야말로 고려의 명운을 모두 건 대군이었다.

 <압록강의 하중도 위화도>
 

|위화도 회군 일어나다


우왕과 최영의 강한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출정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앞두고 위화도에 머물렀는데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면서 압록강의 물이 불어나자 위화도에 갇힌 꼴이 된다. 이에 이성계와 조민수는 다시 한 번 회군요청을 하게 되는데 최영은 꿈쩍도 않하고 오히려 진군하라고 독촉응 한다.


이 같은 상황에 이성계와 조민수는 명을 어기고 회군하기로 결심하고 위화도를 빠져나와 개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들은 우왕은 급히 개경으로 돌아가 이성계와 조민수를 진압하라 명하는데 이성계와 조민수는 최영을 제거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오히려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우왕은 이성계와 조민수의 관직을 삭탈하고 최영을 문화시중으로 삼아 반란군을 진압하게 하고 둘을 붙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포상을 내리겠다는 명을 내린다. 우왕이 이처럼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것을 확인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개경에 진격 명령을 내리고 최영이 겨우겨우 긁어모은 중군을 무너트리며 궁궐을 함락한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유배가는 최영


|위화도 회군 이후 


위화도 회군 이후 최영은 바로 유배길에 오르게 되고 조민수와 이성계는 권력을 장악하고 우왕을 폐한 후 창왕을 세워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또한 무너져버린 원나라 연호를 없애고 명나라 연호를 채택하면서 명나라와의 충돌을 피한다.


최영은 이후 자신의 고향인 고봉현(고양)에 머물렀다가 합포(마산)으로 유배된다. 이후 충주로 유배되었다가 1388년 12월 개경으로 압송되어 참수당한다. 이로써 우왕과 최영이 바랬던 요동정벌은 완벽하게 물거품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고려의 멸망은 가속화 되게 된다.


|요동정벌이 실패한 이유


우왕과 최영은 정세를 너무 몰랐다. 일단 이성계 같은 신군부 세력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요동정벌이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을 너무나도 몰랐다. 당시 명나라는 일어난지 얼마 안된 강대국이었을뿐 아니라 고려는 오래된 원나라의 국권피탈에 국력이 약해져 있었고 또 왜구도 항상 괴롭혀 왔던 상태였다. 이미 고려 내부가 분열에 쇠퇴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요동정벌에 일시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다시 쳐들어오는 명나라를 막을 힘은 없었을뿐 아니라 요동을 개간할 능력 조차 없었던 상황이었다. 차라리 명나라와의 외교를 해나가면서 국력을 회복하고 안으로는 신군부, 신진사대부 세력을 통합했더라면 우리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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