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동양

인류의 역사를 바꾼 중국의 화약 발명

윤여시 2015. 3. 19. 23:07
반응형

인류의 역사를 바꾼 중국의 화약 발명


인류 전쟁사를 바꾼 무기를 생각하면 미국을 비롯한 유럽이 이끌고 나가고 있기 때문에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 기초가 된 화약 역시도 유럽에서 발명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화약을 가장 먼저 발명한 것은 중국의 원나라 시대였다. 화약 어떻게 발명 된 것일까?





중국의 명의 손사막.

그가 화약을 전했다?

 


|화약 발명의 기록


화약의 발명은 중국의 고대서부터 내려오는 도교의 도사들에 의한 제조법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옛 중국의 도사들은 인간으로서 불로불사의 약을 얻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였고 그러다보니 여러 광물, 약초 할 것 없이 섞어가며 약을 제조하는 기술과 지혜가 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 된 것이겠지만 어쩌다보니 유황, 초산칼륨등을 끓이는 가마솥에서 화약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화약이 중국의 역사 기록에 남겨진 것은 수나라 말, 당나라 초에 쓰여진 <단경>이라는 책에서였다. 이 <단경>을 쓴 사람은 당시 최고의 명의이자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알려진 손사막이라는 인물이었는데 물론 손사막 역시 화약을 단순한 선약 중 하나로 알고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약이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여러 그림과 기록에 화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화약, 무기로 만들어지다.


이후 화약이 본격적으로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 송대에 이르러서다. 화약의 가연성과 작열성이 그 당시 군사전문가들의 눈에 띄였고 이는 곧바로 무기화 된것으로 보인다. 특히 송나라때 쓰여진 <무경총요>에서는 가장 오래된 화약 제조법이 전한다고 하니 이미 화약 제조가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송 초기만 해도 석화시라 불리는 화전이 발명 되었으며(영화 신기전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개념의 무기) 가스탄과 비슷한 화구, 화염방사기와 비슷한 돌화창 등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당시 군사전문가들이 정말 대단 했던 듯 싶다. 북방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남송시대에는 특히 작열성 화포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두 차례에 걸친 개봉 방어전에서 화포가 쓰인 기록이 남아있다.


첫 번째 기록은 북송 말기인 1126년의 일이었는데 금나라 군사가 개봉성 밑에서 진을치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하자 장군 이강은 벽력포를 발포하였다고 전한다. 이 벽력포가 금나라 진지에 쏟아지자 처음보는 무기에 당황하는 금나라 군사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고 한다. 사실 이 벽력포는 엄청난 소리에 비해 그 위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처음보는 무기에 당황한 금나라 군대는 기절 초풍할 일이었다.


두 번째 개봉 방어전은 1232년에 있었는데 이때는 금나라 군사가 당시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에 맞서 싸우는 순간이었다. 치열한 개봉 방어전 중에 금나라는 '진천뢰'라 불리는 작열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몽골군이 성벽에 굴을 파고 몸을 숨긴 후 금나라의 화살과 돌을 피하자 금나라가 진천뢰를 새끼줄로 매달아 몽골군병이 숨은 굴 근처에서 작열시켜 몽골병을 폭사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진천뢰는 겉이 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폭발할 때 주위에 상당한 파괴력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진천뢰에서 우리가 더 업그레이드를 해서 만든

비격진천뢰

 


|화약 무기의 발전 


진천뢰의 발명처럼 화약의 표피가 철로 바뀐 것은 엄청난 발명중 하나였다. 이를 통해 살상력은 물론 폭발력까지 막강해졌으니 화약의 위력이 한층 진일보할 수 있다. 원나라에 들어서면서 이 화약은 더욱 발전하여 이전까지만 해도 대나무로 포신을 만들어 사용한 것과는 달리 원나라에서는 마침내 철로 만든 통을 사용하여 그 위력을 증강시켰다. 즉 현대전에서 전세를 바꾸었던 대포가 이 화포의 전신이라 할 수 있겠다. 


원나라 말기에는 이 화포가 더이상 일급비밀이 아니어서 여러 지방군과 반란세력들이 화포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화포를 통해 원나라 군대를 격파했다고 전해지니 자신들이 강력하게 만든 무기에 오히려 자신들이 당하는 결과를 초래 했다. 명나라 이후에도 화약의 진화는 계속 되어 화약무기들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군대인 신기영이 등장하였고(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온 명나라 군대도 화약무기로 도배한 군대였다.) 수많은 화포들이 생산되었다. 


명나라는 자신들이 원나라처럼 되지 않기 위해 화약 제조에 대한 비밀을 국가기밀로 유지하였다고 전해진다. 명나라 말에 이르러 청나라가 명을 무너트리기 위해 많은 공격을 했음에도 몇번이고 명의 화약무기에 당하자 청나라는 전쟁터에서 얻은 총이나 포를 통해 오진초파를 조직하여 대적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명나라의 무장한 군대의 항복을 받아들여 그대로 자신의 군대로 편성 화약무기를 사용하게 했다고 하니 그 당시 화약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원나라 이후 화룡출수라는 화포가 있었는데 이 화포는 죽통으로 만든 용으로 용의 앞뒤에 로켓을 부착해 그 힘으로 용을 멀리 날려보냈다. 또한 용이 날아가는 중에 2단로켓이 점화되면 용의 입에서 불을 뿜어내며 적을 공격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현재의 로켓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화룡출수



|서양으로 전해진 화약무기


남송시대에 이미 이슬람 상인들에게 화약이 전해졌을 수도 있으나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몽골의 원정에서다. 금나라에서 화약을 처음 보게된 13세기 몽골군은 금나라를 정보하여 화약과 그 제조법을 손에 넣었고 이를 통해 그들은 더 큰 제국을 만들려 계속 서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때 화약이 서양에 자연스럽게 전해졌다고 본다. 또한 몽골제국이 서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문물교류가 가속화 되었고 화약기술은 자연스럽게 서쪽 유럽대륙까지 전해지게 된다.


하지만 유럽으로 전해진 화약은 유럽대륙의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더불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냈고 중국의 화기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우수한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오히려 유럽에서 만든 무기들이 상인들에 의해 명나라로 전해져 다양한 화포들이 명나라 시대에 전해졌고 이때부터 화약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