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임진왜란 원균의 최후 조선 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

윤여시 2014. 4. 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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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원균의 최후 조선 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

 

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성웅 이순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군의 전선을 물리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 하지만 이 전투가 있기전 임진왜란 해전의 연승으로 당당했던 조선 수군을 12척의 초라한 수군으로 만든 패전이 있었으니 바로 원균의 칠천량해전이다. 칠천량해전은 과연 무슨 전투였을까?

 

 



원균


칠천량해전을 이끌었던 원균 초상화. 원균의 사당까지 있던 것 보면 그리 미운 인물만은 아니었다.

 

|원균은 누구?

 

원균의 가문은 대대로 무신을 배출한 가문으로써 원균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무과를 급제하여 우리나라의 북부 국경선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는 조산보만호로 부임하게 된다. (원균은 무과에 여러번 낙방하였다고 한다.) 

 

원균은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일의 부대에 속하여 여진족 부락의 토벌에 공을 세우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개월전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부임 받게 된다. 곧이어 임진왜란이 터진 직후 엄청난 왜군의 기세에 눌린 원균은 퇴각하려다가 부하인 옥포만호 이운룡의 반대로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에 이순신의 수군이 출전하여 원균의 수군과 연합 후 옥포 앞바다에서 왜군의 전함 26척을 침몰시키고 승리를 거두니 이것이 바로 조선수군의 첫번째 승리였던 옥포해전이다. 이때 이순신의 수군 전력은 전선 24척 협선 15척이고 원균의 전선은 4척 협선은 2척이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원균 역을 맡은 최재성 

 

 

|임진왜란의 진행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이순신과 원균은 합포, 적진포, 당포, 율포, 당항포, 사천 해전과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까지 왜군을 무찌르고 연전연승하면서 조선 수군의 기세를 높여간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순신 수군의 전력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당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원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벼슬과 함께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했는데 이 때부터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관계가 표면화 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순신은 원균의 과도한 공적을 따지고 조정에 과장 허위보고 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며 원균 역시 자신이 무신으로서 더 경력이 있었으나 이순신의 밑에 있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불멸의 이순신 중 한 장면 

 

 

두 장군의 불화로 일을 그르칠까 걱정한 조정에서는 원균을 육군인 충청절도사로 임명하고 이순신은 그대로 수군을 이끌게 놔두어 둘은 그대로 영영 떨어지나 했으나 곧이어 왜군이 다시 한 번 쳐들어오는 정유재란이 일어나게 된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다시 한 번 이순신의 수군을 통해 막아야 한다고 결정하고 이순신에게 명을 내렸으나 이순신은 이를 반대하고 출병하지 않는다. 이같은 이순신의 행동에 조정은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옥에 가두어 백의종군하게 하는 큰 실수를 범한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당하면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를 맡게 되었고 조정의 명을 따라 부산포로 나아간다. (사실 여기서 원균은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군 본진을 공격하는데 있어 권율이 이끄는 육군이 먼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가 곤장을 맡고 어쩔 수 없이 부산포로 나아간 것이다)





부산포는 나가지도 못하고 가덕도와 안골포에서 패퇴한 원균의 조선수군  

 

원균은 왜군의 유인수에 빠져 적진 깊숙히 들어갔다가 패퇴한 후 가덕도해전에서 패배하고 거제도 옆 칠천도로 후퇴한다. 그러나 곧이어 사방에서 들이 닥친 왜군의 기습공격에 모든 배들이 불살라 없어지고 원균은 얼마남지 않은 부하들과 함께 거제도로 후퇴해 저항하다가 왜군들의 칼에 맞아 죽고 만다. 그의 나이 향년 58세였다. 

 

이떄 130여척의 조선 수군은 단 12척만을 남겨두고 모두 바닷속에 가라 앉고 만다.

 


 

원균.. 그의 역사속 평가는 이순신을 떠나 대부분이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여러차례 조선 수군을 이끌고 승리하였고 칠천량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죽은 그 정신까지는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남은 12척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에 의해 해군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으로 기록 되게 된다. 곧 개봉할 영화 명량 회오리바다도 이 명량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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