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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05 11:39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6.09.29 14:08 신고 [Edit/Del] [Reply]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면서 주인장님이 역사왜곡을 그대로 쓰시네요.
    주인장님이쓰신 기황후 관련 글에
    <기황후의 권세는 나날이 높아져 몽골에서 오히려 고려의 풍속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불렀다. 전해진 바로는 기황후가 전파한 고려 양식이 원나라 고위층으로 침투되면서 원나라 고위층들은 더 많은 고려 여자를 원했지만 나중에 기황후가 공녀제도를 금한다고 한다.>
    이거랑,
    <단지 고려양이라고 해서 몽골에 우리 문화를 유행시켰고 공녀를 금지시킨 ... 그녀가 했던 이롭다 하는 사실>
    이거 절대 거짓입니다! 제발 지워주세요! 진짠줄알고 믿잖아요...ㅠㅠ 빨리 지워주세요!
    이 글을 보세요.
    한편 기황후가 공녀 폐지를 했느니 입성론을 막았느니 하는 헛소리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4668.html를 보면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부정한 친원 세력의 배후이자 중심인물"이라고 말했다. 순제 때 원으로 보내는 공녀가 중단된 사실을 들어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면서 "당시 관점에서나 지금 관점에서나 기황후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92016531&code=960801를 보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숙인 교수는 “고려 때 기황후를 모델로 해 공녀가 더 늘었다”며 “기황후가 당시 권력 기반을 위해 더 많은 고려 사람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 원나라 조정 관리들 사이에서는 고려 공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http://www.encykorea.com/enc/ency_012375.html에는 "1343년(충혜왕 복위 4) 역시 원나라에서 이운(李芸)·조익청(曹益淸)·기철(奇轍) 등이 제4차 입성책동을 일으켰다."라고 나온다. 동생이 입성론을 일으키는데도 이를 막으려 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이곡이 순제에 상소를 넣어 공녀 차출을 중지시켰으나 기황후는 오히려 박불화를 시켜서 공녀를 계속 보내라고 독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그녀가 황후로 있던 시기 말기는 원 제국 자체가 더 이상 피지배 민족들을 억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여러 어려운 요구를 하기 어렵고 본국 관리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요구가 사라진 것이다.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여 위와 같은 역사왜곡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튼 속지 말자. 또한 고려양 또한 수많은 환관, 공녀들이 끌려가서 저절로 퍼진 것이고 기황후는 그 공녀의 일부였을 뿐이다. 이 여자가 한류의 원조네 뭐네 하는 것도 참 웃긴 소리다.

  3. 2015.04.29 14:20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4. 2015.02.25 11:43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2015.02.08 21:10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