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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4

이순신과 함께 했지만 칠천량에서 전사한 전라우도 수군절제사 장군 이억기

이순신과 함께 했지만 칠천량에서 전사한 전라우도 수군절제사 장군 이억기 임진왜란 초창기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 수군의 승전보를 울렸던 인물이 있다. 바로 이억기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이 억울한 모함을 받을 때, 구명운동을 펼치며 함께 했던 장군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장군 이억기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이억기의 출생과 무관 급제 장군 이억기는 1561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2째 왕인 정종의 후손인데, 정종의 10번째 아들이었던 덕촌군의 후손으로 왕가의 피를 이어 받은 인물이었다. 선조가 세종대왕의 6대손이니 이억기는 선조와 굳이 따지자면 14촌인셈이었으며 항렬상으로도 선조의 할아버지뻘이다. 무예에 뛰어난 모습을 보인 그는 17살의 나이에 사복시(궁중의 말과 가마를 관리..

국사/조선 2022.05.22

징비록 그는 악역일까? 윤두수

징비록 그는 악역일까? 윤두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며 이제는 위인을 넘어 전설이 된 이순신 장군은 몰려드는 왜군을 막기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멍청한 왕 선조와 그가 이끄는 무능력한 조정대신들의 모함과 질투였다. 특히 선조를 제외하고 조정대신 중에서 유독 이순신을 괴롭힌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윤두수다. 윤두수 그는 진짜 악역이었을까? 선조가 왕에 있던 당시 영의정까지 올랐던 윤두수 |윤두수 유년시절 윤두수는 본관이 해평 윤씨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파평 윤씨가 아니다. 그는 1533년 윤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가문은 일찍이 세조에 반기를 들었던 사육신의 인척이었기 때문에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들은 없었다. 윤두수의 아버지 윤변은 본부인을 잃고 후처에게서 윤두수와 그 동생 윤근수 ..

국사/조선 2015.01.08 (8)

기적의 승리 이순신 장군 명량해전

기적의 승리 이순신 장군 명량해전 원균의 칠천량해전의 패전으로 다급해진 조선은 백의종군을 보냈던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 무패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 복직 명령이었다. 그러나 칠천량해전 이후 조선수군에게 남은 전함은 단 12척, 그나마 1척이 건조되어 겨우 13척 수준에 불과 했다. 이에 반해 일본 수군은 333척이라는 어마어마한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전설의 해전이 시작된다. 좁은 곳에서 넓어 지는 길목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살이 빠른 울돌목 이곳이 그 전설의 시작이었다. 사진 출처: 윤의 전략 블로그 |명량해전의 시작 급하게 이순신을 불러 다시 수군을 맡게는 했지만 조정은 수군 재기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고 수군을 폐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순신..

국사/조선 2014.06.09

임진왜란 원균의 최후 조선 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

임진왜란 원균의 최후 조선 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 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성웅 이순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군의 전선을 물리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 하지만 이 전투가 있기전 임진왜란 해전의 연승으로 당당했던 조선 수군을 12척의 초라한 수군으로 만든 패전이 있었으니 바로 원균의 칠천량해전이다. 칠천량해전은 과연 무슨 전투였을까? 칠천량해전을 이끌었던 원균 초상화. 원균의 사당까지 있던 것 보면 그리 미운 인물만은 아니었다. |원균은 누구? 원균의 가문은 대대로 무신을 배출한 가문으로써 원균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무과를 급제하여 우리나라의 북부 국경선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는 조산보만호로 부임하게 된다. (원균은 무과에 여러번 낙방하였다고 한다.) 원균은 함경도..

국사/조선 2014.04.2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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