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 두문동 두문불출 뜻과 유래
어딘가 들어가서 절대 나오지 않고 모습을 찾을수 없을 때 우리는 두문불출한다라는 말을 한다. 두문불출 그 뜻과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
|두문불출 뜻 유래
두문불출 그 뜻과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 어딘가 들어가 절대 나오지 않아 찾을 수 없다는 뜻의 두문불출은 (杜 닫을 두, 門 문 문, 不 아니 불, 出 날 출)로 구성된 말이다.
1392년 7월 16일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고려의 마지막 공양왕이 마침내 이성계에게 선위형식을 빌려 왕위를 물려주면서 새나라 조선이 세워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무너질대로 무너진 고려였다지만 이에 대한 충절을 잊지 않은 선비들은 자신들의 뜻과 의를 위하여 새나라 조선의 과거에도 응하지 않은채 부조현이라는 고개에서 의복을 벗고 두문동에 들어가 마을을 이루며 산다.
두문동은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조선 조정에서는 이에 두문동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불로 모든 것이 타는 가운데서도 두문동에 들어가 있는 충신 72인은 절대 나오지 않았는데 모두 불타 죽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바로 두문동의 두문에서 절대 나가지 않았다는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전해지게 된다.
|황희와 두문동 두문불출
드라마 육룡이나르샤에서 조선의 명재상이라 불리는 황희의 등장을 알린 오늘의 사자성어 두문불출을 만든 두문동 사건. 황희는 고려 말에 음서로 14살에 녹사로 임명되어 관직생활을 일찍 시작했는데 고려가 망하자 그 충절을 지키기 위해 두문동에 은거했다고 전한 그러나 같이 은거한 고려 신하들이 "절개는 우리가 지킬테니 백성들 역시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자네 같은 사람이 일해야 한다네"라고 설득해 조선 조성으로 출사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일각에서는 두문동이라는 지명이 조선 건국후 한참이 지난 영조때 부각되면서 전설이 탄생되었다고 말한다. 즉 황희와 두문동 역시 모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는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두문동 사건 때문에 나왔다고 하나 두문불출이라는 말은 이미 중국 한나라 때의 사마천에 사기에 등장했으며 이규보의 편지글에도 등장했다고 전하니 거기서 두문동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또한 두문동에서 불에 타죽은 두문동 72현이라고 하는 72명의 선비들은 영조 대에 2명 정조 대에 1명 모두 합쳐서 3명이었는데 숫자가 갑자기 늘더니 공자의 제자 숫자로 알려진 72명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영조대에 알려진 임선미, 조의생을 제외한 황희 등의 다른 사람들은 두문동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으며 황희의 경우 이미 태조 대에 6품 관직에 임명되어 그 세자들에게 자문을 해준 역사 기록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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