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장성택 숙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의 잔인한 역사

윤여시 2013. 12. 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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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숙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의 잔인한 역사


북한 정권 속에서 근 40년간 2인자로 군림하며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반당, 반혁명 주의자, 반국가적, 반인민적범죄행위자로 몰려 정권에서 숙청당했다. 그의 신변의 향후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장성택의 측근들이 공개처형 당하는 등 권력무상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김씨 정권이 권력을 잡아가고 있는 동안 장성택 숙청과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곤 했는데, 한 번 살펴보자 .  




 

김일성 정권의 권력 투쟁과정은 어땠을까?



|김일성 정권의 숙청


북한 정권이 처음 수립 될 때만 해도 지금처럼 맹목적으로 김씨 정권을 뒷받침하는 노동당이 모든 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비록 김일성이 가장 높은 수상자리나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 것은 맞지만 당시 북한의 정권은 남한에서 공산활동을 펼치다 쫒겨 올라온 남로당의 박헌영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에 앞장서며 중국 전역을 돌며 독립활동을 진행해온 연안파 김두봉, 소련에서 공부를 하고 소련과 북한 정권의 관계에 중심적인 일을 했던 소련파 허가이 등 다양한 공산주의 계파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의 실패 이후 김일성은 전쟁의 책임을 피하고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 대대적인 권력 숙청 작업에 나선다. 제일 먼저 숙청 대상에 떠오른 것은 자신과 함께 적화통일에 찬성하며 중국과 소련을 다니며 노력했던 남로당의 박헌영에 대한 숙청이었다. 당시 6.25전쟁의 실패를 놓고 언성을 높이며 극한 대립을 보이던 김일성은 내각 부수상이었던 박헌영에게 전쟁의 실패를 모조리 뒤집어 씌우고 반동분자와 미제의 스파이로 몰아 사형 및 재산몰수라는 극형을 선고한다. 오랫동안 공산주의에 빠져 살던 박헌영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또한 소련파의 대표적인 우두머리격인 허가이 역시 평소 김일성을 좋게 보지 않았을뿐 아니라 김일성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알고 남로당의 스파이 루머를 변호하다가 숙청 당한다.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장성택처럼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맞다


박헌영이 숙청 당했지만 전쟁 후 김일성은 북한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박헌영의 남로당 계열을 숙청한 김일성은 점차 숙청의 범위를 넓혀 연안파 계열의 내무성 부상, 문화선전부 부상 이필규, 정률, 주영하등을 숙청한다. 이후 연안파에 속해 있던 부주석 최창익을 비롯 소련파 박창옥 등이 북한의 당을 비난하고 김일성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한 종파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해외 순방 중이던 김일성은 황급히 귀국하여 반대파의 척살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연안파의 우두머리였던 김두봉 역시 이를 피하지 못하고 숙청과 동시에 투옥 당하고 시골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모두가 반당종파행위로 죽음을 맞이 한 것이 공통점이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과정은 어땠을까?





















|김정일 정권의 숙청


사실 김일성이야 자신이 북한 정권을 세웠고 만들어 갔기 때문에 숙청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고

해도 그의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에게 충성하고 

북한 정권을 위해 노력해온 주요 인사들을 숙청해야했다. 래서 숙청 역시 불가능해 보인 것

도 사실이하지만 그 아들 김정일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했던 인물더라도 자신의 

권력의 걸림돌이 될만한 인물들은 모조리 숙청했는데 한번 알아보자

 

김정일은 가장 먼저 그 동안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의 사상과 정치 권력을 든든하게 뒷받침 해준 갑산파 세력들의 숙청에 앞장선다. 이유는 자신의 후계 권력에 대한 반대 했다는 이유였는데 이 같은 숙청을 통해 김정일은 김일성 정권의 후계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가족들도 가만두지 않았는데 김일성 정권에서 북측을 대표해 우리나라를 만난 인물이자 김정일 자신의 작은 아버지인 김영주를 정치적 라이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숙청한다. 김정일 정권의 권력에 대한 피의 숙청이 시작 된 것이다.   


 


장성택에 앞장섰던 공포의 숙청. 심화조 사건  



아버지 김일성이 죽은지 3년이 지난 1997년 북한 정권에는 큰 위협이 다가온다. 아무리 김정일이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나 그 권력은 김일성에 비해 약한 것이 사실이었고 국가의 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었으며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김정일은 자신의 체제 보존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 상황에서 김정일은 인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한국 전쟁 당시 평양시 용성구역 건지리 간텁단 침투사건이라는 전설 아닌 전설을 끄집어낸다. 사건은 11명의 북파간첩들이 건지리의 뒤에 있던 당시 최고사령부를 폭파하려 했는데 작전은 실패하고 북한정권에 숨어 있다가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딱 들어도 말이 맞지 않는 이 간첩단 사건은 1996년에 안전부 주민등록 부부장이 어느 사람의 주민등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보고하여 간첩단 11명중 이미 죽은 7명을 제외한 4명을 체포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김정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사회안전부 정치부장 최문덕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 간첩들의 뿌리를 모두 뽑으라는 엄명을 내린다.

 

이후 체포된 간첩 4명은 고문과 협박에 굴복하고 허위자백을 했고 북한정권은 이들을 <심화조>라고 이름 짓고 그들의 자백대로 나온 모든 북한의 간부와 고위인사들을 체포하기 시작한다. 이후 상상도 못할 인물들이 간첩혐의로 숙청되기 시작하자 인민들은 배고픔을 잊은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북한정권은 이 같은 현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간첩단에는 당중앙위원회 농업담당비서 서관희를 비롯 책임비서 문성술, 서윤석, 박승일 등 고위 간부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세상을 떠난 농업위원회 위원장 김만금은 부관참시 당했으며 그의 가족들은 모두 정치 수용소로 떠나갔다. 특히 서관희는 평양시민 수만명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하기 까지 했는데 20세기 가장 참혹한 숙청이었다. (주로 북한 농업관련 인사들이 참형을 당한 것은 당시 굶주림에 불만이 가득한 북한 인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의 스파이인 농업 담당 인사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북한의 농업을 방해 했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 김정일의 잘못은 없고 농업 담당 인사들에게 모두 덮어 씌울려고 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군부에서도 요직에 앉아 있던 간부들 역시 모조리 싹쓸이 숙청 됬으며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김정일은 위기에서 벗어나 정권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심화조 사건이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자 김정은 


|김정은 정권의 숙청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김정은 역시 등장 초기부터 만만치 않은 숙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안함, 연평도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권력 다지기용 행동이 드디어 북한 권력 내부로 향한 것이다맨 먼저 자신의 아버지 김정은이 죽었을 때 운구차를 잡고 오열했던 4인방 리영호 군참모총장을 비롯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김정각 총 정치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 을 숙청하여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했다.

 

또한 음란물 영상을 봤다는 죄목과 더불어 남한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공직자들을 공개처형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고 지금은 장성택이라는 오랜 기간 북한정권의 2인자자리를 유지해왔고 또 그 세력도 만만치 않았던 장성택을 반국가적 행위자, 반동분자로 몰아 그의 오른팔들을 공개처형하고 장성택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버렸다. 또한 예전과는 다르게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김정은 정권의 희생 제물로 삼아 그 아버지 김정일처럼 권력 독점화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으며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불러들여 고위직에 앉히고 권력 물갈이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최룡해 역시 앞서 예들처럼 언제 숙청당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북한 정권의 숙청


북한 정권의 숙청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권력을 세습한다는 것은 독점을 하겠다는 의미이고 독점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반대세력들은 무참히 밟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며 앞으로도 발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 최룡해라는 인물이 김정은의 2인자로 등장하여 마치 김정일과 장성택의 관계처럼 된 것으로 보이나 역사를 계속 재탕해 나가며 숙청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북한 정권의 한계를 가진 이상은 언제 숙청 당할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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