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고려

고려의 부흥 왕소 광종

윤여시 2014. 12. 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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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부흥 왕소 광종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역사를 살펴봐도 어느 왕조나 꼭 한번은 가장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전성기가 있었다. 그리고 고려 역시 태조 왕건의 개국 이후 강력한 왕권을 지향하고 고려의 기틀을 다잡는 왕이 있었으니 바로 4대 왕 광종이다.


2014/12/30 - [국사/고려] - 왕건의 사촌 서경천도를 주장한 왕식렴



고려 정종과 광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1 드라마 제국의 아침

광종역을 맡은 배우 김상중

 


|왕소가 왕위에 오르기 까지


먼저 왕소가 왕위에 오르는 배경에 대해 살펴보면 고려 태조 왕건은 고려를 세우고 또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호족들을 다스리기 위해 부인을 많이 두어 혈연을 통한 왕권강화에 나섰다. 왕건 역시 자신이 죽은 후에 수많은 부인에게서 낳은 왕자들간의 왕권다툼이 심할 것을 예상하긴 했지만 정작 별다른 대비책은 세우지 못하고 자신의 맏아들이자 나주부인의 아들 고려 2대왕 혜종에게 일찍이 왕위를 물려주고 박술희, 왕규에게 보필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다.


한편 광종 왕소는 태조 왕건의 네번째 아들로 왕건의 세번째 왕후인 충주부인 신명순성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왕권과는 거리가 먼 서열이었지만 왕권에 대한 야망은 일찍부터 있었던 듯 보인다. 그 증거로 개국공신 박수경, 박수문 형제는 물론 왕식렴 등의 서경 세력과도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왕건이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마자 왕요, 왕소 등 신명순성왕후의 아들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지방 호족 출신이라는 탄탄한 정치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을 적극 활용하여 혜종을 몰아내기 위한 권력 암투에 적극적으로 돌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려 조정은 혜종과 박술희 왕규 등이 이끄는 개경파와 신명순성왕후의 아들인 왕요, 왕소, 평산 박씨 세력 왕식렴 등의 서경파로 나뉘어 치열한 세력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래 열세였던 개경파는 근근히 왕위를 유지하던 혜종이 병상에 눕게 되자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왕건의 아우이자 혜종의 신임을 받던 박술희마저 서경파에게 역모로 몰려 죽으면서 조정은 서경파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또한 혜종은 끝까지 동생들이 아닌 자신의 어린 아들 흥화군을 다음 후계자로 지명하려 했으나 서경파들이 들고 일어나 왕요(정종, 왕소 종의 형)를 후계자로 세우길 주장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혜종은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죽고 그 뒤를 이어 왕요가 왕위에 오르니 고려 제 3대왕 정종이다. 


그러나 정종마저 왕위에 오른지 3년만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는 꿈도 꾸지 못했던 왕소가 왕위에 오르니 고려 제4대왕 광종이다.




 

맨 오른쪽의 왕비가 바로 광종의 어머니이다 배우 전미선이 연기했다.



|광종 왕위에 오르다!


-관망기 광종이 왕위에 오르고 7년


광종의 성격은 항상 조심스럽고 신중하지만 한 번 밀어 붙이면 과감하게 행동하여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때문에 왕건에게도 유독 사랑을 많이 받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질은 왕소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아주 잘 보이는데 광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지 7년동안 특별한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안정된 국정운영을 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특히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반인 자신의 어머니가 있던 세력인 충주 유씨, 평산박씨와 서경세력들을 잘 아우르며 국정전반을 다스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광종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호족에 비해 왕권은 약했기 때문에 광종은 무려 7년동안을 관망하며 왕권 강화의 기회를 모색했다.


그 후 쭉 광종은 자신의 정치적 실력을 키우기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왕들의 치세 교과서인 정관정요를 속독하여 정치적 역량을 쌓았고 고려의 대외 위상을 높이고자 독자 연호를 사용하여 진정한 왕위에 오를 준비를 끝마친다. 또한 자신의 형인 정종과는 달리 민심을 어루만지고자 불교의 중흥을 이끌었고 많은 사찰을 세워 불교의 나라 고려를 가꾸어나가는데 힘을 쏟는다.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왕소 광종 역을 맡은 장혁 



-왕권강화기 광종 칼을 빼들다.


광종이 왕위에 오른지 7년, 그 동안 정사를 호족에게 맡겨 놓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7년을 기다려 왔던 광종이 칼을 빼들고 본격적인 왕권 강화 작업에 착수한다. 광종은 중국의 후주와 외교관계를 성립하고 후주의 사신으로 온 쌍기라는 인물에 감탄하며 고려로 끌어들여 자신의 신하가 되기를 청한다. 이에 쌍기는 이를 받아드리며 고려개혁론을 광종에게 전했는데, 쌍기에게 개혁론을 들은 광종은 자신의 왕권강화책을 도와줄 적임자를 찾았다며 과감한 개혁작업에 착수 하는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첫 번째 개혁은 호족의 막강한 경제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노비안검법을 실시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노비안검법이란 당시 호족이 가지고 있던 막대한 노비들을 일제히 점검하여 양인 신분으로 해방시키고 호족이 노비를 통해 얻었던 경제적 무력적 기반을 약화시켰을뿐 아니라 민심을 얻는 효과를 가져 온다.


또한 두 번째로 광종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제를 도입하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게 되는데 당시 삼국을 통일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무신들이 중심이 된 호족과 공신 세력에게는 그야말로 크나큰 타격이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기득권을 휘두르던 호족들은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능력있는 인재들에게 관직을 내주어야 하는 처지에 처하게 된다.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정종 왕요 역을 맡은 류승수 왕식렴의 이덕화



-피의 숙청기 광종 호족들을 주살하다


광종이 이렇게까지 호족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으니 호족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있었겠는가? 호족들은 서로 힘을 합쳐 광종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광종은 곧바로 근위병을 늘리면서 호족들의 동향을 살핀다.


그리고 마침내 광종 11년인 960년, 대상 준홍과 좌승 왕동의 모반사건이 일어나면서 광종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숙청을 진행한다. 가장 먼저 타겟이 된 인물은 혜종의 아들인 흥화군과 자신의 형이었던 정종의 아들 경춘원군이었는데 둘 모두 역모로 몰아 처형시켰으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인세자 후에 경종 마저 의심할 정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광종은 태조 이래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자신을 왕위에 오르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박수경 일가마저도 몰락시키면서 한 번에 세아들을 모두 역모로 몰아 죽였고 왕족이든 호족이든 공신이든 닥치는대로 칼을 휘둘렀다. 때문에 감옥마다 사람이 넘쳐나서 임시 감옥을 설치해야 했고 역모에 대한 고변이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광종은 말년에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던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우고 여러 가지 민심 안정책을 통하여 치세를 이끌어 냈다.





개경에서 발견된 광종의 묘


 


고려왕조에서 광종의 시대는 역사가 기록하듯 가장 강력했고 안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광종은 비록 왕권을 지키기 위해 득세 하던 호족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보아야 했지만  끝내 왕권 강화는 물론 급변하는 중국의 정세를 읽고 발빠른 외교 정책을 실시했으며 독자적인 연호를 발표하며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관복을 통해 신하들의 계급을 구분하고 안정적인 조정체계까지 만들어냈으며 위에서 말한 노비안검법과 과거제가 실시되며 그야 말로 고려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 했다.


이번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정종, 광종을 중심으로 고려의 이야기를 펼치기에 이 같은 사실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 했으나 이보다는 발해공주와 고려 왕소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사극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는 아마 역사적 사실들은 적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려의 전성기를 가꾼 왕인만큼 역사적 사실도 꼭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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