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세도정치 나주 기생 양씨 나합 그녀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0. 5. 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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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세도정치 나주 기생 양씨 나합 그녀는 누구인가?

조선대에 많은 기생들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 김좌근의 첩으로서 조선 후기를 뒤흔들었던 흔히 나합으로 잘 알려져 있는 기생 양씨는 분명 주목해보아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 없다. 나합 그녀는 누구이길래 기생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일까? 

 

나주 도내기샘의 설화의 주인공 나합

|나합의 탄생 설화가 있는 나주 도내기샘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나합은 이름이 아니다. 나주 출신 합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합하는 정1품 고관을 부르는 말로 직역하면 나주의 정1품 고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그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나합은 기생 양씨인데, 나주 삼영동 태생이라 전하긴 하지만 양씨인 것도 확실치는 않다. 전설에 의하면 선운사 마애불 배꼽 비결을 열어본 사람으로 잘 알려진 전라감사 이서구가 나주에서 한 시대를 풍미할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 전하며 아랫사람에게 나주로 가라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아이거든 죽이고 여자아이면 살려주라고 말했다. 아랫사람이 급히 나주 영산포에 도착하니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는데 여자 아이라서 말대로 살려주었다. 전라감사 이서구는 보고를 받고 ' 그년, 세상 꽤나 시끄럽게 하겠구나" 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녀의 미모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합이 지나가면 동네 남자들이 다 쳐다봤을 정도였다. 나합은 처녀시절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나주 영산포 삼영동 택촌 마을의 도내기샘'에서 물을 긷거나 살림살이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남자들이 상사병에 걸렸다고 이야기 한다. 

 

나주의 민요 중 하나였던 '나주영산 도내기샘에 상추씻는 저 처녀야 상추를 씻거들랑 속잎은 네가 먹고'로 시작되는 민요 역시 나합을 주인공으로 한 민요로 잘 알려져 있다. 

 

|기생 양씨 김좌근을 만나 나합이 되다

 

기생 양씨는 춤과 노래를 익히며 나주에서 소문난 기생이 되고, 아름다운 미모에 춤과 소리 또한 뛰어나서 나주 일대는
기생 양씨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넘쳤다고 한다. 때마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었던 영의정 김좌근이 나주에 내려왔다가 기생 양씨를 보게되고 한눈에 반하여 한양으로 데려가 첩으로 삼는다.  

 

2020/04/15 - [국사/조선] -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장 김좌근 그는 누구인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장 김좌근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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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좌근의 총애를 독차지한 기생양씨는 김좌근의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세상을 호령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녀를 합부인이라 불렀고 고향인 나주와 합부인이 합쳐져 나합이라 불리게 된다. 나합은 직접 인사에도 가담하여, 지방수령을 자신이 임명하였고 그녀의 권세는 나날이 강해져만 간다. 

 

한번은 또 이런일이 있었다. 나합은 자신의 집에 앉아 한양을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아래채와 집 민가들이 조망권을 가렸다. 그러자 나합은 김좌근을 닥달하여 아래채의 기둥을 잘라내 낮게 만들고 민가를 사들여 허물어 버리니 나합의 위세를 잘 드러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자 욕심도 많아 마음에 드는 남자와 정을 통했고 심지어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와도 정을 통했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자신은 정을 통할지언정 김좌근에게 다른 여자는 용서치 않아 질투에 뺨을 때린적도 있다고 하니 조선시대 남편에게 뺨을 올리는 용서되지 않은 만행도 그녀는 거리낌 없이 해냈다. 

 

|나합의 재치 자신을 조개라 칭하다

 

나합이 이처럼 권세를 부리자 세상 사람들이 좋게 볼리는 만무했다. 하루는 김좌근이 세상 사람들이 나합이라 부르는 것을 갈고 나합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나합은 세상 남자들이 여자를 희롱할 때 합(조개)이라 하는데 그래서 저를 나주에서 온 조개라 하여 나합이라
부른다고 말한다. 김좌근이 혹시나 노할까봐 자신을 바닥까지 낮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온갖 비리 등을 감추려고 말이다.

또한 한번은 나주에 흉년이 돌자, 나합은 김좌근을 채근하여 창고를 열고 구휼미를 나주로 보내니 나주 사람들은 그녀와 김좌근을 칭송하고 송덕비까지 세웠다고 한다. 나름 자신의 재치와 재주로 할 것은 다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김좌근의 권세가 많이 약해졌음에도 나합은 김좌근의 옆에 꼭 붙어 있었는데, 이를 용서치 않은 신정왕후 조씨(헌종의 어머니, 대왕대비)가 나합을 불러들여 그동안의 죄를 묻는다. 그러면서 한양을 떠나라 명하니 은퇴한 김좌근은 이 명을 듣고 나합과 함께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그런데, 이때 권력을 잡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나서 김좌근에게 당시 왕권 강화를 위해 몰아부치던 경복궁 중건 비용을 내면 나합의 추방령을 거두겠다고 김좌근에게 제안하고 김좌근은 이 제안을 받아드려 나합을 지키니 김좌근이 얼마나 나합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나합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좌근 역시 누릴건 다 누리고 천수를 다했고 나합 역시 그동안의 악행에 대해 처벌 받았다는 기록이 없는지라 아마 천수를 다누렸으리라 생각한다. 한 나라를 망친 세도정치와 기생의 여생이 아쉽게도 역사의 권선징악을 피해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조선 후기의 악녀로써 이름을 남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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