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의 세도정치의 시작 두 번의 수렴청정을 조선의 왕비 순원왕후 김씨안동김씨의 세도정치의 시작 두 번의 수렴청정을 조선의 왕비 순원왕후 김씨

Posted at 2020. 6. 18. 23:51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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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의 세도정치의 시작 두 번의 수렴청정을 조선의 왕비 순원왕후 김씨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인한 조선의 몰락은 아마도 수 없이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동김씨가 세도정치의 기반을 닦은 것은 바로 왕비를 배출한 집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여기 안동김씨로서 조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렴청정을 2번을 한 왕비가 있다. 바로 그녀는 순원왕후 김씨였다. 

 

|안동김씨의 가문에서 태어나다(순원왕후의 가문)

 

순원왕후는 1789년 안동김씨 가문 김조순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이러하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끝까지 맞서 싸우자고 주장했던 좌의정 김상헌을 시작으로 우의정 김수항, 영의정 김창집, 증조부 예조참의 김제겸에 이르는 노론의 중심이 바로 그녀의 가문이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12살되던 1802년 순조의 세자빈에 간택되었다가 정조가 그 직후에 바로 죽자 왕비에 오르게 된다. 

 

|정조의 죽음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등장

 

강력한 왕권과 함께 조선 후기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정조는 갈수록 건강이 나빠지며 자신의 아들 순조가 왕위를 물려 받을 경우 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조정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추존을 반대하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벽파와 찬성하는 순정왕후의 일가였던 안동김씨의 시파가 대립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정조는 당시 11살이었던 순조와 순원왕후가 혼인을 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승하하게 되고 당시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정순왕후 김씨가 순조의 섭정을 맡게 된다. 이 당시 정순왕후는 스스로 여주라고 불릴 정도로 그 권력의 크기가 대단했는데 1년동안 수렴청정을 했고 순조에게 물려준 뒤 2년 뒤 죽는다. 

여튼 정순왕후가 물러났으니 그 권력을 가로챈 것은 바로 순원왕후의 아버지 김조순이 이끄는 안동김씨 세력이었다. 

 

구르미그린달빛에서 순조

|순원왕후의 왕실생활과 슬픔 

 

순원왕후는 순조와 사이도 좋았을뿐 아니라 7년만에 효명세자를 낳았고 그 뒤에도 딸 셋을 연이어 순산하며 행복한 왕실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40대에 접어든 이후부터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가 순조의 뒤를 이어 대리청정을 했지만 21살이 되던 1830년에 세상을 떠났고, 2년뒤에 2명의 공주도 한달차이로 죽는다.

여기에 그 2년뒤에는 순조마저 승하하고 막내도 10년 뒤에 생을 떠나니 그야말로 믿겨지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때 순원왕후의 나이가 45세에 불과했다.

 

 

|손자 헌종의 즉위와 첫번째 수렴청정 그리고 갈등

 

순조가 죽은 1834년 효명세자의 아들이었던 손자 헌종이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효명세자의 아내이자 헌종의 친모인 풍양조씨 가문의 조대비로 잘알려진 신정왕후도 있었지만 당시 왕실의 큰 어른이었던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이때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함께 해온 것이 바로 안동김씨 가문이었다. 이미 순조 때부터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안동김씨들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7년 동안 세도정치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헌종이 친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헌종과 갈등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순원왕후와 헌종의 관계도 갈등이 심했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헌종의 독살설)도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두번째 수렴청정 그리고 철종의 즉위와 발자취 

 

1849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헌종이 죽자 당시 대왕대비 자리에 있던 순원왕후는 강화군 도령으로 잘 알려진 이원범(철종)을 순조의 아들 양자로 삼고 철종으로 올린다. 이후 그녀는 3년 동안 두 번째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순원왕후는 본인이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안동김씨의 세력의 권력이 막강해지긴 했지만 나름 거리를 두며 정국을 운영하려 했다. 또한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를 추존하고 종묘를 확장했는데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녀는 당시 안동김씨와 대등했던 신정왕후의 풍양조씨가문과 번갈아가면서 나름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또한 철종의 아내마저 안동김씨로 정하려는 자신의 가문에 반대의사를 표하기도 한다. (물론 철종의 왕비는 안동김씨가문의 철인왕후가 오르게 된다.) 또 나름 백성의 생활에도 관심이 많아서 조세탕감과 진휼미를 보급하는 등 노력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안동김씨다보니 팔은 결국 안으로 굽어 순원왕후의 정책은 부분적인 효과 밖에 얻지 못한다.

 

순원왕후는 자신의 친정과 나눈 한글편지를 남겼는데 규장각에 57점을 비롯해 많은 편지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미적으로 아름다운 한글로 그 가치가 귀하다 할 수 있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1857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지금의 서초구에 위치한 인릉에 순조와 합장된다. 이른나이에 왕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2번이나 한 여성이었지만, 자신의 자식과 남편을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이 있는 파란만장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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