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은 물러가라 - 중종반정
갑자사화와 무오사화 등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키며 궁궐에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자신의 할머니 인수대비에 대한 폭행과 끝없는 향락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던 폭군 연산군... 옛부터 폭군 정치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여실히 증명하듯 중종반정이 일어나게 된다.
드라마 여인천하에 나오는 중종.. |
중종은 폐비윤씨의 아들 연산군과는 이복동생으로 윤씨가 폐비되자마자 들어온 정현왕후의 아들이며 성종의 차남이다. 조선왕조에 있어서는 세조에 이어 두 번째로 반정으로 왕이 되었다. 물론 세조나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한번 광해군을 밀어내고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와는 다르게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서 반정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
여튼 앞서 말한 것처럼 연산군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조선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궁에는 점차 반정세력이 모이기 시작하고 반정을 일으킬 명분은 이미 충분했다. 세조가 김종서에게 반역의 죄를 덮어 씌우며 반란을 일으켰다면 이들 반정세력들은 그 어느때보다 강한 명분으로 들고 일어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대장금에서 나온 중종 |
그 반정 세력으로는 이조참판 성희안을 필두로 박원종, 유순정, 신윤무 등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애초 거사 계획을 연산군의 유람 행차날에 맞춰 세우게 된다. 그런데 연산군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겨 미루려 했으나 이때 자신들의 계획했던 호남지방 연산군 폐위 격문이 나돌게 되면서 하는 수 없이 거사를 일으키게 된다.
계획과는 다른 거사였지만 1506년 9월 1일 수원부사 장정, 군기시첨정 박영문 등을 통해 훈련원에서 훈련하던 군사를 모은 뒤 한양을 급습한다. 이때 연산군의 아내 왕비신씨의 아버지인 당대 최고의 권세가 신수근 (그에게 먼저 반정을 제안했으나 신수근은 도의상으로 맞지 않다 하여 거절했다고 한다.) 임사홍 등을 주살하고 이때도 살아 있었던 성종의 둘째 계비 자순왕대비의 허락을 받아 성종의 둘째아들을 옹립하니 이가 바로 중종이다.
드라마속 중종. 중종보다 오히려 그 시대 다른 사람들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왕이다. 역사속에서도 공신과 외척에 시달리는 약한 왕으로 나온다. |
사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궁에서 쫒겨나고 어머니인 줄 알았던 정현왕후의 아들이이자 이복동생이었던 어린 중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중종 역시 그의 이복형 연산군과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반정 공신들이 중종을 옹립하기 위하여 왕위에 올라달라고 말했을 때 신하가 임금을 택한다는 이유에 대해서 반대를 하며 몇번을 고사 했는데 여기서 연산군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또한 애초에 중종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던채로 자란 왕자였다.
자신의 할머니였던 자순왕대비의 허락과 공신들의 간곡한 청에 의해 결국 왕위에 오른 중종은 즉위초반 결국 공신들의 권세에 눌려 왕권다운 왕권을 내세우지 못한다. 연산군이 폐한 법제들을 다시 부활시키기고 왕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신하들이 세워준 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즉 세조 이후 강해진 왕권이 신권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중종반정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후 중종은 연산군 때 기득권을 유지하던 훈구파가 공신이란 이름으로 사람만 바뀌어 왕권을 간섭하기 시작하자 연산군 두번의 사화로 씨가 말랐던 사림세력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가가 될뻔 했던 조광조가 이때 등장한다. 다음에 조광조에 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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