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황후의 역사 왜곡에 관해서 기황후는 누구인가?드라마 기황후의 역사 왜곡에 관해서 기황후는 누구인가?

Posted at 2013. 9. 26. 22:01 | Posted in 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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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황후의 역사 왜곡에 관해서 기황후는 누구인가? 

2013년 하반기 최대 기대작 MBC<기황후>를 다들 알 것이다. 50부작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기황후는 제작비 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초호화 캐스팅인데. 하지원, 주진모를 필두로 정웅인, 이문식, 지창욱, 이원종 등 특급 캐스팅으로 그 주목을 받고 있다.하지만 드라마 기황후에 대한 기대감보다 더욱더 거세게 붉어진 것이 바로 역사 왜곡 논란이다. 고려시대 여인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황후가 되었던 기씨 부인을 다룬 드라마 기황후 도대체 무엇이 왜곡인 것일까?

 

 

 기황후 역사속 그녀는 과연 어떻게 몽골로 갔을까?

기황후를 알기전에 잠시 역사의 뒤로 돌아가야 한다.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알다시피 몽골을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갖게 하고 죽은 희대의 정복자였다. 닥치는대로 이웃 나라를 정복해나가던 몽골은 중국 대륙까지 여지 없이 무너트리며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몽골은 고려에 무려 7번이나 그 공격을 감행한다. 

고려는 강화도로 조정을 옮기면서까지 끈질기게 30년간 몽골에 저항을 했지만 결국 몽골에게 항복을 하고 만다. 하지만 끈질긴 저항은 몽골로부터 다른 문명처럼 완전히 복속해 소멸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독립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와 같은 100년의 치욕적인 주권 간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칭기즈칸이 죽고 그의 아들 쿠빌라이칸이 몽골의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기고 국호를 원나라를 고치고 황제가 된다. 고려 역시 칭기즈칸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후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게 수많은 왕권에 대한 간섭을 받는 것은 물론 고려의 태자들은 꼭 원나라 수도로 볼모처럼 잡혀가야 했다. 이뿐 아니라 백성은 더심했다. 원나라의 정복전쟁을 위해 수많은 공물을 강탈 당했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매년 원나라로 가야만 했는데 특히 군인이나 원나라에 부족한 여성들을 착출해갔다. 이를 공녀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원나라 고위 관직인들의 첩이되거나 그대로 팔려나가 기생이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기황후가 이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의 궁녀가 된다.

 

 

MBC 신돈에서 나온 기황후.. 딱 봐도 마녀의 느낌이..

 

사실 기황후가 원나라 궁녀로 들어가기까지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도움이 컸는데 이 고용보는 고려 출신으로서 원나라가 자신들이 지배하던 한족이 관직에 들어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썼던 고려 출신 환관이었다. 몽골인들은 한족이 들어오는 것을 막다보니 그 숫자는 부족하고 학식이 있던 고려인을 많이 썼던 것이다.

여튼간에 머리 좋은 고용보는 일부러 기황후를 당시 원나라 황제였던 순제의 곁에 배치 했고 고려에 귀양 갔던 적이 있던 원나라 황제 순제는 고려여인 기황후에게 금방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당시 순제의 제1황후였던 타나시리는 순제가 황제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정적 집안의 딸이었을 뿐 아니라 순제와의 사이도 좋지 않아 순제의 총애를 받는 기황후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 질투심에 기황후에게 채찍질은 물론 인두로 살을 지질 정도였다고 하니 참으로 무서운 몽골여자였다.

그리고 결국 기황후가 순제의 총애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타나시리 가문에서 모반을 일으켰고 곧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서 순제는 타나시리를 포함해 그 가문을 싹 쓸어버린다.

 

 

 MBC 기황후에서 기황후 역을 맡은 하지원

 

모반사건 이후 순제는 기황후를 1황후자리에 앉히고 싶어했으나 당시 몽골인이 아니면 황후가 될 수없다는 법을 들어 신하들이 반대했기에 기황후를 1황후자리에 올리는 것은 잠시 미뤄두었다. 하지만 순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기황후에게 이제 1황후자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기황후는 순제의 총애를 바탕으로 조정의 권세를 잡기 시작했는데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온 고용보를 황실의 재정을 맡아보는 자리에 두어 그 자금을 바탕으로 조정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후 기황후는 순제를 압박하여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의 자리에 올리고 같은 고향출신인 박불화를 군사책임자로 삼아 군사권도 장악했다. 기황후의 권세는 나날이 높아져 몽골에서 오히려 고려의 풍속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불렀다. 전해진 바로는 기황후가 전파한 고려 양식이 원나라 고위층으로 침투되면서 원나라 고위층들은 더 많은 고려 여자를 원했지만 나중에 기황후가 공녀제도를 금한다고 한다.

MBC는 이 부분에서 모든 역경을 뿌리치고 원나라의 황후가 되어 고려인들로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 원나라의 조정을 채우고 고려의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 했다는데 그녀를 의인으로 생각 하는 것 같으나... 이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지 절대 자신의 조국 고려를 위했던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후에 나온다.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여튼 기황후가 원나라를 장악하자 덩달아 득을 본 것은 고려에서 그녀를 보낸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특히 기황후의 오빠 기철과 기원에게 원나라는 최고 황후의 오빠로서 참지정사와 한림학사라는 공직을 주었고 고려에서 역시 그들을 부원군과 덕양군에 임명하며 왕족아닌 왕족의 대우를 했다. 당시 기씨집안은 고려 최고의 세도 가문으로서 고려 왕실을 좌지우지 했으며 기황후 역시 자신이 마치 고려의 왕인 것 처럼 행세하며 고려를 흔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기철과 기원은 충혜왕(주진모)이라는 고려의 최대 쓰레기 왕이 집권할때였기 때문에 그들을 제어 할 자는 아무도 없었고  남의 토지를 빼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급급했다. 덕분에 당시 고려의 백성들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으며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충혜왕이 죽고 충목왕과 충정왕 마저 몇년을 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뒤 원나라의 고려 내정간섭을 용서하지 않고 반원정책을 쓴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후 누이의 권세와 원나라를 업고 설치던 기철 등의 친원세력을 섬멸하며 그의 가문도 끝이 난다. 여기서 기황후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원나라 군대를 보내 고려를 치지만 최영장군의 활약으로 원나라 군대는 패해 도망가게 된다. 

자신의 나라를 타국의 군대를 이끌고 쳤던 기황후를 ... MBC에서는 희대의 영웅적인 여인으로 표현하려 한다... 

 

 

 기황후. 영원한 권력은 없다.

 

 기황후는 자신의 아들을 황제에 앉히기 위해 자신을 그토록 총애했던 순제를 황위를 물러내길 강권했고 이를 거부한 순제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원나라 조정은 황제파와 황후파의 싸움으로 엎치락 뒤치락 했고 당시 원나라 지배계급이었던 몽골족 보다 월등히 그 숫자가 많은 한족의 불만은 커질대로 커져갔다. 

 

기황후는 1황후였던 바얀후투그가 죽자 자신이 1황후에 결국 오르며 그 권력의 정점을 찍었으나 한족들의 도적집단인 홍건적이 나라 곳곳에 창궐하면서 원나라 황실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이끄는 대군이 원나라의 수도를 점령하자 원나라 황실은 피난에 피난을 거듭했고 이후 기황후의 모습은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고려로 돌아와 우리나라 지금의 연천에 묻혔다는 소문은 있으나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찾을 수 없다.

 

이제 지켜보자. 기황후의 인생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쓰여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다. 사실 안에 이야기를 넣어 만드는 수준을 벗어나서 그 사실 마저 바꿔버린다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황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하지원이 연기 했던 기황후를 지지할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이 고려에 했던 행동과 적국의 군대를 등에 업고 자신의 조국을 공격했던 기황후는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단지 고려양이라고 해서 몽골에 우리 문화를 유행시켰고 공녀를 금지시킨 ... 그녀가 했던 이롭다 하는 사실 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 뻔하다. 더군다나 고려 왕조 최대의 쓰레기 패륜아 충혜왕(주진모)이 남자주인공을 맡으며 기황후와의 사랑을 논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말도 안되는 역사 왜곡이다... 드라마이기 이전에 역사는 역사다. 역사가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지 드라마가 역사를 마음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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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충혜왕이 쓰레기야? 왜?
  2. 그러나
    당시 원나라는 징기스칸의 확장정책으로 징기스칸의 병력이 닫는 곳은 모두 징기스칸의 휘하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고려는 30년간의 항쟁으로 직접적인 합병은 면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기황후는 대원제국의 제2황후를 거쳐 황태자를 낳고 제1황후가 된 것이다. 기황후가 황후가 되기전 원나라는 고려의 조정을 마음대로 조정하였다. 원나라의 승인이 없이는 고려 왕도 되지못한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30년간의 항쟁으로 합병은 면했지만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었다.


    그러한 관계로 고려 조정에서는 고려 스스로 원나라의 1개성으로 들어가자는 논의가 활발했던 때가 기황후가 황후가 되기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황후가 원의 황후가 되면서 고려조정에서 스스로 원의 속국. 1개의 성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논의는 중단된 것이다. 그것은 기황후가 황후가 되면서 고려침략의 두려움이 해소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기황후가 고려의 자주권을 보장해준 역할이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황후란 존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이 없었을수도 있다.
  3. 그루터기
    좋은글 퍼갈께요
  4. ㄴㄴㄴ
    그래서... 기황후는 지금의 안현수정도 되나보네...헐~~
  5.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입니다 ㅎㅎ 너무 진지하신것 같아서요... 저 처럼 궁금한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서 본 사실들을 알아내겠죠~
  6. 글쎄요과연기황후가완전악녀일까요?봉건주의남존여비사상이강한나라였습니다그런곳에서고려출신이고남자들보다더뛰어나고강한여자였기에그렇게쓰여질수도있지않을까요그리고몽골북쪽에서주원장에게포로로잡혀사사당하면서기황후의기록이많이없어졌다고하는데그럼더더욱기화후로악녀루기록할수있는거아닌가요역사의기록은역사속에서살다가간그들만이알겠죠
  7. 유현
    배우 하지원이 연기하는 기황후 기승냥은 공민왕,즉 빠이엔티무르가 자신의 오빠 기철을 죽여 버리는 데 앙심을 품은 존재이기도 하며 기승냥의 오빠 기철은 자기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공민왕의 손에 죽음의 운명을 맞게 되었대요.
    공민왕은 기승냥에게 있어 원한의 대상이자 원수이면서 노국공주라는 왕비까지 있었지만,노국공주는 공민왕의 아기를 낳자마자 병으로 죽었으며 타환역의 지창욱과 왕유역의 주진모는 기철의 여동생,그러니까 기승냥을 사이에 둔 삼각로맨스를 펼치게 된다고 하고요.
  8. 다은
    역사는 사실이고 드라마는 환상이에요. 드라마만 보고 역사를 잘못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역사는 변하지 않죠. 드라마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도 담아서 만들수 있는거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아름답게만 사는게 불가능했지만 비록 한사람의 욕심이 고려에 좋은영향과 나쁜영향을 끼쳐서 지금 현실이 있는건데, 좋은영향만 미치고는 역사는 만들어질수 없잖아요. 근데 드라마는 좋은 영향만 반영해서 약간의 픽션을 담아 만들어도 문제없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좋고, 나쁘고는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그사람이 나쁜지 아닌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라고생각해요. 설령 우리나라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해서 그 사람이 나쁘다.고 단정지을수도 없는일이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더러운짓 한번도 안한사람 없을테니까요. 결국, 역사적인 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긴 하나, 픽션이라고 방송전에 안내도 하고있고. 역사적인 인물의 행동에서 영감이 떠올라 드라마로 탄생시켜 이루어지지않았지만 애절한 사랑과 순수한사랑, 전쟁 이런것을 표현한 연출력과 연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힘. 어느 것 하나 드라마로서 부족한점이 없는 좋은 드라마 인 것같아요. 기황후. 그리고 드라마에서 배운 역사는 오래가지않아요. 금방 잊혀지죠. 기억할만큼 관심이있다면 실제역사를 찾아봅니다. 분명히. 노발대발 안하셔도 될것같네요.
  9.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면서 주인장님이 역사왜곡을 그대로 쓰시네요.
    주인장님이쓰신 기황후 관련 글에
    <기황후의 권세는 나날이 높아져 몽골에서 오히려 고려의 풍속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불렀다. 전해진 바로는 기황후가 전파한 고려 양식이 원나라 고위층으로 침투되면서 원나라 고위층들은 더 많은 고려 여자를 원했지만 나중에 기황후가 공녀제도를 금한다고 한다.>
    이거랑,
    <단지 고려양이라고 해서 몽골에 우리 문화를 유행시켰고 공녀를 금지시킨 ... 그녀가 했던 이롭다 하는 사실>
    이거 절대 거짓입니다! 제발 지워주세요! 진짠줄알고 믿잖아요...ㅠㅠ
    이 글을 보세요.
    한편 기황후가 공녀 폐지를 했느니 입성론을 막았느니 하는 헛소리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4668.html를 보면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부정한 친원 세력의 배후이자 중심인물"이라고 말했다. 순제 때 원으로 보내는 공녀가 중단된 사실을 들어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면서 "당시 관점에서나 지금 관점에서나 기황후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92016531&code=960801를 보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숙인 교수는 “고려 때 기황후를 모델로 해 공녀가 더 늘었다”며 “기황후가 당시 권력 기반을 위해 더 많은 고려 사람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 원나라 조정 관리들 사이에서는 고려 공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http://www.encykorea.com/enc/ency_012375.html에는 "1343년(충혜왕 복위 4) 역시 원나라에서 이운(李芸)·조익청(曹益淸)·기철(奇轍) 등이 제4차 입성책동을 일으켰다."라고 나온다. 동생이 입성론을 일으키는데도 이를 막으려 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이곡이 순제에 상소를 넣어 공녀 차출을 중지시켰으나 기황후는 오히려 박불화를 시켜서 공녀를 계속 보내라고 독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그녀가 황후로 있던 시기 말기는 원 제국 자체가 더 이상 피지배 민족들을 억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여러 어려운 요구를 하기 어렵고 본국 관리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요구가 사라진 것이다.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여 위와 같은 역사왜곡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튼 속지 말자. 또한 고려양 또한 수많은 환관, 공녀들이 끌려가서 저절로 퍼진 것이고 기황후는 그 공녀의 일부였을 뿐이다. 이 여자가 한류의 원조네 뭐네 하는 것도 참 웃긴 소리다.

  10. 백설공주
    우리나라 역사속에 있는 평강채씨도 원 황실 대표 가문이었으나 채송년 대장군 여식 알수 있습니다
    충선왕 교서 의하면 공녀 차출에 대한 명단 기록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맨 마지막에 공녀 제 이름 나와 있는 평강채씨 공녀출신이었습니다
    저도 또한 공녀출신 숨기려고 했으나 공녀로 인해 끌려가지 않으려고 해서 여자인 신분 밝히려 들다간
    자칫 잘못되면 공녀로 인해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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