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의 시작 난세에 치였던 조선의 왕 순조 그는 누구인가?세도정치의 시작 난세에 치였던 조선의 왕 순조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1. 9. 12. 00:07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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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의 시작 난세에 치였던 조선의 왕 순조 그는 누구인가? 

조선 후기의 성군이라 칭해지던 영조와 정조 시대를 지나 조선의 암흑기로 치닫는다. 전 세계가 근대화로 향해가는 가운데 조선만 한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재위 기간 내내 불운한 왕 순조가 있다. 조선의 23대왕 순조 그는 과연 누구일까?

 

순조 가계도

|순조의 즉위와 정순왕후의 섭정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11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순조는 정조의 마지막 후궁인 수빈 박씨의 아들이다. 조선 역사상 2번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순조인만큼 왕위에 오르자마자 당시 가장 큰 어른인 영조의 부인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한다.

 

정순왕후는 3년 기간동안 나라의 살림을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친족과 정치적 세력을 키우는데 급급했다. 때문에 사도세자 폐위에 앞장섰던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 김씨의 가문인 경주김씨가 위세가 등등했다. 여기에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에 앞장서며 은언군을 비롯한 왕죽을 죽이고 수많은 반대파 신하들을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3년 후, 순조가 성장하여 섭정이 끝나고 이제 순조의 친정이 시작된다. 

 

김조순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세도정치의 시작

 

이제 좀 순조 자신의 정치를 해보나 했더니 이제는 자신의 장인어른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를 연 김조순이 권력을 잡기 시작한다. 여기에 순조는 커가는 안동김씨 세력을 막고자 자신의 외가인 반남박씨와 세자빈의 가문인 풍양조씨 가문까지 끌어드려 권력을 분산시키려 했으나 이들 역시 권력을 탐하는데 급급하니 조정이 난리가 난다.   

 

정치가 이러니 백성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 세도정치가 강해지면서 과거제도는 이미 유명무실해졌고, 안동김씨에 뇌물을 갖다 바쳐 한자리씩 해먹으니 그렇게 벼슬을 얻은 것들은 백성들을 수탈하기 시작한다. 이에 세금체계도 흔들리고 백성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니 삼정이 문란하고 백성의 불만은 극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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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과 이양선 출몰

 

정치가 개판이니 이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다. 조선 최대의 민란 중 하나인 홍경래의 난이 바로 그것이다.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한때 청천강 이북은 물론 정주성까지 점령하며 세를 떨친 큰 변란이었다. 이때 정주성에서 생포된 백성 2983명 중 남자 1917명을 처형한 후 효수 할 정도로하니 그야 말로 비극적인 일이었다. 

홍경래의 난을 가까스로 진압하고 순조는 이제 세도정치의 권력의 중심인 비변사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진정한 안동김씨의 세상이 열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이양선이라 불리는 서양의 배가 조선의 바다 곳곳에 출몰하면서 그야말로 난세속에 순조는 나약한 왕이 되어간다.

 

순조의 어진

|자연재해와 쌀 폭등

 

순조 치세는 하늘도 버렸다. 비가 내리지 않은 해가 많아 기우제를 빈번하게 열었으나 역시나 문제였고 흉년의 연속은 계속 되었다. 특히 1809년부터 1811년까지 3년동안 무려 33회의 기우제를 열정도로 가뭄은 계속 되었다 전해지고 가뭄이 아니면 홍수와 역병까지 이어지며 나라는 흉흉 그자체였다. 여기에 쌀 값은 부농과 지주들의 결탁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이로 인해 방화와 약탈이 자행되는 등 나라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나라꼴도 정치도 하늘도 버렸다... 순조는 아예 자신감을 잃었을 것이고, 때마침 아들 효명세자가 매우 영특해서 신하들에게 세자에 양위선언을 여러번 한다. 그리고 효명세자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조정일을 해나갔는데, 안타깝게도 2년이 지난 후, 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야말로 자식 복도 없는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효명세자 역 박보검과 순조 역 김승수

|순조의 죽음

 

순조는 효명세자가 죽고 이어 두 딸마저 죽자 큰 상심을 하고 웃음을 잃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4년 후 순종 역시 다리의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한다. 뭐 되는일이 없었던 왕의 죽음인 것이었다. 순조의 죽음으로 인해 죽은 효명세자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인 헌종이 8살에 왕위에 오르는 일을 초래한다. 이후 세도정치는 헌종과 철종시대를 거쳐 수많은 폐단을 만들어내며 조선을 망국의 기운으로 몰아가게 된다. 

 

그는 서초구 내곡동 땅의 인릉에 묻혀 있다. 여기에 태종과 원경왕후가 함께 묻힌 헌릉이 있어 헌인릉이라 부르고 있다. 순조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야말로 불운한 왕이다. 어려서 즉위했을 때는 섭정으로 질질 끌려다녀야 했고 뭘좀 해보려 하니 세도정치가 시작이었다. 여기에 대흉년은 계속 되었고 홍경래의 난을 대표로한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궁궐도 화재가 몇번은 났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그 아들 효명세자를 비롯하여 손자 헌종은 물론 4명의 공주들도 급사 한다. 순조보다 늦게 죽은 자식이 유일하게 덕온공주인데 23세때 임신중에 죽고마니 뭐 더이상 무엇을 말하랴! 하늘도 돕지 않은 순조시대는 조선을 망국으로 몰아가는 가장 첫 단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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