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조선

고려의 충신에서 이성계 언론의 중심이 된 동정 윤소종 그는 누구인가?

윤여시 2021. 11. 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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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충신에서 이성계 언론의 중심이 된 동정 윤소종 그는 누구인가? 

공민왕 사후, 뭘해도 무너져내리는 고려를 보며 이제는 고려라는 나라는 안될 나라라며 떠오르는 해와 같았던 이성계의 입이 되었던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윤소종이다. 타고난 언변으로 이성계파를 대변하는 한 편, 끊임없는 탄핵과 상소로 고려의 권문세족 등을 두렵게 만든 인물 윤소종 그는 과연 누구일까?

 

드라마 정도전의 윤소종 (이 드라마를 통해 윤소종이 주목을 받았다)

|윤소종의 출생과 관직 입성

1345년 (충목왕 1년)에 태어난 윤소종은 어린시절부터 영특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 이미 20세가 되기전에 시문에 익숙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인 이제현(성리학자, 조선 사림파의 원조)에게 '기이한 재주'라며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15살이던 1360년 공민왕 때 이미 장원급제했고 이색의 문인으로 1365년 좌정언(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자리)에 오른다. 

윤소종은 공민왕의 개혁에 대한 큰 포부에 기대감을 갖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총신 김흥경, 환관 김사행의 국정농단을 탄핵하며 주목을 받는데 뜻은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패기넘친 윤소종의 탄핵은 상소가 올라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윤소종이 여러 달 휴가를 내고 직책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탄핵 당하고 파직당한다. 현실 정치의 쓴맛을 제대로 본것이다.

|윤소종 이성계의 편에서 탄핵을 주도하다 

이후 우왕 때에 전교시승, 성균관사예, 전의부령, 예문관응교를 거쳤고 조준, 정도전과 함께 급진개혁파로써 과감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이 당시 윤소종이 집안 살림은 전혀 돌보지 않아 집이 매우 가난하였고 우왕이 이를 알고 쌀 열석을 내려주는 등 먹고 살 수 는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한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헝그리 정신으로 조정일에 관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튼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때 회군으로 돌아온 이성계를 마중나가 곽광전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곽광전은 폭군 기미가 보이는 황제를 갈아치우고 새 황제를 세운 중국 전한 시대 곽광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윤소종이 이성계를 향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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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성계의 입이 되기 시작한 윤소종은 우왕의 폐위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간신 이인임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베고 그가 살던 집을 허무는 참관저택을 관철시킨다.

 

또한 이성계가 정도전 조준 등과 함께 전제개혁에 착수하자 이에 적극 협력하는 한편 우왕의 폐위를 반대한 변안열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리는 한편, 이색의 제자 때 이색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던 이숭인을 시기하여 자신의 친구 조준에게 참소하여 죽이려고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상소와 탄핵으로 거칠 것 없던 인물이었다. 

|윤소종의 끊임없는 상소

윤소종은 사사건건 국왕에게 건의를 했는데 고려 마지막 공양왕 때는 그 잔소리가 도를 지나쳤다고 알려진다. 특히 승려 찬영을 왕실의 왕사로 삼으려 했지만 불교를 너무나도 싫어했던 윤소종은 반대는 물론 찬영을 쫒아내어 불교와 왕실의 연을 끊어버린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물론 이성계가 실권을 잡고 있고 정도전, 친구 조준 등이 판을 잘 깔아줬기에 가능한 일)

 

또한 우왕, 창왕 폐위 당시 유배지로 호송한 신하들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자 이 역시 벼슬을 개나 소나 주는 것 같다며 반대한다. 여기에 공양왕이 행차할 때 국고를 낭비하는 대규모 행차는 반대하였고 끊임없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윤소종의 상소들과 정적에 대한 끝없는 탄핵은 조정에 적을 만들기 충분했고, 결국 정몽주에게 탄핵을 당해 유배되는 처지에 놓인다. 이후 1392년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당하지 유배지에서 풀려난다.

|윤소종의 죽음

유배에 풀려난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병조전서를 지내면서 정도전, 조준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했으나 1393년 8월 2일 병으로 사직한 후 한 달만에 사망한다. 50세도 안된 젊은 나이였고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뭣좀 해보려고 하다가 죽은 것이다.

 

한편, 그의 아들 윤회는 세종대왕 시절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며 많은 활약을 했는데 정도전의 측근 중 한명이었던 윤소종의 아들이 이방원의 아들 밑에서 활약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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