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후했던 왕비, 고려의 문을 닫다 정비 안씨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후했던 왕비, 고려의 문을 닫다 정비 안씨

Posted at 2021. 11. 17. 22:23 | Posted in 국사/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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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후했던 왕비, 고려의 문을 닫다 정비 안씨

고려의 멸망과 함께 고려의 왕족들과 충신들은 비극적으로 쓰러져가야만 했다. 여기, 공민왕때 왕비로 들어와 수많은 모욕과 위기를 거쳐 끝내 고려 사직의 문을 닫아야 했던 여인이 있다. 바로 정비 안씨이다.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  

 

드라마 정도전 정비 안씨

|공민왕의 왕비가 되다 

정비안씨는 문정공 안극인의 딸로 태어나 1366년, 공민왕의 왕비로 간택되었다. 이때 공민왕은 개혁의 군주에서 노국공주를 잃고 정신이 이상한 방탕한 왕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정신이 정상이 아닌 상황이었다.

이때, 정비안씨의 아버지 안극인이 '노국대장공주 영전 공사'가 너무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한다며 공사를 중지하자고 건의했지만 공민왕은 이를 불같이 화내며 안극인을 삭탈관직하고 정비안씨까지 궁에서 쫒아내 집으로 보내버리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비 안씨는 얼마 뒤 다시 입궁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때 공민왕이 즉흥적이고 올바른 상황판단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공민왕은 이때, 자신의 부인들과 친위부대겸 동성관계를 맺고 있었던 자제위 청년들을 성관계를 맺게 하고 이를 지켜보는 음행을 일삼고 있었다. 공민왕은 정비 왕씨에게도 이 같은 행위를 계속 강요했지만 정비안씨는 자결까지 시도하며 완강히 거부하였고 공민왕도 독하다며 정비 안씨에게만은 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의붓아들 우왕에게 얻은 치욕 

1374년 공민왕이 홍륜 등에게 시해 된 후, 기록에 의하면 정비 안씨는 우왕에게 많은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우왕은 즉위하자마자 엄연히 자신의 의붓 어머니임에도 정비를 가리키며 '나의 후궁들은 어찌 어머니 같은 이가 없는가?' 라며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우왕은 정비의 처소에 무던히도 들렸는데 하루에 두 세차례, 심지어 밤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때문에 정비안씨와 우왕에 관한 안좋은 소문들이 파다하게 조정에 퍼졌을 정도였다.

 

정비 안씨는 이러한 우왕을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고 어느 날은 정비가 병이 들어 머리를 빗지 않았다며 우왕과 만나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왕이 계속 정비안씨에게 희롱을 일삼고 흑심을 품자 정비 안씨는 자신의 남동생 안숙로의 딸을 우왕에게 추천해 우왕의 아내 현비로 삼게 한다.

 

그럼에도 정비가 우왕과의 치부를 감추고자 자신의 조카를 천거했다며 소문이 나 조롱을 또 한번 당한다.

 

|우왕과 창왕에게 폐위 교서를 내리다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통해 쿠데타를 일으켜 우왕을 유배시키면서 정비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는 명분 아래 우왕을 폐위시키는 교서를 내린다. 정비에게는 비록 자신에게 흑심을 품은 의붓아들 우왕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폐위를 내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한 부분이 더 컸다. 

 

이후 우왕의 아들 창왕을 즉위시키는 교서를 내었지만 1년뒤, 1389년 이성계 일파에 의해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왕위에 올리는 교지를 내린다. 이성계에게는 왕실의 최고 어른 정비안씨의 교지가 큰 명분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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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이 왕위에 오른 후 왕대비가 되었지만, 1392년 이성계는 다시 한 번 공양왕의 폐위는 물론 조선의 창업을 윤허하는 교서를 정비 안씨가 직접 내리길 강요한다. 이때 이성계 일파가 떼로 정비 안씨를 찾고 협박했다고 전해진다. 여튼 정비 안씨는 결국 공양왕의 폐위와 조선의 창업을 윤허하는 교서를 선포한다. 고려의 문을 그녀가 직접 닫은 것이다.

 

용의눈물 중 정비안씨

|조선 건국 후 정비안씨의 행적

조선 개국 후 대비에서 의화궁주로 강등 당했다. 그녀는 고려 멸망후 술에 묻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망국의 한과 고려왕실의 문을 닫았다는 슬픔이 더해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정비안씨가 의화궁주로 강등되긴 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보면 태조 이성계가 신덕왕후 강씨와 함께 안씨의 집으로 와 연회를 즐겼으며, 술을 하사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녀를 향한 조선왕실의 대우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창업에 있어서 정비 안씨의 빠른 교서가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비 안씨는 조선 건국 후 36년 뒤인 1428년 6월 26일 세종 1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이성계는 죽은지 20년 뒤였고 이방원이 죽은지는 6년이었다. 술과 가까이 한 것 치고는 엄청 오래산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세종은 정비 안씨가 죽기전 박포의 집을 주었고 죽은 후에는 부의로 쌀과 콩을 챙겨주었다고 전해지니 나름 조선왕실에서는 챙겼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의화궁주의 장사는 고려조의 제도를 그대로 좆게하여 고려 왕비로 장사되게 하니 이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고려의 왕비로 들어와 수많은 위기와 치욕을 겪으며 고려 왕조의 문까지 닫았던 정비 안씨, 그녀 같은 운명이 또 어디에 있나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면서도 기구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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