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실미도의 실화 역사 1.21사태 -1
인천 무의도에서 물이빠지면 걸어갈 수 있는 곳 실미도.. 그곳의 아픈 역사가 한 영화에 의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영화이기에 영화 같은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었을까? 천만을 넘으며 우리 역사에 잊혀서는 안될 이야기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마치 물이 빠져 육지와 연결되는 실미도 앞 갯벌처럼....
모든 이야기의 시작 북한 김신조 서울 침투 1.21사태
모든 이야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목을 따러 왔다는 북한 특수부대 김신조 부대에 의해 시작된다. 사실 김신조만 생포 되어 살아있어서 김신조 부대라 불리지 원래 부대는 북한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31명으로 이들은 청와대 습격은 물론 정부요인 암살을 명받고 휴전선을 넘게 된다.
이때 그들은 우리 군의 복장을하고 수류탄 기관단총등 중무장을 한채였다. 평소에도 고강도 특수훈련을 받아온 그들에게 휴전선을 넘어서 부터 서울까지는 식은죽 먹기였다. 하지만 그들을 막아선 곳이 있었으니 바로 세검정 고개의 자하문이다.
당시 세검정 고개에서 불시 순찰을 하던 우리 경찰에게 무리없이 청와대를 향하던 김신조 일당 31명은 발각되게 되고 그들은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무차별적으로 쏘며 저항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당시 우리 민간인들도 무자비하게 살상당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총경 최규식이 무장공비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최규식 총장은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앞세운 북한 특수부대에 맞서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장서서 경찰을 이끌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즉시 우리나라는 비상경계태세에 돌입 군, 경을 동원하여 현장을 포위하여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는데 이가 바로 김신조다. 이때 포기하고 수류탄으로 폭살한 북한 특수부대 인원과 사살된 인원을 제외한 2명은 빠져서 북한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생포된 김신조는 북한의 무자비한 세뇌에 속아왔음을 깨닫고 참회하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목사로 살고 있다.
또 이후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은 이후 입산 금지가 되었다가 2006년에서나 일반인에게 공개 되었으니 이 사태가 얼마나 우리나라에게는 충격이었는지 알 수 있다.
또 이때문에 우리나라 향토예비군이 탄생되었는데 이는 북한의 비정규 게릴라에 대항하기 위함과 동시에 현역군 이외에도 엄청난 수의 비정규군을 보유한 것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1968년 4월 1일 탄생된 향토 예비군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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