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의 섭정과 명종 그리고 을사사화문정왕후의 섭정과 명종 그리고 을사사화

Posted at 2013. 11. 27. 23:40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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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의 섭정과 명종 그리고 을사사화 


인종의 죽음이 독살이든지 아니든지 명종은 왕위에 오른지  8개월만에 급사를 하고 만다. 이에 드디어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명종이고 당시 나이 12살이었다. 그리고 조정은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섭정 문제로 다시 폭풍에 휩싸인다. 문정왕후는 어떻게 됬을까?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명종 


명종의 섭종문제가 조정 신료들에게 화두가 되자 문정왕후는 차마 자신이 섭정을 하겠다고는 공표 하지 못한다. 사실 얼마 전 죽은 인종의 부인 인종비 인성왕후도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선택이 상당히 중요했다. 그러나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형, 윤원로등의 소윤과는 정적인 사림파 이언적이 중국의 고사를 들어 문정왕후의 섭정을 지지하고 나서며(물론 이언적이 지지 했다고 된 것은 아니지만) 문정왕후가 명종을 대신해 섭정을 해나간다.


사실 섭정이라는 것이 왕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었지만 어찌 이 문정왕후를 막을 수 있으랴..  여튼 문정왕후는 섭정을 하자마자 살아생전 자신이 그렇게 괴롭혔던 인종의 장례문제에 딴지를 걸고 나선다. 인종이 왕위에 오른지 1년도 안되어 죽었기 때문에 대왕의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그의 오라비 윤원형 등 이를 소윤파가 지지를 하고 나섰다. 결국 인종의 제사는 아주 간단하게 끝이 났고 이는 조선왕조의 왕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윤원형과 정난정. 문정왕후의 가족이자 

심복으로 천하를 움켜쥐었던 사람들이었다.

 


인종의 제사가 대충 끝나가는 듯 하자 문정왕후와 소윤은 숨겨 왔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권력을 갖는데서 방해가 되었던 대윤 세력과 사림 세력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곧바로 소윤세력은 윤임이 인종의 비 인성왕후와 모의하여 중종의 여섯째 아들 봉성군을 왕위에 옹립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대윤일파를 싸그리 귀양 보내고 사약을 내려 사사시킨다. 또한 사사건건 옳은말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림파도 줄줄이 엮어 죽이거나 귀양, 파직시켰다. 이것이 바로 을사사화다.


을사사화가 지나간지 2년 후 핏빛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난다. 양재역 객사에 문정왕후의 정권을 비판하고 소윤세력의 권력 비리를 모두 폭로했는데 이 때문에 죄를 제대로 묻지 않고 이름이 거론됬다는 이유만으로 봉성군(중종의 여섯째 아들)을 비롯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사림파와 대윤은 모조리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문정왕후의 섭정은 그야말로 공포 정치였다 


문정왕후와 소윤은 자신들의 권력에 반발하는 세력은 가만두지 않았는데 1548년 사관 안명세가 대윤세력을 옹호하고 문정왕후와 소윤 세력을 비판하는 사초를 썼다가 고문 끝에 사형당했으며 1549년에는 이홍윤이 연산군과 문정왕후가 같다고 말했다가 그가 머물렀던 충주지역에 300명의 문인들이 초토화 되었다. 이때 문정왕후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충청도의 이름을 땄던 충주와 청주에서 충주를 빼버리면서 홍주를 넣어 청홍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자가 더 무섭다.정말 대단한 악녀였다,) 


또한 문정왕후는 같은 소윤이자 자신의 가족이었던 윤원형과 윤원로가 싸움을 벌이자 윤원형의 편을 들어줘 윤원로를 죽이고 윤원형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는데 권력 앞에서는 정말 냉혈한 왕후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문정왕후가 아끼던 승려 보우가 있던 회암사지  


조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철권통치를 이끌어온 문정왕후는 억불정책과 숭유정책을 기틀로 해오던 조선 조정에 보우라는 승려를 중용할뿐 아니라 절을 세우고 불교를 중흥시키는 정책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문에 당시 많은 사대부들과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또한 조정에 보우라는 승려를  끌어온 것도 모자라 병조판서라는 막대한 자리까지 주면서 조정에 큰 풍파를 가져오기도 했다. 


문정왕후가 정치하는 동안 그의 오라비 윤원형이 대표하는 소윤은 온갖 비리를 저질러 이때 백성들의 살림은 도탄에 빠졌으며 명종 역시 성인이 됬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다운 정치를 해보지 못할 정도로 문정왕후의 실권은 대단했다. 섭정이 끝났어도 문정왕후는 권력의 끝을 보기 싫었던 것이다. 여튼간에 20년의 긴 간섭은 문정왕후가 죽자 막을 내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악녀가 죽었다며 문정왕후의 죽음을 반겼다고 한다. 


문정왕후... 조선 최대의 악녀라고 불릴 정도로 그 역사는 그녀를 잔혹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녀를 옹호해 줄 생각은 없으며 어쩌면 조선 중기 좀더 발전해나갈 수 있는 중요 전환점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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