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장 김좌근 그는 누구인가?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장 김좌근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20. 4. 15. 12:02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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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수장 김좌근 그는 누구인가?

조선 말,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왕권은 한없이 약해질 무렵의 제일 큰 원인으로 세도정치를 뽑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세력이 바로 안동김씨 그리고 풍양조씨 가문으로 이 두 가문이 조선 후기를 망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세도정치의 중심에 김좌근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세도정치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김좌근을 알려면 세도정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시대를 지나 고종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망친 대표적인 세도정치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세도정치는 영조 때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조는 무엇보다 붕당정치의 폐단을 막고자 탕평책(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지금으로 따지면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인재를 고용는 것을 말함)을 실시하는 등 노력했으나 결국에는 왕권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사돈이었던 풍산 홍씨 일가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는 정조대에 이르러 홍국영으로 이어지며 조선의 세도정치가 더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물론 홍국영은 정조가 즉위하고 4년밖에 집권하지 못하고 탄핵 당하여 쫒겨 났기 때문에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조의 죽음 무렵에 다시 한 번 세도정치가 등장하는 것은 일정부분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조는 훗날 순조가 되는 어린 세자를 보호하고자 외척을 의지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을 세자비로 임명하며 외척 세도정치의 불씨를 남겨 놓는다.

 

이후 순원왕후 김씨가 자신의 아들이 죽고 왕위에 오른 헌종까지도 왕실의 큰 어른으로 수렴청정을 하며 안동김씨는 그야말로 정점에 오르게 된다. 

 

|김좌근의 성장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을 알린 아버지 김조순의 삼남으로 순원왕후 김씨의 동생이기도 한 김좌근은 1825년 순조가 김조순의 회갑을 축하해주며 관직을 주었는데도, 순조시대에는 전면에 드러나질 않는다. 

 

덕분에 헌종 4년, 과거에도 42살이라는 나이에 급제하여 늦게 벼슬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순원왕후의 뜻에 따라 4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조참판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9급 공무원으로 들어가 4년만에 장관이 된것이다. 

이때 순원왕후는 자신들의 오빠인 김유관과 육촌 관계였던 김홍근에게 정치적인 뜻을 물었고, 김좌근 역시 함께 동참하며 진정한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1840년 형인 김유근이 죽고 그 2년뒤에 김홍근도 죽게 되면서 김좌근은 이제 안동김씨의 실세가 된다. 

늦게 배운 무당이 더하다고 아버지인 김조순과 형인 김유근이 뒤에서 막후정치를 했다면 김좌근은 전면에 나서서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세도정치를 이어간다. 이후 헌종이 장성하고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에서 물러나면서 헌종이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를 몰아내려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자 잠시 주춤했지만, 헌종이 일찍 죽으면서, 다시 집권하게 된다.  

|김좌근의 전성기

헌종이 후사 없이 죽고 강화도에 살던 철종을 데려와 왕위에 앉히면서 다시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맡게된다. 김좌근의 입지는 이때부터 더 강력해져서 철종의 왕비도 안동김씨 가문에서 나오는 등 성만 다른 또 다른 왕으로 군림한다. 여튼 김좌근은 꾸준히 안동김씨에 도전하는 세력을 숙청하고 영의정을 3번이나 올라 권력을 독점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직에 안동김씨인 사람들을 집어 넣으면서, 당시 돈좀 있다 하면 안동김씨일가로 몰려가 관직을 샀고, 이는 곧 삼정의 문란으로 이어져 백성들의 난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심지어 순원왕후가 죽었는데도 그는 그동안 입지를 다져온 기반을 바탕으로 세도정치를 편다.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김좌근이 몰락했다? 그건 아니다

 

김좌근이 칠순이 다될 무렵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온 안동김씨에서도 김병학, 김병국 등 또 다른 젊은 안동김씨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마침 철종이 죽고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들 고종을 풍양조씨 조대비(효명세자) 부인과 연합하여 왕위에 올린다. 

 

물론 흔히 알기로는 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의 칼날을 피하고자 젊은시절 바보처럼 행세 하고, 세도정치에 대한 원한이 많았던 것 때문에 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안동김씨 가문을 몰락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김좌근은 흥선대원군이 파락호 시절을 보낼 때, 저택을 방문할 때면 재정적으로 후원하거나 용돈 등을 주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고 했으며, 고종을 옹립하는 일을 주관 하는 등 나름의 노력들을 했다. 또한 흥선대원군 역시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왕이라지만 당시 안동김씨 세력을 적으로 돌리면 부담이 많았기 때문에 세도정치라는 개념만 종식되었을 뿐이지 그 세력들은 흥선대원군과 함께 정치를 해나간다. 

김좌근 역시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영의정을 물러나고 원임대신 자격으로 국정에 참여하였으며, 원로대우를 극진히 받았다. 또한 1864년부터는 철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여 주관 지위하였으며, 대원군이 삼군부를 설치하자 삼군부영사 등을 역임하다 1869년 편안히 눈을 감게 된다. 

 

야사에는 흥선대원군을 개취급하며 무시하고 흥선대원군이 이를 묵묵히 참아가며 나중에 멋진 복수를 한 것처럼 알려졌으나, 실상은 안동김씨 세력은 오히려 흥선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권세를 누리며 집권해 온것을 보았을 때, 이는 극적인 재미를 위한 꾸며진 이야기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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