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의혹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의혹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Posted at 2019. 9. 17. 23:34 | Posted in 국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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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의혹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잔인하고 무도한 행동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복수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든 일본이든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갈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이 한 행위가 명명백백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부인하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꼭 알아야할 사건이 있다. 광복후 벌어진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 그것이다. 어떤 사건일까?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무엇?

8월 15일 광복 후, 일본은 본토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폭거를 우려하여 일본 북부지역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들을 부산으로 실어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본토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기쁨에 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8월 24일 갑자기 우키시마호가 방향을 바꾸더니 일본 중부 연안으로 운행을 시작해 마이즈루항으로 입항을 하려 한다. 그런데 이곳은 미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가 있는 곳이었고 우키시마호는 갑자기 두동강이 나면서 폭파 침몰해버렸다. 일본 해상에서 이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그대로 수장되었다.

 

일본은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조선인 524명, 일본인 승조원 25명의 사망자 발생을 알렸다. 이것이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다.

 

|우키시마호의 풀리지 않는 의혹

먼저 우키시마호 폭침에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두가지 이유에 대한 의혹이 있다. 의혹과 증거는 무엇일까?


첫째로는 군사시설에서 일을 한 조선노동자들을 죽이기 위한 일본의 계획적인 작전이라는 점


둘째로는 우키시마루호의 승조원들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탑승시키고 부산에 도착한다면 분노한 조선인들에게 보복 당할 것이 두려워 조선인을 탑승시키라는 명령에 항의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해군이 우키시마호에 목탄을 설치하고 이를 폭파시켰다는 점이다. 

 

우키시마호 의혹의 가장 큰 증거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항로 변경이다.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루호를 왜 마이즈루항 쪽으로  배의 방향을 돌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애초에 동해를 횡단하면 부산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고 일본 연안에는 기뢰가 설치되었다는 정보를 알았음에도 그들의 항로는 분명 수상했다.

 

또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침몰 직전 일본인 승조원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있다. 승조원이 탈출한 이후 바로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뢰에 의한 폭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생존자들은 모두 폭발음이 최소 3회 이상 들렸다고 했는데 만약 기뢰일 경우 폭발음이 3번이나 들리는 것이 이상하며 기뢰가 폭발할때 발생하는 물기둥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1954년 우키시마호 선체를 인양했을 당시 배의 선체가 모두 바깥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었는데 이는 내부에서 충격을 주어 폭발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다.

 

|일본의 사건처리와 보상은?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일본에서 보고한 조선인 탑승자와 사망자가 아닌 정확한 사망자 숫자이다. 일본은 우시마루호에 조선인 송환자 3,725명 승조원 255명이 탑승하였고 여기서 조선인 524명, 승조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7,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우키시마호에 타고 있었으며 현지 주민들의 증언까지 첨부하면 최소한 1,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사고 이후 연합군 사령부에는 심지어 본래 추정 사망자보다 줄여 사망자 숫자를 256명이라 축소 보고한다. 여기에 인양된 선체는 고물로 팔아버려 진상조사도 하지 못하게  막았으며 우시마루호의 사망자 유해도 마음대로 섞어 300여구만 송환했다. 

사건이후 수습은 더 이해할 수 없다. 1977년 NHK에서 우키시마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자 이 같은 비극이 세상에 알려졌고 1992년 생존자 그리고 유족들은 일본 정부에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2001년 교토지방재판소에서는 생존자 15명에게 300만엔의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에 대한 요청은 기각한다. 그러나 2년후 다시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피해보상마저 번복하고 마는데 그 근거가 바로 1965년 한일기본조약 때 이미 배상했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피해자에 대한 그 어떤 사과도 보상도 없는 것이 바로 이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다.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에 대해 수많은 의혹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뿐더러 일본의 그 어떤 사과와 피해자들의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 보여주듯 우리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에 너무도 분노할 수 밖에 없다. 부디 그들이 자행했던 만행을 지우려만 하지말고 드러내고 참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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