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의 또다른 성공요인 장사리전투, 장사리 상륙작전은 무엇인가?인천상륙작전의 또다른 성공요인 장사리전투, 장사리 상륙작전은 무엇인가?

Posted at 2019. 8. 12. 22:19 | Posted in 국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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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의 성공요인 장사리전투 

우리나라의 역사는 그야말로 위기의 연속이었고 이를 극복해낸 드라마 같은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점에 벌어진 6.25전쟁 역시 자칫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뻔 한 위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3대 상륙작전이라 일컬어지며 불리했던 전세를 한번에 엎은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우리의 학도병이 무수한 목숨을 잃었던 상륙작전이 있다. 바로 장사리 상륙작전이다. 

 

포항의 장사리 위치

|장사리전투 - 전략 계획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3대 상륙작전이라 일컬어지며 불리했던 전세를 한번에 엎은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우리의 학도병이 무수한 목숨을 잃었던 상륙작전이 있다. 바로 장사리 상륙작전이다. 6.25전쟁 초기 개전 이후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북한군에 쭉쭉 밀리며 낙동강 전선까지 몰리게 된다. 

 

말 그대로 부산만 간신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낙동강전선에서 결사항전으로 시간을 번 국군은 곧이어 도착한 미군 그리고 유엔군과 함께 전세를 엎어버릴 작전을 계획한다. 이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북한군의 이목을 끌만한 작전하나가 더 필요했다. 이 작전이 바로 장사리 상륙작전이다. 더군다나 우리군은 잃어버린 포항 부근에서 전투를 벌이며 해안을 따라 이어진 7번 국도의 보급로를 차단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상륙작전이 제격이었다.

 

영화 장사리 스틸컷

|장사리전투 - 진행

장사리 전투의 시행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아쉽게도 언제 낙동강전선이 무너질지 모를 상황에서 즉시 투입 병력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허겁지겁 모은 것이 바로 학도병들이었다. 어찌저찌 병력을 모은 우리군은 인천상륙작전 전날인 9월 14일 작전을 개시했고 이때 전투에 참여한 인원은 총 786명, 문산호 배 1척, 장비는 소총 한자루가 탄약이 전부였다.  

그리고 15일, 새벽 장사리 상륙 지점을 앞에두고 닥쳐온 태풍의 영향으로 상륙지점 50m전에 내려서 헤엄쳐야했고 거친 파도로 인해 닻마저 끊어져 버린 문산호는 북한군의 집중 사격을 받게 되며 좌초된다. 그러나 학도병의 투지는 태풍과 적의 포화를 뚫고 장사리 상륙에 성공 마침내 7번국도 보급로를 차단하는데까지 성공했다. 기적이었다. 여기에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써 북한군은 우리군 2개 연대가 포항에 상륙했다 할정도로 시선을 분산시키는데까지 성공한다. 

하지만 문산호가 상륙작전시 좌초되면서 장사리에 상륙한 우리군은 철수하지 못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9월 16일, 북한군은 2개 연대 규모의 부대와 전차 4대를 앞세우고 우리 상륙군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애초에 우리군은 3일 전투를 예상하고 장비 등을 지급 받았기 때문에 적의 무기를 이용해 전투를 버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군은 포기하지 않고 당초 계획했던 날보다 더 늦어진 9월 19일까지 필사의 전투를 벌이며 상륙지점으로 돌아와 해군이 급하게 마련한 조치원호를 타고 귀환을 했다. 그러나 이때 우리군은 139명이 죽고 40명은 적의 포로가 되는 피해를 입게된다. 예측하지 못한 문산호의 좌초와 또다른 지원군으로 오인하며 무수하게 쏟아낸 조치원호에 대한 적군의 포화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였다. 

 

영덕군의 장사리 상륙작전 기념공원

|장사리전투 - 결과

군의 포화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였다. 장사리 상륙작전은 태풍의 영향, 문산호의 좌초,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진 전투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공을 세운다. 전투로 적군 270명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방어시설을 파괴하였으며 도로와 교량을 무너트렸다. 

 

여기에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써 적군의 시야를 돌렸을뿐 아니라 장사리를 다시 되찾기 위해 북한군은 정예부대를 후방으로 돌렸으므로 낙동강 전선이 상대적으로 편안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공에도 장사리 상륙작전은 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기밀에 부쳐져 있다가 좌초된 문산호와 전사자들의 유해 등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드러났고 이들은 지금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기적을 만들어냈던 우리 군,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민간인과 학도병임에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 낸 영웅들이다. 아울러 김명민, 메간폭스 주연의 영화 장사리에서 이 전투가 어떻게 다뤄질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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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남규
    어린 학도병을 그것도 제대로
    훈련도 시키지 못한채.
    상륙작전을 감행 했다는것은.
    아무리 봐도.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총알받이라 생각한다.
    게릴라 전을위해
    미군들은 눈빛과 체형이 비슷한 병력을 투입하기위한다
    했지만.
    상륙작전에 무슨 게릴라 작전이 필요한가.
    이건 누가 봐도
    저의 눈을 속이기위한
    어린 학생들을 총알받이로
    사지에 밀어 넣은 것으로 밖에 이해가 안된다,
    아무튼
    장사상륙작전에 희생된 모든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 푸른 달
    조국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죽음조차 겁내지 않은 영웅들께 감사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하소서()
  3. 학도병
    학도병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그들은 자원 한거다. 거기엔 정규군도 포함되어 있다. 그당시 어린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 할만큼 우리군은 여력이 없었다. 상황도 모른체 외곡 하지마라
  4. 미디엄
    이걸 가지고 또 미군 까냐? 원래 미군이 하려다 전선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국에 요청했는데 낙동강 전선이 급박해 어쩔수 없이 자원한 학도병과 기간병 투입한거다. 전쟁 일으킨 쪽을 먼저 탓해야지. 전쟁에 학생, 민간인 구분 하나? 저당시는 저 당니 상황으로 이해해야지. 저당시 고등학생은 지금으로 치면 대학생 취급 받았다. 학력으로나 나이로나.
  5. 유수종
    삼가 고인의명복을빕니다.
    영면하소서
  6. 지크팡
    이분이들때에 우리가 지금 잘살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7. 감사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삼가명복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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