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청백리의 상징, 역사상 정승을 두 번째로 오래한 맹사성 그는 과연 누구인가?조선 청백리의 상징, 역사상 정승을 두 번째로 오래한 맹사성 그는 과연 누구인가?

Posted at 2021. 1. 26. 23:12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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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청백리의 상징이자 음악에도 조예가 있었던 맹사성 그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 역사를 통틀어 정승하면 과연 누가 떠오르는가? 바로 황희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황희만큼이나 조선을 대표하는 정승이자 깨끗한 공무원의 상징인 인물이 있다. 바로 맹사성이다. 조선초, 태조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지금으로 따지면 고위공직의 반열에서 조선의 기반을 닦은 인물 맹사성 그에 대하여 알아보자 

 

맹사성

|맹사성의 출생과 성장

 

고려 말, 맹사성은 온천으로 잘 알려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신창 맹씨로 지금의 온양과 가까운 곳 신창역이 위치한 신창에 그 지역 기반을 두고 있다. 맹사성의 할아버지인 맹유는 고려 말기 고위 관리 중 한사람으로 최영 장군과 돈독한 친구 사이였다. 최영이 죽고 조선이 건국되자 그의 할아버지 맹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은 72현 중 한사람이었다. 

또한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 역시 조선이 건국되자 충청도에 자리를 잡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때 맹희도의 친구가 정몽주이며 맹사성의 아내가 최영의 손녀였으니, 사실 맹사성은 모두 고려를 위해 살다간 충신들과 큰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맹사성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가문의 죄를 맹사성에게 묻지 않고 중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맹사성의 정치활동

 

맹사성은 공직생활에서도 그 능력과 인품을 인정 받아 정승이라는 고위 공직까지 올라간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고 태조 이성계로부터 예의좌랑을 제수 받았던 그는 1408년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을 맡을 당시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고 태종의 사위였던 조준의 아들 조대림을 고문했다가 처형직전까지 갔다가 황희 등의 간언으로 인해 겨우 살아나기도한다. 

그러나 신하로써 맹사성은 그 능력을 어느자리에서도 인정 받아 1416년에는 예조판서가 되었고 1417년 충청도 관찰사는 물론 이조판서부터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조선 초 신하의 중심이 되어 조정을 이끌어나간다. 심지어 맹사성이 세종에게 노환으로 인해 정무를 돌보기가 힘들어 사직을 청하였음에도 윤허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공무원으로써 맹사성의 능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맹사성은 성품 또한 훌륭했다. 맹사성은 말그대로 온유한 인물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맹사성은 너무 착하고 우유부단하여 싫은소리를 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을 정도로 맹사성은 아주 부드러운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청렴결백한 청백리의 대명사로 재미있는 일화들을 남겼으며, 효자로도 표창을 받았다. 여기에 아랫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다정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말 그대로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고위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맹사선 묘

|맹사성의 업적

 

맹사성은 벼슬에 오래 있었던 만큼 업적도 참 많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고유 음악인 향악에 조예가 깊어, 조선의 음악에 대한 기틀을 잡는데 많은 공을 세운다. 특히 조선 초 박연, 류사눌과 같은 음악에 출중한 재능을 가진 인물들과 함께 우리 고유의 음악을 정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알려지며 박연이 악기를 만들 때도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맹사성은 대금을 잘부르기로 소문나 있어서 여름이면 그늘 밑에서 겨울에서는 방안에서 대금을 불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맹사성을 찾는 손님들이 집에서 대금소리가 들리면 맹사성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여튼 맹사성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향악이 지켜질 수 있었다. 

 

우리가 수능때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만 하는 강호사시가 역시 맹사성이 남긴 문학 작품으로써 학문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맹사성의 일화

 

맹사성이 당시 백성과 친근했고 백성들이 우러러 봤던 청백리였던 탓에 그와 관련한 일화가 정말 많다. 

 

1. 최영과의 일화 

 

최영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용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배나무를 타고 하늘로 승천 하는 꿈을 꾸게 된다. 이때 최영이 깜짝 놀라 뛰쳐나갔는데 맹사성이 배나무를 타고 배를 따려 하고 있었다.

 

이때 최영이 어린 맹사성을 혼을 내는 척을 하였더니 맹사성이 변명하지 않고 예의바르게 잘못을 고하는지라 최영이 이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자신의 손녀를 주어 손녀사위로 삼게 된다. 이후 최영은 그 집을 맹사성에게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충남 아산 맹씨행단이다.

 

2. 소를 타는 노인 맹사성

 

황소를 타고 대금을 부르는 것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맹사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나라의 정승이 아닌 시골 촌부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어느날 맹사성이 고향인 온양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지역 현감이 맹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길을 깨끗이 닦고 맹사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맹사성이 아닌 소를 타고 떡하니 내려오는 시골 할아버지만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어이가 없어진 현감이 포졸을 시켜, 노인을 당장 쫒아내라고 명한다.

이에 포졸들이 소를 타고 천천히 가는 맹사성을 쫒아내려 하자, 맹사성은 이를 보고 "온양 사는 내가 제 갈길을 가는데 왜그러느냐"라고 말하면서 제 갈길을 간다.

 

뒤늦게 소를 타고 가던 시골 노인이맹사성인줄 안 현감은 사죄를 하려 뛰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인을 연못에 빠트리게 되는데, 해서 이 연못이 도장이 빠진 연못이라 하여 인침연이라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이밖에도 맹사성은 유독 백성들과 관련이 있는 일화들이 많은데, 이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위세와 권세를 누리는데 급급한 것이 아닌,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일을 다하고 그 누구와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소탈한 성격이자, 봉급으로 나오는 쌀만 받고 평생을 묵묵히 일해왔던 청백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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