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장영실과 함께 일했던 놀라운 무인 과학자 이천 그는 누구인가?조선 최고의 장영실과 함께 일했던 놀라운 무인 과학자 이천 그는 누구인가?

Posted at 2019. 11. 26. 21:17 | Posted in 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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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장영실과 함께 일했던 놀라운 무인 과학자 이천 그는 누구인가?

조선 세종 때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국민이 다아는 과학자 장영실을 필두로 수많은 과학인재들이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장수 출신으로 장영실 버금가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이천이다. 장영실 보다 더 뛰어난 위인으로 평가 받기도 하는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이천의 어린시절

 

장영실보다 더 많은 공을 세운 과학자라 불리기도 한 이천의 유년시절은 파란만장하다. 이천은 고려 우왕2년에 안동에서 태어났는데 고려시대 내노라 하는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천의 어머니는 특히 고려 말 권세가였던 염흥방의 누이동생으로 이로 인해 이천 역시 어린시절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천의 집안은 우리가 잘 아는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풍비박산난다. 바로 1338년 염흥방이 이인임, 임견미와 함께 비리와 국정농단을 벌이다 처단당한 것이다. 말그대로 삼족이 멸하는 극형을 받으면서 염흥방 일가는 죽거나 노비가 되었다. 때문에 이천의 아버지 역시 참수를 당했으나 이천은 승려의 도움으로 겨우 피신해 목숨만은 보존했다.

 

이후 이천의 행적은 그가 무인으로 등장할때까지 묘연하다.

 

|이천 과학자이자 무신

 

이성계에게 그 아버지가 죽고 가족은 풍비박산 났지만 이천은 신기하게도 조선초 1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태조부터 세종대에 이르기까지 헌신한다. 그는 하위무관인 별장으로 시작하여 무과에 모두 급제하였고 장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와 함께 피신했던 아우 이온 역시 태종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말그대로 조선왕조에 의해 무너질뻔 했던 가문을 일으켜 관리 집안이 된다는 점이다.

여튼 이천은 1415년 공조참판으로 부임하였으며 이때, 황해도의 은광 개발을 담당했는데 여기서 배운 광물이나 금속에 대한 지식이 이후에 세종의 명을 받아 금속활자를 만들게 되는 원인이 된다. 1419년 세종의 명을 받아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고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며 세종의 신임을 받는다.

 

갑인자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420년 세종의 명을 받아 경자자라는 금속활자를 개발하는데 당시 활자와 동판이 맞지 않아 생기는 인쇄상의 결함을 극복해낸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이후 도성의 보수를 전담하는 역할을 겸직하다가 세종의 명을 받아 당시 지역마다 달랐던 저울을 고쳐 표준저울을 만들고 전국에 배포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배운 사륜차를 만들어냈으며 여기에 1431년 근정전 화재에 대비한 갈고리 장치, 군함 개량, 노궁까지 만든데다 악기까지 개선하며 그야 말로 조선의 마이다스손으로 불린다.

 

이후 경자자와는 또 다른 갑인자를 개발하여 조선의 인쇄 기술 발달에 이바지 하였다. 호조판서에 있을 때는 간의, 혼의, 앙부일구 등 제작을 지휘하였으며 뜬금없이 1437년 평안도 도절제사로 여진족 토벌과 함께 4군설치를 실현해냈다.

 

|이천의 행보

 

4군 설치 이후 이천은 60세가 넘어서도 재상의 반열에 있으면서 북방의 안정에 힘썼으며, 1440년 북방에 여진족이 침략하여 국경을 어지럽게 하자 이천은 국경수비의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다가 세종의 총애로 5개월만에 돌아오게 된다. 1442년 건원릉 수리 담당, 화포 무기 개량, 세종이 보는데 한강에서 함포 사격을 하는 수군 훈련까지 실행하며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청렴치 못하다는 비판으로 뇌물관련하여 세종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세종에게 인정을 받은 인재로 궤장을 하사 받았으며 1451년 눈을 감게 된다. 

 

|이천의 업적 정리

 

이천은 장영실과 함께 천재 과학자로 불린다. 세종이 즉위한 후 제사 지낼 때 쓰는 제기 주조를 맡았고 철이나 금속을 다루는데서 큰 재능을 보인다. 이러한 이천의 합금 능력으로 인해 경자자와 갑인자를 만들어 조선 인쇄술 발달을 만들어 낸다. 특히 경자자는 하루에 20여 장을 인쇄할 수 있는 기술력으로 활자 크기도 작고 정교하며 글자체가 아름답다. 

이후 경자자를 더욱 업그레이드 시킨 경자자를 개발하여 20여만자에 이르는 글자로 하루에 40여장 넘게 인쇄할 수 있었으니 그당시에는 놀라운 기술력이었다. 또한 이천은 군함을 제작하고 보완하는데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크고 속도가 빠른 군함을 만들어 왜구 토벌에 이바지하였다.  

이천은 장영실의 스승역할을 했던 인물로 세종대의 간의대, 혼의, 혼상까지 장영실과 함께 세종대의 천문학의 깊이를 더하였다. 장영실이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노비에서 오직 능력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가 되었다면, 이천은 몰락한 가문에서 무신과 과학이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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